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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Jan 09. 2018

#70 <세 번째 살인> 진실의 행방은

*본 글은 영화 <세 번째 살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피의자는 변호인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변호인은 피의자의 살해동기를 찾아나선다. 피해자의 딸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도 슬퍼하지 않는다. 피의자, 변호인, 피해자의 딸. 이 영화는 일반적인 법정드라마와는 다른 인물들과 그 관계를 보여준다.

영화 <세 번째 살인> 공식 스틸컷 


'미즈미'가 자신의 공장사장을 살해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문을 연다. 그리고 미즈미는 살해 사실을 자백하고 두 번이나 다녀온 감옥에 가기를 자처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진술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갈 곳 없는 그를 거둬준 이에게 살해충동을 느꼈다는 진술은 충분하지 않다. 그의 변호인 '시게모리'는 형량을 낮추기 위해 계속해서 면담을 요청하지만 피의자는 자신의 형량감면을 위해 진실을 말하기커녕, 말을 번복할 뿐이다. 적당히 사건을 마무리하려 했던 시게모리는 직접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취재와 수사를 거듭할 수록 사건의 진실은 더 미궁 속으로 빠진다. 십자가 모양으로 불탄 피해자의 사체, 피해자 아내와 딸의 의뭉스러운 관계, 피해자 딸의 빈번한 등장은 사건 추리에 혼란만 가중시킨다. 후반부까지 영화는 진실에 대해 아무 말이 없다.


물론 후반부에 피해자의 딸이 시즈모리에게 충격적인 진술을 하면서 잠시 사건이 일단락되기도 한다. '죽은 아빠로부터 꾸준히 성폭행을 당해온 자신을 구제하기 위해 미즈미는 살인을 해주었다' 여태껏 그녀의 엄마가 이를 묵인하는 듯한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복잡하게 꼬인 실타래가 풀리는 듯했다.  '피의자는 한 쪽 다리를 저는 그의 딸과 유사한 피해자의 딸을 구제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맞춰지지 않던 퍼즐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건 다 거짓말이다."라는 미즈미의 주장은 사건을 원점으로 되돌려놓는다.

영화 <세 번째 살인> 공식 스틸컷. 범죄현장에  남겨진 십자가 모양


영화는 점점 결말로 향하지만, 사건의 전말은 출발선에서 나아가지 않는다. 영화는 끝까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상징적인 장면들의 나열로 단서를 보여줄 뿐이다. 미즈미가 애지중지하던 새가 죽었다. 새의 무덤에는 십자가 모양이 새겨져있다. 범행장소에 있던 피해자의 사체와 동일한 형태다. 이때 우리는 추리한다. 미즈미는 유일하게 인간의 생사결정권이 주어진 신 또는 그가 그토록 존경하는 판사와 일체가 되고싶었던 것일까. 두 사람의 공통점은 누군가의 심판을 하고 구원한다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 미즈미는 살인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의미를 찾고 싶었다.  즉 그가 규정한 '악'의 살해를 통해 세상을 심판하고 구원하고자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이 또한 몇 가지 단서를 통한 추측에 불과하다. 영화는 미즈미의 범행동기를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러면 도대체 진실의 행방을 알려주지 않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뭘까. 이는 다른 상징적인 장면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바로 시게모리와 그의 딸의 씬에서 말이다. 딸은 시게모리 앞에서 눈물 연기를 할 줄 안다고 자랑한다. 이는 단순히 바쁜 아빠의 무관심에 애정을 갈구하는 딸의 행동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다. 딸은 가짜 눈물을 '만들어'낸다. 이는 우리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진실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진실은 어딘가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입장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법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양극단에 서있는 피고와 원고는 적당한 근거와 논리로 '그럴듯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진실을 규명하는 것보다는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만들어진 '진실'을 설득하고, 그것들 중 적당한 '합의점'을 찾아낸다. 즉 그 합의점이 진실이 되는 셈이다.  


그토록 우리가 찾고자 했던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다양한 이해관계에 따라 구성되는 진실만 존재할 뿐이다. 영화 속에서 '공장사장이 죽었다' 외에 다른 진실은 단지 진실에 가까운 여러 이들의 추측에 불과하다. 사람에 따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게 진실이다. 마지막에 시게모리와 미즈미는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둘의 얼굴이 겹치는데 서로 안에 서로의 인격이 담긴 듯한 느낌을 준다. 마치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형상이 달라지는'진실' 이라는 '텅 빈 그릇'처럼.  

영화 <세 번째 살인> 공식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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