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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역뿌리 Mar 30. 2018

<레이디 버드> 자유롭게 사는 것이란

이 글은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영화의 내용을 담기도 하지만 영화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메시지를 담기도 한다. 특히 사회에서 용인되기 어려운 소재이거나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일 때 더더욱 그렇다.  

     

고대하던 그레타 거윅의 첫 데뷔작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궁금했다.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뭘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레이디 버드(Lady Bird)’는 그녀의 이름이다. 가장 방황하던 시절에 그녀가 그녀에게 붙여준 이름.

     

<레이디 버드> 공식 스틸컷.


새크라멘토에 사는 열일곱 살 시골소녀, 크리스티나는 그녀를 '레이디 버드'라고 칭한다. 그 나이대에 장난삼아 자신에게 예명을 붙이기도 하지만 이 소녀는 조금 다르다. 반장선거에 관심이 없지만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으로 반장선거에 나간다. 누군가 그녀를 본명으로 부르기라도 하면 단호하게 “Lady Bird."라고 얘기한다. 가족에게조차 ‘레이디 버드’라 불리길 바라는 소녀다.

     

빨간 머리 소녀는 왜 자신이 지은 이름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새크라멘토가 싫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녀를 미워하는(실상, 미워하지 않는 것이지만) 심리상담가 엄마가 싫고, 일명 신과 결혼한 사람들이 가득한 가톨릭 학교가 싫다.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 대학을 뉴욕으로 가는 것. ‘자유로운 뉴요커’가 그녀의 워너비다.

     

이처럼 어디에서나 자유롭고 싶은 그녀는 고등학교에서도 그녀의 인생을 낭비할 수 없다. 쿵짝이 잘 맞는 절친한 친구 ‘줄리’와 (오디션만 보면 전원통과 시켜주는)뮤지컬 동아리에 들어가고, 두 번의 사랑을 한다. 뮤지컬 동아리에서 첫 남자친구 ‘대니’를 만나 서로를 소울메이트라 칭하며 애틋한 사랑을 키워나가는가 하면, 어쩌다 노는 무리에 끼어 두 번째 남자친구 ‘카일’을 만나 난생 첫 경험을 한다. 중간 중간에 줄리와 신경전도 벌이며 그녀는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그 어떤 학생보다도 ‘레이디 버드’로서 스펙터클한 일들을 만들며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듯했다.

     

<레이디 버드> 공식스틸컷. 늘 자신을 미워하는 엄마지만 그녀는 굳게 믿는다. 엄마는 자신을 많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 때문에 그녀는 주체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남들과 다름을 추구했던 것들이 결국 우상 속에 갇힌 표면적인 것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동경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는 ‘주체성’이라는 것은 쉽게 획득되지 않았다. 영혼의 동반자라 생각했던 대니의 할머니가 그녀가 꿈꿔왔던 파란 집에 살지 않았더라면 그를 그토록 사랑했을까. (그녀의 초라한, 철길 옆 집을 친구에게 보여주지 않는 장면은 그녀가 ‘집’, ‘풍족한 생활’에 대한 결핍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레이디 버드가 진정으로 주체성을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갈등을 극복하면서부터다. 게이였던 래리의 말할 수 없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할 때, 그녀는 그제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자신과 너무 다르지만 사랑하려 했던 카일이 애초부터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을 때, 그녀는 진짜 자신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오롯이 그녀 자체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간 그녀를 미워하는 줄로만 알았던 엄마의 편지들을 뉴욕에서 읽게 되었을 때, 그녀는 그제야 ‘레이디 버드’가 아닌 ‘크리스틴’으로 살아가기를 자처한다.

     

그녀만의 애칭을 버리기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의 모든 것이 담긴 이름 없이도 그간 많은 갈등과 고뇌를 통해 다져진 자아가 이미 굳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뉴욕에서의 생활을 시작하는 엔딩을 보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란 생각보다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유롭게 사는 것이란 어떠한 짐도 짊어지지 않고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에서 마주하는 소소한 고비를 겪으며 내면의 자유는 저절로 획득되는 것일 지도 모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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