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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Sep 26. 2017

<시리어스 맨> 우리 모두 시리어스맨

*영화 <시리어스 맨>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Receive with simplicity everything that happens to you
-Rashi



영화는 랍비의 단막극으로 막을 연다. 이야기의 방점은 랍비의 정체가 유령인지에 관한 여부다. 그런데 이야기는 절정에 달하는 순간 갈등의 원인인 랍비가 퇴장함으로써 끝이 난다.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 끝이 난다. 어떠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나 해석의 여지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온갖 추리를 동원해 결말의 의미를 해석하는 관객에게 코엔 형제는 말한다. '이야기 속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정답을 알려고 하지 말라'.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다.


<시리어스 맨> 스틸컷. 주인공 '래리'


대학의 물리학 교수인 '래리'는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사회화가 부족한 동생, 신경질적인 딸, 계속 무언갈 고쳐달라는 아들, 조금씩 그의 집을 침범하는 것 같은 이웃 등 여느 평범한 사람들처럼 자잘한 고민이 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것들은 새로운 문제와 함께 그의 삶의 영역을 점차 위협하기 시작한다. 대학 종신 재직권 심사에서 낙마할 위기에 놓이는 한편, 시험에서 낙제한 한국인 학생이 그의 사무실에 돈 봉투를 몰래 놓고 간다. 전자는 계속해서 대학에 날라오는 악의적인 편지, 후자는 한국인 학생이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작 문제의 당사자인 래리는 잘못이 없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그는 아무것도 한 게 없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


가정에서는 더 가관이다. 동생은 도박 혐의로 경찰들에게 주시당하고 있고, 아들과 딸은 똑같은 문제로 계속 싸우기만 한다. 개중에 가장 큰 재앙은 평생 동고동락한 아내가 뜬금없이 이혼을 요구한 것이다. 오래된 이웃 '싸이'와 재혼을 해야 하니 이혼 증명서인 '게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황한 래리는 수많은 이유를 생각해보지만 당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다. 내연남 '싸이'는 래리 앞에서 미안해하거나 뻘쭘해하는 기색 대신 "우린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야"와 같은 '우리'의 문제로 떠넘겨버리는 멘트를 던진다. 급기야 아내는 싸이와 함께 이 집에서 살아야 하니 나가달라고 얘기한다. 래리가 반문이라도 하면,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우매한 물음인 마냥 래리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회의감이 든 래리는 결국 세 명의 랍비를 찾아간다.  


<시리어스 맨> 스틸컷. 아내 '주디스'와 그녀의 내연남 '싸이'


영화의 전반부에는 래리에게 닥친 수많은 문제들이 나왔기 때문에 세 명의 랍비를 찾아감으로써 점차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내용을 중심으로 흘러갈 것 같았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다. 래리는 두 명의 랍비로부터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마지막 랍비는 만나지도 못한다. 첫 번째 주니어 랍비는 벌어진 일들을 나쁘게만 바라볼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곤 말한다. "저기 저 주차장을 바라봐".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지만, 사실 진정한 우문현답이다. 삶은 불확실한 것 투성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도 '굳이' 나쁘게 볼 필요 없다는 것. 아무 관계없는 주차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 문제에서 잠시 떨어져 있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갑작스러운 '싸이'의 죽음으로 장례식 비용까지 치르게 된 래리는 두 번째 랍비를 찾아간다. 그는 이빨에 대한 기묘한 이야기를 해준다. 환자의 이빨에서 신의 계시를 발견한 치과의사가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그 이빨이 무슨 계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고 한다. 미래의 일은 아무도 모르니 굳이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요한 일이 아니라, 곧 지나갈 해프닝이니 잠시 동안 그것을 느끼고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시리어스 맨> 스틸컷. 이웃집 여자


두 명의 랍비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의 정답을 찾아 헤매는 래리는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불확실한 세상이 밉다. 그러나 간과한 것이 있다. 불확실한 문제들이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지는 그 순간에도 래리는 지붕 위에서 우연히 나체로 선탠하는 이웃집 여자를 목격하고 야릇한 감정을 느낀다. 그녀와 섹스하는 꿈까지 꾼다. 과격하게 얘기하자면 불확실성으로 고통받고 있는 그는 사실상 불확실성으로 인한 혜택을 보고 있는 셈이다.  


인생의 불확실성 덕분에 래리의 문제도 걱정과 달리 쉽게 풀린다. 아들의 성인식 날, 아내와 화해하게 되고 종신 재직권 문제도 해결된다. 그런데 여태껏 걱정하던 고민들이 '진짜' 고민이 아닌 것 마냥, 마지막에 래리는 의사로부터 갑작스러운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검사 결과에 대해 긴히 할 얘기가 있으니 당장 만나서 얘기해보자는 것이다. 이 장면 다음에 바로 토네이도가 몰려오는 장면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새로운 고민이 나타날 것임을 예측한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하나가 해결되면 또 미미하게 잠들어 있던 다른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항상 이유 모를 일들이 갑자기 우리의 삶에 찾아와 깊숙이 자리 잡는다. 그 때 마다 우리는 그 일을 '일(thing)'로 보지 못하고 '문제(problem)'로 프레임을 한 겹 더 씌운다. 그래서 가볍게 넘어가거나 관조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어떠한 의미를 찾는다. 우리도 모르게 '시리어스 맨'을 자처하는 셈이다. 영화는 말한다. 어차피 시리어스 맨으로 살아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고. 그러니 시리어스 맨으로 살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래리의 해프닝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러니 1시간 후에 일어날 일도 알지 못하는 이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우리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워야한다. 최대한 일에 대한 의미 부여나 해석의 흐름을 막고 일을 일 그 자체로 인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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