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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Choi Nov 01. 2018

Sabbatical Year on the road

-길 위의 안식년

Day 74 둘이서


  지난밤 늦게 3주간의 순례를 마치고 두 분의 캐나다 할아버지가 우리 방에 체크인했다. 순례자였다니 반가웠다. 결국 한 방 6명 중 4명이 순례자인 셈이다. 반가움도 잠시 덜컥 코골이면 어쩌나 하고 걱정부터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내 침대 2층 분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온 침대가 다 울렁거렸다. 나머지 한 분은 정말 장난 아니게 코를 골아댄다. 밤새 뒤척이며 짜증이 한계에 다달아, 가서 흔들어 깨우고 싶을 정도였다. 차마 어쩌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새벽 일찍 짐을 챙겨 나왔다. 룸메이트 ** 씨도 한 잠도 못 잤다며 둘이 같이 일찍 나와 핫초콜릿에 에그타르트를 먹으며 두 할아버지 뒷담화. 오늘은 일단 최대 많이 걷고 돌아다녀서 피곤하게 만들기로!


  대성당 앞에 벼룩시장이 열린다고 해서 가봤는데 너무 일찍 나왔는지 아무도 없다. 강 쪽으로 내려와 볼사 궁전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 강변은 지난밤의 파티 가 뒷정리되지 않아 어수선하긴 했지만 사람은 많지 않아 한산했다. 볼사 궁전 은 가이드 투어만 가능해서 한 시간 뒤 또 오기로 하고 입장권만 미리 끊었다. 각자 보고 싶은 걸 보고 만나기로 했다. 난 레로와 이르마오 서점에 다시 갔다. 여전히 입장 티켓 줄도 길고 서점 안에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10곳 중 하나라니 관광객들이 놓칠 리 없다.《해리 포터》를 쓴 작가도 이 서점에 와서 영감을 얻었다니 정말 마법처럼 해리포터와 그 친구들이 금세 튀어나올 만한 분위기다. 사실 이곳은 아르누보 스타일(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새로운 스타일로 대칭적이고 화려한 곡선 양식)의 인테리어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은 중간에서 양쪽으로 갈라지며 소용돌이치듯 나선형으로 돌아 올라간다. 특히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우아한 문양은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새겨져 있고 파란색으로 둘러싼 글라스 장식은 포루토의 전통예술 아줄레주와 이슬람의 전통 패턴을 연상시킨다.


  서점에 와서 책보다 책방의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긴 처음인 것 같다. 하지만 단지 책을 팔거나 사는 곳이 아니라 책에 대한 좋은 느낌을 얻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을 것 같다.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만 아니라면 어느 구석에 걸터앉아 책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쉬울 뿐이다. 아쉬운 마음에 지나다니면 서 헌책방을 찾아보니 마침 또 눈에 띄었다. 오래된 종이 냄새 가득한 헌책방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안타깝지만 포르투갈어 아니면 에스파냐어, 프랑스어로 쓰인 낡은 책들, 그다음 영어책은 몇 권 없다. 바래가는 종이 냄새로 족해야 했다.


  지난번 그라나다에서 알람브라 주요 궁전을 놓쳤는데, 스페인 알람브라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포르투갈의 볼사 궁전을 볼 시간이다. 드디어 가이드와 함께 20여 명의 관람객이 따라 들어갔다. 원래 19세기부터 포르투갈의 상업 조합 건물로 쓰이다가 최근엔 증권거래소로 사용되었고 이젠 공식 행사나 콘서트 홀로 이용된다고 한다. 포르투갈이 한창 잘 나갈 때 알람브라에서 모티브를 얻어 ‘아랍의 방’을 18년간 지었다고 한다. 정말 화려함의 극치였다. 가보지 못한 알람브라 궁전이 다시 아쉬워졌다.


  ** 씨와 함께 포르토에서 유명하다는 문어밥 식당을 찾으러 다니다가 유명한 통조림 가게를 발견했다. 지나치던 길에 있었는데도 내 관심 밖이라 몰랐다. 항구도시다 보니 생선요리는 물론 생선 통조림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모양이다. 가게가 특별하긴 했다. 이제 사람들은 물건만 보지 않고 물건을 파는 가게의 장식과 스토리, 이미지도 모두 고려하나 보다. 블로그에 올라온 식당은 저녁부터 영업 시작이라 닫혀 있어서 그 옆에 손님들이 많은 다른 식당에서 문어 정식을 시켰다. 문어 다리 두어 개 튀긴 것과 토마토소스에 끓인 밥이 나왔다. 문어는 스페인에서 먹어봤던 것처럼 아주 부드러웠다. 오랜만에 혼밥이 아닌 둘이 함께 하는 식사였다. 식후에 장터 구경도 하고 공원에도 들러 그늘에 앉아 한참 쉬었다. 공원 안에는 재미난 철제 작품이랑 내 체형을 꼭 닮은 나무들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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