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고 뉴욕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도로에서 피어나는 증기, 건물 외관을 거미줄처럼 감싸고 있는 비계, 화려한 벽화, 세찬 빌딩풍, 주택가의 초록, 현관까지 이어지는 낮은 난간과 계단, 하늘을 찌를듯한 마천루, 지상의 별처럼 반짝이는 야경 등.
멜팅 팟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삼킨 듯한 도시, 뉴욕. 동네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뉴욕의 중심부 맨해튼은 늘 소란스럽고 시끌벅적하다. 특히 온몸으로 메시지를 내뿜는 타임스퀘어는 그야말로 뉴욕! 이라고 소리치는 듯하다. 주말 낮이면 떠밀리듯 걷게 되는데 번잡함과 소란스러움이 이곳의 정체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도보로 20분 떨어진 센트럴파크 주변부, 5번가에 다다르면 소란스러움은 잦아들고 여유롭고 잔잔한 풍경이 이방인을 맞이한다. 전통적인 부촌이 풍기는 고고함이랄까. 좋은 수식을 온몸에 두른 듯한 명품이 즐비한 거리 탓일까. 특히 센트럴파크를 걷다 보면 잠시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웅장한 녹음과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들판에서는 사람들이 오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세련된 소호, 투박한 멋이 남아있는 브루클린와 윌리엄스버그, 현대적인 월스트리트까지. 페리를 타고 허드슨 강을 건너며 잠시나마 숨을 고르고 다시 도시의 매력에 집중하게 된다. 자고 일어나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설정의 영화, 뷰티인사이드처럼 매번 다른 얼굴로 이방인을 현혹하는 곳이다, 뉴욕은.
특히 이 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기념일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동네 마트만 가더라도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사람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메시지를 담은 카드부터 풍선, 문구와 완구 용품까지. 눈이 즐겁다. 매번 기념일마다 전력을 다하다보면 1년이 금새 지나갈 것 같다. 혼란스럽고 치열한 도심에서의 삶을 견디는 그들만의 방식일까. 가족 친화적인데다 여가는 심심하게 보내는 이들의 작은 즐거움일까.
각종 기념품도 특징적이다. 대형 브랜드는 물론, 각종 미술관과 박물관에 가도 욕심나는 물건들이 한가득이다. 도심 골목의 독립 서점에도 아기자기한 기념품이 눈길을 잡는다. 물건 욕심이 없는 소박한 취향의 이방인에게도 충분히 유혹적이다.
마치 자본주의의 집결체 같은 '화려함' 이면에 우울한 얼굴도 숨겨져 있는 것을 안다. 수만 가지 얼굴을 지닌 이 도시, 뉴욕에서 사람들은 어떤 소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