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적인 것과 파스칼적인 것
철학은 여행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타자와 마주치고 대화하지 않으면 철학적 사유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서양의 경우 소크라테스의 대화에서 철학이 출발하고, 동양의 경우 제자와 대화하면서 공자의 사유가 전개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대로 신학과 같은 독단적 사유는 여행을 혐오하는 법이다. ≪성경≫이든 ≪코란≫이든 ≪법화경≫이든 모든 것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진리를 알고 있다고 맹신하기에 독단적 사유는 여행뿐만 아니라 대화도 인정하지 않는다. 여행을 해도 그것은 배우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가르치겠다는 의지, 즉 포교의 의지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런 여행은 말이 여행이지 정복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이성적인 사유주체, 즉 '코기토'를 발견한 데카르트는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타당한 평가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가 당시 가장 자유로웠던 도시 암스테르담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프랑스 촌놈이 대도시에서 얼마나 문화적 충격을 받았을지 미루어 짐작이 가는 일이다. 바로 여기에서 그의 회의와 성찰은 이루어졌던 것이다. 한마디로 데카르트는 여행을 했던 것이다. 낯선 곳에서 겪은 경험만큼 우리에게 회의와 성찰의 시간을 주는 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암스테르담에서 그는 프랑스에서 보낸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이때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사유주체, 즉 코기토가 탄생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렇게 탄생한 코기토를 낳은 진정한 어머니는 바로 암스테르담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데카르트의 코기토는 바로 중세의 질서에서 벗어난 자유로움, 하지만 동시에 고독한 도시인들의 내면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근대 대도시 사람들의 내면에 대한 짐멜 Georg Simmel (1858~1918)의 통찰, 즉 기분이나 정서적 관계에 의존했던 중세적 삶에 비해 근대 "대도시의 정신적 삶은 지적 성격을 더 강하게 띤다"는 통찰은 매우 시사적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에는 대도시의 번잡함, 주체의 고독함, 타자에 대한 지적인 반응 등 다양한 도시적 계기들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후광에 가려 파스칼은 종종 에세이나 썼던 사람으로 기억되곤 한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볼 때 파스칼은 오히려 데카르트보다 더 심오하다. 그것은 그가 근대사회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데카르트가 인간을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인간은 결코 지적이지 않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근대사회를 직시했던 파스칼의 힘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파스칼은 근대사회를 관찰할 수 있는 거리감을 어디에서 얻은 것일까? 바로 ≪성경≫이다. 혹은 중세적 사회다. 데카르트처럼 회의하고 성찰하기 위해 파스칼은 근대사회의 상징 암스테르담과 같은 곳을 여행할 필요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이미 그가 살았던 곳에는 근대 사회가 새로운 바람처럼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가 여행을 통해 중세와 근대 사이의 차이를 느꼈다면, 파스칼은 자신에게 몰려드는 근대적 삶으로 양자 사이의 차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파스칼이 기독교적 세계, 혹은 중세적 세계로 회귀하자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는 성경적 세계라는 관점에서 관찰되는 근대인의 비참함을 응시했을 뿐이다. 실제로 파스칼은 근대 자연과학의 기초자들 중 한 사람이자 위대한 수학자이기도 했다. 그가 강조했던 '기하학적 정신'이란 바로 근대 자연과학의 정신을 대표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파스칼은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모두 자연과학적으로 환원하려고 할 정도로 거친 지성은 아니었다. 인간과 사회를 다루기 위해서 '섬세한 정신'이 필요하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이 섬세한 정신의 토대가 성경적 세계라는 데 있다.
결국 천국이란 시선에서 보았기 때문에 파스칼은 더 이상 신성을 믿지 않게 된 근대인들의 속물근성을 직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가 보았을 때 동시대 인간들은 허영, 비참, 부조리로 점철된 삶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파스칼이 기독교의 신을 다시 살려내려고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런 비루하고 부조리나 삶의 조건에서 신마저 없다고 한다면 인간은 얼마나 더 참담하겠냐는 것이다. 자신의 주저 ≪팡세≫ 후반부에서 파스칼이 신에게 매달렸던 것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자발적인 사유 능력을 강조한 데카르트의 전통, 이와 반대로 인간의 비자발적인 삶의 양상을 응시했던 파스칼의 전통이 현대에 와서도 그대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데카르트적 성찰 Cartesianische Meditation≫에서 후설 Edmund Husserl (1859~1938)은 다시 한번 인간의 자발적인 사유 능력을 강조했고, ≪파스칼적인 성찰 Méditations Pascaliennes≫에서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1930~2002)는 인간의 무의식적인 아비투스, 즉 허영이라는 비합리적인 습관 체계를 분석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서양은 데카르트와 파스칼이 열어놓은 근대철학의 지평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불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