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나는 미국행 교환학생을 포기했다. 겨울에 죽어라 공부했던 토플은 장롱에 쳐박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포기한 이유는 여럿 있었다.
원래 가고 싶었던 곳은 영국이었고, 당시 국제교환학생 담당자에 의한 잘못된 정보로 아이엘츠가 아닌, 토플을 준비하면서 어쩔 수 없이 지원한 미국 대학교였다. 영국-아이엘츠라는 건 상식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다시 한 번 확인차 직접 찾아봤어야 했는데 순진하게도 믿어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미국이라도 가고 싶었다. 어릴 적 가족과 여행차 방문했던 LA에 대한 추억은 강렬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나는 어릴 적 여행의 순간순간을 모두 기억한다. 그래서 난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했던 현장이, 느낌들이 맞는지. 그리고 1년 동안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그곳에서도 기회를 얻어 일도 하고 싶었다. 좌충우돌을 경험하고 싶었던 듯.
그러나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동아리에서 쌓은 나의 역량이 실제에 먹히는지 궁금했다. 한국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세상들이 많았다. 그곳에서 나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는 이유가 70%였다. 나머지 돈 걱정 10%, 정말로 애타게 찾던 사랑이 생겨버려 가고 싶지 않음 8% 정도였다.
그 당시엔 후회는 없었다. 짊어지고 있던 고민들을 떨쳐버릴 수 있어서 오히려 개운했다. 그렇게 깔끔히 교환학생은 가지 않았고, 사람들은 내게 인생 최고의 순간들을 놓쳤다며 ‘미쳤냐’고 반문했다. 별 생각이 없었다. 언젠가 기회가 또 있겠지, 거듭 되뇌이며 자기최면을 걸 뿐. 나름 한국에서 보낸 2015년도 후회 없이 살았다. 대외활동, 사랑, 인간관계 등 20대의 정점을 찍을 만큼 정말로 파란만장한 해를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감이 밀려왔다. 취준 기간이 길어질수록 나는 내게 반문했다. 언제 가? 이제 정말 시간이 있을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단연 교환학생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또, 생각해보자면(자기합리화해보자면), 교환학생을 갔다면 내가 삶에 대해 깊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질 수 있을까. 되려 그당시 나처럼 보이는 것에 더 신경 쓰지 않았을까. ‘seize the day'이나 ’충(忠)‘ 따위처럼 막연한 인생모토를 계속 유지했을 것이다. 지금은 나잇살과 별개로 시야가 넓어졌다. 깨달은 게 많다. 그다지 많은 경험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경험들마다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고민하고, 정의내리기 노력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되는 대로 살자‘다. 인간관계도, 사랑도, 내 일도, 그래서 내 인생도 드라마나 영화처럼 되지 않았다. 진심을 다해도 이어지지 않는 관계가 있고, 최선을 다하고자 했는데도 안 따라주는 일들이 있다.(물론 정말 내가 노력이라는 걸 했지만 객관적으로 안한 축에 속할 지도 모른다. 허나, 이와는 별개로). 성격도 2-3년 전 지인들이 어색해할 정도로 급변했다. 과거랑 달리 나는 굉장히 회의적이고, 노잼력 200%에 이를 만큼 진중하다. 그래도 좋은 점은, 노잼 삶이라서 사소한 게 너무 재밌다는 점이다. 언제나 매일매일이 축제 같은 인생을 살기 위해 이런저런 이벤트를 벌이며 얻었던 재미와는 또다른, 귀염뽐짝한 재미들이다.
오늘도 나는 교환학생 포기한 게 후회 없는 선택이라 자기합리화하는 글을 쓰며 다독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