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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웅주 Sep 02. 2018

2004. Feb. Gimpo - Haneda

아침 7시, 잠에 깨어 밖으로 나갔다. 겨울 특유의 차갑고 신선하지만 낯선 아침 공기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질감과 냄새와 습도가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이 곳에 최적화 되어 여러 물질들이 화학반응하여 로컬화 된 공기의 형태일 것이다.

공기는 사방으로 통하고 흐르지만, 사람과 땅을 따라 오래 머문다고도 생각했다.


나는 지금 일본 요코하마에 와 있다. 정확히는 어제 아침 도착했다.

그리고 막 하루 잠을 자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정확히 몇 시간 후 서울로 출발할 것이다.


공기에서 달짝지근한 간장향도 나는 것 같고, 약간의 퀘퀘한 곰팡이 냄새도 나는 것 같다.

예전에 베트남에 갔을 때에는 향신료 향이 강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낯선 향기에 익숙한 불쾌함이 앞서다가 은근히 묘한 호기심이 뒤따르는 향.

인간의 입을 통해 육체로 체화된 음식물이 인간의 코와 입을 통해 다시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나오는 과정. 자연의 자연스러운 살아가는 과정.


이 곳의 공기는 이 곳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정말 '공기'의 형태였다.  잠시 머무르다 돌아가는 나 같은 이방인에게는 그 흔한 공기에서 존재감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여행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일테지만...


사실 여행다운 여행이라 하기에는 목적이 너무 분명하고 머무르는 시간이 너무 짧다.

1박 2일의 시간. 일본에서 개최하는 카메라 박람회를 관람하고 출장 온 한국 지사 클라이언트를 만나 눈도장을 찍고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내 여행 같은 출장의 목적이다.


카메라 산업이 발전한 일본은 전 세계의 광학 관련 트렌드가 가장 빠른 곳이다. 나는 그러나 이 곳에 눈도장을 찍으러 왔다. 카메라 따위 뭐가 어떻든 무슨 상관이겠냐만 열심히 하고 있음을 보여줘서 조금이라도 오래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목적.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 명 정도의 왕복 비행기 삯과 체류비는 감당할만한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는 회사의 결정이 신기했다.


퍼시피코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CP+ 2014. 

2월의 추위는 서울보다는 포근했지만 일본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어제 김포에서 JAL을 타고 도쿄 도심에 있는 하네다 공항으로 들어왔고,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미나토미라이 근처에 도착했다.

사실 솔직히 말해 나 홀로 비행기를 타고 외국을 찾아가보는 일도, 또 일본이라는 나라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버스에서 내려 전철을 타지 않고 호텔까지 걸어갔다.

(처음 도착한 도시에게서는 그 어떤 호의도 편의도 부담스럽다. 오직 내 시야를 통해 들어오는 것만 믿으며 내 두 발로만 걸어야 안심이 된다.)


날씨는 2월 겨울, 눈이 방금 그쳐서 흐렸지만 같은 시간의 서울보다 조금 더 명징했다. 조금 더 광이 세서 사물의 색을 살린다. 그래서 일본의 광고나 영상, 인쇄물이 컬러감이 더 좋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 좋은 컬러감도 일본의 도시, 특히 요코하마의 회색빛으로 가득한 건물과 검정색 정장 차림 일색의 일본 직장인들의 모습을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는 길의 반대쪽으로 사람들은 분주했다.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나는 여행이고 너는 일상이라는 사실이 새삼 와닿는 순간이었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를 구경하는 게 누군가에겐 여행인건가. 나 홀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공간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일상에 내가 섞여있다는 사실에 은근한 쾌감이 느껴졌다.

그 자유로움은 일상 속 도파민이나 엔돌핀보다 훨씬 더 짜릿한 느낌이다.


한 삼십분 걸어 (사실 요코하마 시내 풍경은 워낙 한글 표지판이 잘 되어 있고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그냥 서울같은) 도착한 호텔은 겨우 사람 한 명 쉴 정도의 3-4성 급 비즈니스 호텔이었는데, 방에 들어가니 특유의 간장, 곰팡이 향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방의 구조나 시설물은 낡았지만 그러나 기본은 튼튼한 느낌이었는데, 공간 활용을 참 잘하고 아기자기하게 갖출 것은 다 갖춘 느낌이었다.

허장성세로 가득한 넙지만 속이 텅텅빈 것을 보면 쉬운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게 A부터 Z까지 있어야 할 곳에 있고, 가지고 있을 만한 것에 그만큼 갖고 있으면 절망감과 약간의 경외심마저 든다.

이런게 오랫동안 축적되고 모여진 합의와 상식이 공동의 토대이고 기본기라고 생각했다. 이 나라가 오랜 기간 누적된 힘이 강한, 쉽지 않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에 걸쳐 눈이 많이 내리고 있었다. 요코하마의 상징인 대관람차는 돌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포함해서 하네다 공항, 나리타 공항이 모두 눈으로 인해 결항되고 폐쇄될 수도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텔 로비로 나가보니 세계 각지의 외국인들이 로비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호텔 컨시어지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일본어를 못하고 그들이 영어를 나보다 더 못하니 대화의 깊이가 깊을 수 없었고, 내 염려는 전달되었지만 그들에게 해결책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진심이든 진심이 아니든 진심어린 느낌으로 함께 걱정해준다는 마음은 느껴졌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정도, 아니 이틀 정도 더 머물러도 관계 없을 것 같았다. 돌아가는 날은 금요일이었고, 회사를 꼭 가야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꼭 돌아가야 하는 급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하네다 공항에 도착해 겨우 비행기가 정상 이륙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었고, 비행기에 올라타 이륙하는 비행기 속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일본 땅을 바라보며 나는 꽤 피곤했다. 

그 당시는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 주는 조급함, 그리고 폭설로 인한 스케줄로 오는 부담감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냥 여행이라는 것을 꽤 두려워했었던 것 같다.


김포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저녁.

매캐한 겨울의 추위가 코를 찔렀고 이윽고 몸서리치는 떨림으로 느껴졌다.

고저가 명확하게 날카로운 말의 뒤섞임, 뒤집어진 쓰레기통, 바람이 불자 날리는 쓰레기, 짙은 담배냄새. 시끄러운 클락션 소리.

말발굽 소리처럼 우렁찬 드르르르륵 캐리어 소리.

드디어 돌아왔다. 집으로. 일상으로.


** 2014년 일본 요코하마로 1박 2일 간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출장이었지만 저에게는 그 어떤 여행보다도 낯설고 흥미롭고 괴로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홀로 떠난 외국, 처음 가본 일본. 그리고 폭설. 온갖 신경이 곤두서있었던 그 순간이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여행이라는 게 각자 사람에게 각각 다양한 가르침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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