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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Jun 19. 2018

#87 <데드풀> '야매' 자를 못 떼는 이유  

<데드풀> 시리즈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힐링 팩터'란 액션물에서 능력자가 지닌 능력을 뜻하는데, 흔히 악당에게서 입은 피해를 빠른 재생능력으로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울버린은 무슨 부상이든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초재생능력을 가졌고, 덕분에 늙지도 않는다.  


주인공 '웨이드 윌슨(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에게도 주어진 힐링팩터는 '야매' 히어로로 거듭나게 한다. 웨이드는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죽을 뻔하지만, 임상실험으로 신체가 재생되는능력, 힐링팩터를 지니게 된 덕분에 죽을 위기를 모면한다. 자가치유능력을 넘어 불사신, 일명 '데드풀(Deadpool)'이 되어버린 것이다.


항상 쌍칼을 들고 다니는 데드풀. 그의 액션씬이 모두 유혈이 낭자한 것 이유이기도 하다. <데드풀>의 스틸컷 


- 그런데 왜 '야매' 자가 붙냐고?


안타깝게도 히어로 영화 <데드풀>은 우리의 현실을 200%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웨이드는 힐링팩터 능력을 얻은 대신에, 임상실험의 부작용으로 온몸이 화상 입은 것처럼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다. 잘생긴 히어로 대신, 보기만 해도 악당 같은 얼굴을 가진 히어로가 등장한 것이다. 신체가 재생될 때도 울버린처럼 단박에 회복되지 않는다. 신체부위가 자라는 데 세월의 흐름이 필요하듯이 데드풀의 잘린 다리도 갓난 아기의 얇고 짧은 다리부터 시작한다(심지어 <데드풀2>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처럼 <데드풀>은 어딘가 모르게 태엽이 하나 나간 히어로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심지어 마블 유니버스의 히어로물을 질색하는 사람들조차도 이같은 '사실적인' 히어로에 열광한다. 그는 사실적이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 따지고 보면 재밌지도 않다
 
보통 데드풀의 특징으로 '유쾌한 성격'과  'B급 정서'를 든다. 그러나 사실 유쾌한 성격이 특징이라고 하기엔 이미 다른 영화에서 많이 목격해왔다. 가벼운 입담이나 깨방정 떠는 행동은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지분이 더 많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스파이더맨(톰 홀랜드)은 사소한 일에도 정의감에 불타올라 일을 벌이고 다닌다. 수많은 잔실수로 아이언맨 밑에서 특별 감시를 받는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매순간마다 내뱉는 데드풀의 B급 유머가 정말 특징이라 할 수 있을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듯, 그가 내뱉는 유머들은 노잼에 가깝다. B급도 아닌 구닥다리 삼류 유머에 머무는 수준이다. 돌연변이 소년을 구하러 팀을 꾸려 팀명을 정할 때, '엑스맨'은 너무 성차별적이지 않냐며 '엑스포스'라고 짓는 모양새는 전혀 웃기지 않다.


시국을 반영한 풍자와 해학이라고 하기엔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요한 문제인지 사안과 맥락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유머라 부르는 희롱 속에 숨겨진 특유의 무지함만 들켜버린 것 같았다. 주변에 튀어볼려고 단어 선택, 타이밍, 상황 등 모든 면을 꼼꼼하게 따지지 않고 맥락없이 야한 농담 했다가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 만드는 사람이 한 명쯤 있지 않은가. 데드풀의 유머가 딱 그랬다.


<데드풀1>에서는 '로맨틱 이야기', <데드풀2>에서는 '가족 이야기'라고 데드풀은  자신이 영화의 막을 연다. <데드풀>의 스틸컷  


그의 천부적 유머러스한 감각이라기 보다는, 각종 패러디와 레퍼런스의 향연, 그리고 제 4의 벽을 깨고 관객과 소통하는 모습이 'B급 정서'로 사랑받았다. 데드풀은 이야기 속에 있다가도 영화의 제 3자라고 느껴질 만큼 잠시 나와 관객에게 말을 걸며 시공간을 자유롭게 움직인다. 이러한 와중에 라이언 레이놀즈가 예전에 연기했던 '그린 랜턴'을 까내리기도 하여 데드풀이 실제 인물인 듯한 친근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외에도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로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엑스맨> 시리즈를 본 사람은 누적된 레퍼런스와 패러디 유머를 즐겁게 향유할 수 있다.


- 비교적 인간적이긴 하다


'야매' 히어로를 표방하는 데드풀은 인간적이기도 하다. 주류 히어로가 하나 같이 갖고 있는 거대 사명감 따위는 없다. 보통, 히어로들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역, 나아가 세계 전역을 구하기 위해 악당을 무찌른다. 배트맨은 고담시를 위해, 어벤져스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데드풀에게는 착한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갖고 있을 약간의 정의감만 있을 뿐이다. 동네의 이웃에게 위험한 일이 닥치면 '맞짱' 떠서 구해주는 정도.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그가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민과 국가의 안위를 위해 열일 중인 정치인보다 주변에 나를 괴롭게 하는 자를 혼쭐내주는 동네형이 피부에 더 와닿기 마련이다.  


여기에 캐나다 용병 출신인 데드풀이 싸움 자체에 쾌감을 느끼니, 투철한 사명감 없이도 액션 히어로 무비의 흔한 스토리 전개가 가능한 것이다. 그가 인간적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야매' 히어로이기 때문에 장단이 분명하다. 그러나 오랜 히어로로 사랑받기 위해서는 진짜배기 '야매' 히어로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다음 시리즈에선 술자리에서 누군가 취한 상태에서 내뱉는 맥락 없는 유머따위는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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