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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 Apr 16. 2024

산며드는 다섯번째 이야기

구봉산

전망대에 오르면, 부산 북항 대교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산이 있다. 등산로는 비교적 최근에 잘 정비되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5년 전의 그날은 아직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버지는 매주 주말이면 그 산에 올라 약수터에서 물을 뜨고, 근처 체력 단련장에서 운동하시곤 하셨다. 오래되어 관리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 야외 운동기구들 일지라도, 아버지 말로는 맨몸 운동 보조용으로는 아주 괜찮았다. 칠이 벗겨지고 매달리면 무너질 것 같은 철봉을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니셨으리라.


낡고 오래된 체력 단련장 만큼이나, 산에 오르시는 아버지의 옷차림도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제대로 된 등산복과 등산화, 제대로 된 등산 가방을 메고 산에 오르신 적이 결코 단 한 번도 없으셨다. 헌신짝 운동화 차림에 중학교 시절 내가 학교에 매고 다닌 가방에 물병을 차곡차곡 넣어 다니셨다. 그런 차림의 아빠와 같이 다니기가 민망해 사람이 적은 동네 뒷 산이라도 같이 오르는 일이 없었다. 어느날 새 등산화와 가방을 사드려도, 굳이 그럴 필요 없었다고 거절하셨다.


아버지는 완강하셨다. 있는 물건이 제 쓰임을 다하면, 그때 새것을 쓰면 된다 하셨다. 냉장고의 식재료에도 저마다 유효기간이 있듯, 옷과 신발도 때 되면 새 걸로 바꿔줘야 한다고 설득해 봐도 꿈적하지도 않으셨다. 확 몰래 버려버릴까. 기분이 크게 상하실까, 이내 포기했다.


아버지가 나고 자란 나라는 제 힘으로는 자수성가하기 불가능한 세상이었다. 20대 시절에는 그 누구도 다시 돌아올 거로 생각지 생각치 않았던 않았던 배급 제도가 부활했고, 기본적인 식량조차 구하기 힘들었다.할아버지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시면서 맏아들이었던 아버지가 집안의 가장 역할을 맡았다. 자신을 돌보기 보다는 식구들을 먼저 챙기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배불리 먹고 살 수 있는 시절이 언제 올지 모르니, 물건 하나하나 낡아 떨어질 때까지 아껴 쓰셨다.


10여 년이 지나고 한국에 오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자리를 잡고 정착하려는데 IMF가 왔다. 가족들을 위해 또다시 허리를 졸라 매셨으리라. 이후에도 한 동안 집안 사정이 넉넉지는 못했다. 그런데도 식구들을 생각하며 버티셨다. 자식 둘을 대학에 보내기까지 보내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 동안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으셨을까. 모든 짐을 혼자 묵묵히 지고 가시면서 어깨가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직장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해보니, 그제야 그 마음을 십분 알게 됐다.


이제는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을 내려놓으셔도 되는데. 자신을 더 살피시면 좋을 텐데. 이제는 그래도 되는데. 아버지는 아직은 그게 힘드신가 보다. 익숙지 않으니, 늘 하던 식을 고집 부리신다. 달라진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마음껏 누리셨으면 좋으실 텐데. 어쩌면 너무 빨리 흘러버린 세월과 너무 많이 바뀌어버린 현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신 걸지도 모른다.


조금씩 천천히 보여 드리고, 알려 드리고 싶다. 좋은 등산화를 신고, 여유롭게 같이 산을 거닐며 치열하게 보낸 아빠의 청춘이 절대 헛되지 않았음을. 지금도 아빠가 자랑스럽고 너무나 감사함을. 그리고 이제는 우리에게 조금 더 의지해도 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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