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웅주 Oct 30. 2018

뜨거운 여름 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 <3>

두 남자의 태풍 속으로 여행 - 군산 / 부안 / 고창 / 전주

#

10월이 되었고, 지옥 같던 불더위는 사그라들었지만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가을의 문턱을 지난 후였습니다. 저는 아직 여름휴가를 다녀오지 못한 상황이었고 언제 떠날 수 있을지도 막막하던 시간이었죠.


... 전편에 이어


태극 마크가 연상되는 이 아우라, 마도로스의 바다향 물씬 풍기는 이 멋!


사실, 어차피 남자 둘이 묵는 숙소... 아무 곳에서 등만 붙이고 눈만 감고 자도 되는 곳이었지만, 그래도 사실 조금 특색 있는 숙소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왜 특히 남자 둘이 여행가면 좀 그렇잖아요? 굳이 트윈 베드까지는 투머치인데 그렇다고 더블 베드는 허락할 수 없는...


비바람이 치는 자정에 이르러 도착한 이 곳은 상당히 특색 있는 곳이었는데요

특히 정문에 붙어있는 현수막의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참 인상적이었어요. 

뭔가 오랜 시간 버텨온 자존심과 꼬장꼬장함이 느껴진달까...

(http://www.hangdojang.com/)


호텔항도는 군산시가 선정한 "60년 전통가게입니다"


호텔항도는 아늑한 "가족호텔"입니다.
호텔항도는 "대실"이 없습니다.
호텔항도는 "착한가격"으로 손님을 모십니다.
호텔항도는 "황토사우나"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호텔항도는 항도장으로 불리기도 하며, 군산 1호 호텔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네요. 출입구는 일반 여관입니다.
객실 문은 정말 열쇠를 돌려서 여는 구조고, 안에 창문도 저렇게 옛날 방식이 남아 있습니다. 저 앤틱한 웰컴박스의 모습을 보세요.
오래된 그림 벽면에 걸려있는데 단촐하지만 멋이 느껴집니다, 계단에는 '정숙'이라는 주의 문구가 있는데, 학교 계단 같네요


하루 종일 일을 마치고 태풍을 뚫고 (사실, 내려오는 내내 제 친구는 운전하느라, 저는 일 관련해서 사고가 터져서 수습하느라 계속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늦은 밤에 도착하니 너무 피곤하기도 해서 간단히 편의점에서 맥주 한캔씩 마시고 잠든 것 같아요. 


원래는 일찍 도착한다면 오래된 항구 근처 횟집에서 밴댕이회에 소주라도 한잔 해볼까 생각했었는데...

<중앙시장에는 반지회(밴댕이회)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침을 맞이했고, 여전히 태풍의 여파로 비바람이 거셌지만, 그래도 날이 밝았으니 바깥 구경도 할 겸, 찌뿌둥한 몸을 좀 노곤노곤 풀어보려 목욕도 할 겸 (투숙객 대상 사우나 무료!!!) 

부스스 밖으로 나왔는데...


두둥~ 호텔(이라 읽고 장으로 이해)의 전경
오래된 것에 대해 강한 애착을 갖는 것은 과거에 대한 향수 때문이겠지만, 금방이라도 먼저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겠죠


어렸을 때 가봤던 대중탕의 모습 그대로더라고요. 출입문에서 주인 어르신께 'XXX호입니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무심한듯 덤덤히 "네~"하고 따로 확인도 안하고 들여보내주시던데... 

사실 처음 뵙는 분이었는데 그냥 믿고 들여보내주신 것 같아요. 


내리는 빗방울, 사람들의 정, 보여지는 낡지만 익숙함. 

이 모든 게 소소하지만 하나하나가 놀랍고 정겹고.. 


사실 별 거 아니잖아요.

 

그런데 여행이라는 게 그런 것 하나하나가 다 작은 감동이고 감사함이고 그러더라고요.

참 많이 찌들어 있었구나 싶고.


상쾌하게 목욕을 하고 나와서 잠깐 비를 맞으면서 동네를 한바퀴 산책했는데. 조용한 동네의 하루를 일찍 시작하시는 환경미화원 분들과 아침 잠에서 깨어 마실 나오신 동네 어르신들, 그리고 밤 늦게까지 한잔 하고 이제야 들어가는 젊은 친구들도 볼 수 있었네요.


날이 밝아서 본 군산의 구도심도 공동화 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제가 있는 듯 했고, 빈 집, 임대 나온 낡은 건물들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도시의 에너지레벨이 높은 편은 아니었고요. 다만 그래도 젊은 사업가 분들이 차린 중간중간 색다른 컨셉의 음식점과 주점, 카페 등이 모여 있었고, 시에서도 나름대로 도시 재생과 테마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한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도로 등의 인프라도 비교적 깔끔하게 다시 정리했고요.


다만, 이미 앞선 길을 걷고 있는 전주 등과 비교해서 도시의 특색이 뚜렷하게 살아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모든 도시 재생을 고민하는 도시의 공통점일거라고 봐요. 각각의 도시의 특색과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의 일방적 노력으로만 되는 건 아니겠죠. 

무조건 트렌디한 한 철 식-도-락으로만 뒤덮이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사실 조금만 더 걷다 보니 이 곳이 군산에서도 꽤 유명한 곳이더라고요.

(좌) 8월의 크리스마스 주 배경이자, 군산을 대표하는 필수 코스 '초원사진관' / (우) 소고기 뭇국으로 유명한 '한일옥'


사진을 꽤 많이 찍어뒀는데, 이상한 일인지 많은 사진이 사라졌네요.

다음에는 군산을 떠나 부안을 지나 본격적인 태풍의 빠워를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단순한 기행기로 봐주시면 더 좋지만, 기행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돌아다닌 곳도 적고 볼거리에 대한 소개도 적죠. 그냥 제 개인적인 감상과 소견, 그리고 어떠한 사회 문화적 이슈까지 담아내서 적어보고 싶은 걸로 이해 부탁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뜨거운 여름 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 없지만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