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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향 May 03. 2021

너무 늦게 찾아와 버린, 내가 만든 브런치, 맛 어때?

브런치 만들어 먹다가 못해 먹겠어서 작가가 되기로 했다의 후속

이 글은 작년 2020년 12월 20일에 작성된 <브런치 만들어 먹다가 못해 먹겠어서 작가가 되기로 했다 1편>의 후속이다. 되새김하는 건 원치 않아서 최대한 늦지 않게 돌아온다고 포부를 밝혔으나, 이렇게나 오래 걸리고 말았다. 기다렸던 독자에게는 일체의 변명 대신 그저 죄송함을 아뢴다. 이 편을 읽기 전에 약 반년 전에 작성된 1편을 한 번 더 읽고 와준다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되는 일이라곤 없었던 #버린 해 #2020년 #다시는 보지 말자 #퉤
2020년, 드디어 저걸 작년이라고 부를 수 있다. 2020년 쥐의 해였지만 ‘쥐띠’인 나에게는 전혀 반갑지 않은 해였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해서 이런 말은 가급적 조심하려고 하지만 이미 지난 해인 데다가 이건 사실이니 말하겠다. 말 그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안 풀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되는 일이 없는 일명 ‘버린 해’였다.

나만 그랬나 싶어서 굉장히 우울했는데, 작년 연말에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여러 지인들과 안부를 나누다 보니, 모두에게 우울하고도 힘든 해였던 것 같았다. 누군가의 불행으로 내 마음을 달래는 것은 아니지만, 나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는 그 말은 어쩔 수 없이 조금의 위로가 됐다. 물론 올 한 해는 나를 포함한 모두가 좋은 기운을 가득 받아 강인한 소처럼 앞으로 쭉쭉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벌써 2021년 한 해도 1분기가 지나버린 지금, 난 작년과 똑같은 상태다. 여전히 우울하고 힘들고 지쳐있다. 그래도 그 말만큼은 하고 싶지 않으니 꾹 참도록 하겠다.

아직 남은 8개월 정도를 잘 보내든지 버티든지 하면, 올 연말에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갖고 있다. 나는 우울하거나 생각이 많을 때 청소나 샤워를 하면 생각이 좀 정리되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매일 하루 종일 난 청소를 한다.) 청소와 샤워, 둘의 공통점이라면 주변이든 내 정신이든 깨끗해진다는 것. 아무 생각 없이 방해받지 않고 청소와 샤워를 하지만 그 순간에도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나는 주로 그 순간에 글감을 떠올리는 편이다. 그래서 샤워를 마치면 글감이 달아날 새라 몸에 물기가 채 마르기 전에 메모장에 가둬버린다.

나의 우울은 나를 글 쓰게 만든다. 나는 2020년 한 해 동안 정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좌절감과 불안감을 느꼈다. 그런 스트레스를 쌓아서 글로 만들었고 그게 바로 내 스트레스 해소 방식이다. 스트레스를 쓰레기 더미처럼 뭉쳐서 글이라는 창작물로 뱉어 내면 뿌듯했다. 몸 안의 쓰레기를 꺼내 던져버리니 후련한 것은 덤이다.  

앞으로 내 책장에 꽂힐, 여러분들이 꺼내 읽을 브런치는 꾸준히 차려질 것이다. 너무 안타까운 것은 내가 나를 못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약속도 할 수 없는 정직하지 못한 요리사다. 갓 만든 따끈한 브런치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식어도 그럭저럭 먹을 만하지 않겠는가. (내가 뉴욕에서 먹었던 ‘사라베스 브런치’처럼 말이다)


2. ‘수정(秀貞)’과 ‘수향(秀香)’
내 필명은 내 본명이 아니다. 어쩌면 내 본명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미처 말을 하기 전이라 본명이 되지 못했다. 4년만 더 지났어도 내가 고르는 거였는데 말이다. 내가 태어났을 무렵(?)으로 가보겠다. 부모님 역시 내 독자기 때문에 정확한 시기를 기억한다면 카카오톡 메신저로 알려주겠지. (후에 추가하겠다)

내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께서는 하나뿐인 나의 이름을 짓기 위해 고심하셨다. 그때 할머니께서는 불교론자셨기에, 스님을 통해서 이름 하나를 받아왔다 하신다. 그 이름이 바로 ‘수향(秀香)’이었다.
‘빼어난 향기,’ 사실 훗날 그 이름을 처음 들었던 10대인 내 반응은 ‘촌스럽다’였다. ‘향’ 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모든 사람을 향해하는 말은 아니니 부디 오해 없길 바란다. (참고로 지금의 나는 '수향'이라는 이름이 상당히 매혹스럽게 느껴지고 마음에 들어서 필명으로 택했으니)

당시 부모님께서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셨던 것 같다. 무엇보다 부모님께서는 다소 보수적이시다보니 (정치적 표현은 아니다)‘수향’이라는 이름, ‘빼어난 향기’에는 온갖 나비와 벌, 그 밖의 벌레들이 꼬일 것이라는 걱정을 하셨다. 사람은 이름대로 간다고 하니까, 내가 살면서 그저 ‘바르게’ 자랐으면 좋겠는데, 갖가지 유혹과 꾐에 넘어갈까 걱정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내 이름은 정말 정직하다. ‘수정(秀貞),’ 크리스털이 아니다. ‘빼어나고 곧게’라는 ‘아주 좋은
(?)’ 수식어 둘을 품고 있다. 난 정말 이름대로 자랐다. 법을 어긴 적이 없음은 물론이고 어릴 적부터 부모님, 선생님이든 어른이 하지 말라는 행동을 일절 하지 않았다. 다 자란 후에 친구나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이야기해보면 ‘이 정도 장난과 저 정도 일탈’도 난 해보지 않았더라. 어른이 하지 말라고 한 걸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온실 속 화초’같이 자랐다고 했다. 손에 물 한 번 안 묻혀 본 ‘공주’ 처럼 말이다. 물론 부모님께서 나를 정말 아끼면서 사랑으로, 고생 한 번 안 시키고 (그 흔한 아르바이트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23살인가 캐나다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라면을 끓여봤다) 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나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남에게 ‘공주’처럼 굴지는 않았다. 그 역시 내 이름과는 어긋난 행동이니 말이다. 하지만 곧게만 자라나던 나는 ‘다 부질없다’는 생각과 함께 20살 대입에 실패한 후 한 번,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두 번 ‘곧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파격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전이 될 수 있다. 나에게는 반항이 될 수 있고 부님에게는 충격 혹은 응원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름과 정해진 규칙, 틀이라는 것이 그동안 내게 줬던 압박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너무 할 얘기가 많으니 다음에 더 다루도록 하겠다. 결론적으로 내가 25년 하고 4개월을 살아가는 도중에 느낀 바로는 ‘수정(秀貞)’을 ‘수향(秀香)’으로, ‘정(貞)’을 ‘향(香)’으로 수정(修正)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하는 부모님께서 주신 소중하고 예쁜 내 이름 ‘수정(秀貞)’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도 싫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얼굴만큼 이름도 예쁘네요’ 대신에 ‘한 번 들으면 뇌리에 박히는, 그 이름이 품은 향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필명으로 ‘수향(秀香)’을 택했다. 향기에 이끌려 찾아온 벌과 나비가 잠시라도 쉬었다 갈 수 있는 이름 아닌가. 한눈에 사로잡힐 것 같은 매혹적인 이름이지 않은가.

이런 내 마음을 작가 소개란에 짧게나마 담아봤다.

수향(秀香): 빼어난 향기
사람은 고유의 냄새(=향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 냄새로 어떤 사람을 기억 또는 추억하죠.
빼어난 향기 묻은 글로 오래 기억되고 싶습니다.

여기까지가 내 필명과 얽힌 이야기다. 앞으로 내 글은 어쩌면 긴 글 읽기를 ‘극혐’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인 글이 될 수도 있다. 옛말로는 ‘스압 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특별한 경우, 정말로 사진이나 그림 없이 텍스트의 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닌 이상은 그림이나 사진을 넣지 않을 생각이다. 한 장의 사진보다 내가 쓴 한 줄의 문장이 더 매혹적인 향기를 품길 바란다.

부디 내 독자들이 이 이름 아래 쓰인 글이 마음에 들어 벌과 나비처럼 오래 머물다 가기를. 지나가다 우연히 코끝을 건드리는 꽃 향기처럼 내 글을 우연히 보았다면 그 향을 잊지 못해 다시 돌아오기를. 어쩌다 한 번쯤은 내 책장에 드나들기를 바란다.

P.S. 마지막으로 ‘수정(秀貞)’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께도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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