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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옹수 Dec 25. 2019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파스칼]

"인간은 허영에 물든 심정적 존재이다."


데카르트 René Descartes (1596~1650)를 포함한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과 믿음 역시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생각이나 소박한 소망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과거에 살았던 인간을 되돌아보아도 아니면 지금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인간을 살펴보아도, 우리는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그리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은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라기보다 오히려 권태, 탐욕, 잔인, 자만, 허영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을 낙관했던 데카르트의 순진함을 조롱하면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응시했던 철학자가 곧 나타났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르겠다. 그가 바로 파스칼 Blaise Pascal (1623~1662)이었다.


파스칼은 코기토와 같은 추상적인 사유주체가 아니라 화장품 냄새 혹은 잔인한 피 냄새가 풍기는 구체적인 인간, 아니 정확히 말해 몸을 가진 인간을 응시하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파스칼은 데카르트와 달리 우리의 마음에는 이성보다는 오히려 심정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게 된다. 바로 이 심정의 측면에서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엿보려고 했던 것이다.


심정 cœur은 이성이 모르는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수많은 일에서 이것을 알 수 있다. 심정은 자기가 열중하는 데 따라서 자연적으로 보편적 존재 l'être universel를, 아니면 자연적으로 자기 자신 soi-même을 사랑하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는 데 따라 전자 또는 후자에 대해 냉담해진다. 당신은 전자를 버리고 후자를 선택했다.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과연 이성에 의해서인가? ≪팡세 Pensées≫


파스칼은 인간이라면 심정과 이성이라는 두 가지 마음의 계기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이성이 "기하학적 정신 esprit de géométrie"과 관련된다면, 심정은 바로 "섬세한 정신 esprit de finesse"과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눈에는 기하학적 정신, 혹은 이성만을 신성시하는 데카르트의 사유는 매우 편협하고 제한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이성이란 것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보편적 능력이라면, 심정은 개체들마다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직관적 감성과 판단 능력을 의미한다.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의 심정은 신과 같은 보편적 존재를 사랑하거나 아니면 자신을 사랑하는 감정을 즉각적으로 이끌어낸다. 그는 이 지점에서 인간의 호오好惡가 이성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심정에 따른 즉흥적 결과일 뿐이라는 점을 강하게 의식했던 것이다. 그래서 파스칼은 물어보는 것이다.


당신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과연 이성에 의해서인가?


한편 우리 기독교를 옹호하고 선교하려는 파스칼의 또 다른 전략을 감지할 수도 있다. 그것은 물론 아퀴나스의 방법이 아니라 오컴의 방법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성으로 무언가를 알아서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라, 항상 심정으로 무언가를 사랑해서 알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파스칼이 말했던 것처럼 동시대 사람들은 심정적으로 신을 사랑하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그렇다면 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방법은 분명하다. 인간들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도록 하면 된다. ≪팡세≫ 전반부에서 파스칼이 그렇게도 인간의 어두운 면을 들추어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렇게 잔인하고 추하고 변덕스러운 인간을 사랑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래서 파스칼의 종교철학은 묘하게 피학증적인 데가 있다. 그러나 파스칼 덕에 우리는 인간이 지성적인 존재라기보다 심정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이것도 또 아이러니 아닌가. 파스칼은 인간의 모습에 혐오감을 표현했지만, 우리는 그 모습을 인간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인도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누군가 자신을 아껴준다는 걸 안다면, 우리는 그만큼 더 자신을 사랑하게 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우리 시대의 명언도 있지 않은가. 대개의 경우 남들이 자신을 아끼거나 존경하는 이유는 대개 그들이 쉽게 가질 수 없는 걸 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미모일 수도 있고, 열악한 보건 환경에도 불구하고 복숭아 빛 피부를 자랑하는 건강일 수도 있고, 아니면 모든 사람들을 고개 숙이도록 만드는 권력일 수도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것을 쉽게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지만 우리는 남들의 시선과 존경을 한 몸에 받으려는 욕망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허영이 우리 내면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허영은 사람의 마음속에 너무도깊이 뿌리 박혀 있는 것이라서 병사도, 아랫것들도, 요리사도, 인부도 자기를 자랑하고 찬양해줄 사람들을 원한다. 심지어 철학자들도 자신의 찬양자를 갖기를 원한다. 이것을 반박해서 글을 쓰는 사람들도 훌륭히 썼다는 영예를 얻고 싶어 한다. 이것을 읽는 사람들은 읽었다는 영광을 얻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아마 그런 바람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이것을 읽을 사람들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팡세≫


미모가 아름답다고 추앙받던 배우는 나이 들어 초라해지면 우울증에 빠지거나 약물중독에 걸리기 쉽고, 심지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자신의 젊은 날의 아름다움, 팬들이 찬양했던 미모가 바로 자신의 본모습이라고 항상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 들어 쭈글쭈글해진 얼굴을 거울을 통해 응시하면 배우는 자신의 정체성이 와해되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달리 젊은 시절부터 추녀라고 손가락질받은 여성은 외모란 것이 우리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 얼굴이 더 볼품없이 변했다고 할지라도, 이런 여성은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녀의 허영은 "미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한 마음씨가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다"라는 속삭임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들려주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녀와 추녀가 모두 자기 나름의 허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파스칼에 따르면 인간은 항상 외부로부터 칭찬 혹은 찬양을 받으려고 갈망하는 존재이다. 물론 자신의 행실이 타인의 칭찬과 찬양에 부합되는 것이라면,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불행히도 인간이 과도한 칭찬이나 찬양을 욕망한다는데 있다. 독재자는 훌륭한 통치자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 하고, 바람을 피우는 사람조차도 지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심지어는 도둑도 정직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 이것은 사람의 허영 vanity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 'vanity'라는 말보다는 그 번역어인 허영虛榮이란 글자가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이 글자는 '비어 있다'라는 의미의 '허虛'란 글자와 '꽃이 화려하게 핀다'는 의미의 '영榮'이란 글자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내실은 비어있지만 겉은 매우 화려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부유한 척, 미인인 척, 지적인 척, 좋은 집안 출신인 척, 명문대학을 졸업한 척, 이런 수많은 포즈들이 바로 허영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파스칼은 자신도 결국 허영의 논리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은 허영의 존재라고 주장하는 자신의 글을 통해서 그 자신도 남들의 칭찬과 찬양을 들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데카르트가 인간이 가진 선천적인 양식, 즉 이성을 긍정하고 있던 근대철학의 여명기에, 지금 파스칼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 무의식적인 허영의 노예라는 사실을 토로했던 것이다. 물론 파스칼이 이렇게까지 주장하는 데는 분명한 종교적 이유가 있다. 이렇게 인간이 역겨운 존재로 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된다. 물론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이 바로 신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신을 사랑할 수 있는 필요조건은 갖추어졌다고 할 수 있다. 얼마나 자애롭고 인자하신가? 이런 역겨운 허영 덩어리를 사랑하는 신이란 존재는. 여기서 파스칼의 피학증은 마침내 그 종교적 엑스터시에 오를 준비를 끝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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