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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oonface Feb 25. 2022

우리도 신경 써 주세요

알아서 잘 자란다고 관심이 필요 없는 건 아니잖아요

“있잖아. 너희들은 건강하잖아. 그니까 이런 나를 이해해줘.”     

그렇게 아픈 아이에게 달려가야 했다.


새로 이사한 집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싶었을 때 눈여겨보던 식물들을 집으로 들였다. 물만 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잘 자란다는 싱고니움과 나한송을 시작으로 틸란드시아와 이오난사, 스파티필름, 몬스테라, 풍성하게 늘어지는 줄기와 잎이 싱그러운 푸밀라와 디시디아, 처음 도전하는 네마탄까지.     

 

“얘들아 잘 자라야 해~. 많이 많이 예뻐해 줄게 “     

틸란드시아와 이오난사는 예전에 키우다 말라죽었던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주의해서  키우겠다는 다짐으로 들여온 아이다. 디시디아 역시 처음 키워보는 행잉 식물이라  잎이라도 땅에 떨어질까 싶어 자꾸자꾸 들여다보며 안부를 확인했다. 그렇게 몇몇 아이들만 신경 쓰면 나머지는  자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하고 말았다. 물을 좋아해서 물만  줘도 알아서 자란다는 푸밀라의 몇몇 가지가 물러진  시들어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전날 분무를 해준 것뿐인데 갑자기 한두 가지만 이렇게 상한 이유를   없었다. 과습인  같아 그냥 두었더니 저녁쯤 되었을  물러졌던 가지들은 바싹 말라  이상   같아 보이지 않았다. 결국  가지들을 과감히 잘라야 했고 차마 버릴 수는 없어 물속에 담가 뒀다.    

 

아침이 되었을 때 시들었던 가지들이 물속에서 싱싱하게 펴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과습이 아니라 물이 필요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들었던 푸밀라에게 잘못된 처방을 해준 것 같아 보상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다시 한번 시원하게 물을 주고 통풍이 되도록 베란다에 꺼내 놓았다.

     

이제 푸밀라를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알게 됐다고 생각했다. 시원하게 바람을 쐬며 싱싱하게 회복될 푸밀라를 상상하며 다시 실내로 들여온 푸밀라는 예상을 벗어나 있었다. 차가운 아침 바람에  말리지도 못한 물기로, 남아있던 싱싱했던 줄기마저 돌이킬  없을 정도로 상해버린 것이다. 시들었던 한두 줄기 살려보겠다고 결국 남은 줄기들 모두 돌이킬  없게 만들어 버린  처지를 보고 있자니 문득 그날의 그녀가 오버랩되는 듯하다.


“너희들은 다른 친구들도 있고 건강하잖아. 그 아이는 혼자잖아. 그니까 이런 나를 이해해줘.”  

아픈 아이 옆에 있는 것이 모두를 위한 일이라 생각했고 아이가 아파 보일 때마다 아픈 아이에게 달려갔다. 그런 그녀에게 한 아이가 말했다. "우리도 신경 써 주세요." 그래서 였을까. 결국 마지막 날까지 그 누구도 곁에 둘 수 없어 외롭고 고독해야 했다. 이해받지 못한 시간을 지워가던 그녀의 시간 속에 어린아이가 떠올랐다.


동생 곁에만 있던 엄마에게 혼자였던 아이는 엄마가 동생만 신경 쓴다고 투정했다. "동생은 아프잖아. 너는 누나고 건강하잖아. 동생이 불쌍하지 않니.." 아무 말도   없었다. 동생은 아팠고 그녀는 누나였고 건강한  사실이었으니까. 어쩔  없는 상황을 이해했다 생각하며 그렇게 스스로 자란 것처럼  자랐다.


가끔은 보상받지 못한 시간이 기억난 듯 속이 상할 때가 있었다. 누가 그랬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는 아이다운 보호와 양육을 받아야 한다고. 어디에도 돌봄이 필요 없는 알아서 잘 자라는 '어른 아이'는 없다. 그저 양육자의 사랑과 관심이 넘쳐도 부족하지 않을 아이만 있을 뿐이라는 걸.

     

그녀는 어른이 되었고 누군가를 돌볼  있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무리 속에서 모두를 보살피기 위한 결정이 결국은  누구를 위한 행동도 아닌 그녀가 자라왔던 방식이었음을 알았을   시간을 지났던 이들은 아무도 남지 않았. 좋은 리더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한 리더만 남았을 뿐이고, 식물을  키우고 싶었지만 결국 애꿎게 남은 식물마저 못살게 만들어 버린 주인의 지나친 욕심과 후회만 남았다.


우리도 돌아봐 달라며 말하던 과거   아이에게 사과의 말을 해야   같다. 그땐 그게 최선인  알았던, 모든  서툴고 미숙했던 나였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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