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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향 Dec 20. 2020

내가 만든 브런치, 맛 어때? (의도치 않게 ½편)

브런치 만들다가 못해 먹겠어서 작가가 되기로 했다.


1. 브런치 만들다가 못해 먹겠어서 작가가 되기로 했다.

여기서부터 문제다. 정확하게 몇 월 며칠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사진 몇 장, 그마저도 흐릿하게 기억날 뿐.  그저 그래서였을지도. 아무튼 어느 게으른 주말, 늦잠을 자고 몸을 겨우 일으킨 나는 #사회적거리두기 #집콕 #홈카페 이런 해시태그를 붙여가면서 브런치를 만들었다. 3년 전 뉴욕 여행 당시 사라베스(Sarabeth’s;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로 유명한 거기)에서 먹었던 ‘에그 베네딕트(구운 잉글리시 머핀 가운데 햄이나 베이컨, 수란 등을 얹고 노른자를 터트려 먹는 뉴욕 스타일 브런치)’를 그리면서 있는 재료 없는 재료, 있는 실력 없는 실력 써가면서 말이다.

가족 단톡 방에 공유한 에그 베네딕트의 탄생기를 본 아빠는 난도질된 키위를 보더니 ‘누더기’가 됐다고 했다. 의도치 않게 과일에게 죄를 지었다. 제법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브런치, 분명 따뜻한 그 맛을 느끼려고 서둘렀음에도 단 한 번도 따뜻함을 느껴보지 못했다. 사진 찍기에 바빴으니. 그런데도 사라베스에서 먹었던 것과 비슷하다. 왜냐고? 그때도 사진을 한참 찍고 먹었으니. 온도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맞춘 셈이다.

나의 귀여운 소꿉놀이는 검색 유입이 잘 된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온갖 해시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 피드에 일명 ‘박제’된다. 하지만 싱크대와 그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인 처참한 현장은 부엌 한 곳에 박제될 뿐이다. 내 피드에는 오로지 예쁜 핑크 원형 테이블 위 핑크 접시에 담긴 에그 베네딕트만이 앉을 수 있다. 레시피를 유튜브와 블로그에 검색하는 데 20분, 재료 준비하고 만드는 데 30분, 사진 찍는데 10분 이렇게 대충만 잡아도 1시간은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에그 베네딕트가 사라지는 데는 5~6분? 거기다가 아직 3천 명이 되지 않는 팔로워들이 스치듯 보는 데는 1인당 1초는 됐을까?

분명 나는 밥을 먹었지만 예쁜 건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다. 난 음식을 먹은 게 아니라 관심을 먹고 싶었던 거니까.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에 들어가고 팔로워, 하트에 집착하다 보니 대면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 모습을 담기에 급급했다. 그날의 내가 정말 제일 먹고 싶었던 음식은 에그 베네딕트가 맞을까? 그것도 확신이 서진 않는다. 무엇보다 사라베스가 현대백화점에 있는 줄 알았다면 그냥 사 먹었을 것이다.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도 음식 맛과 대화 내용이 남기보다는 사진 한 장이 남았다. 그래도 그 사진 한 장은 눈에 보이는 것이고 가질 수 있으니 그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모은 돈으로 학원 수업을 들은 것보다 차라리 명품백 하나를 살 걸이라며 후회하는 것처럼 말이다.

단 한 번도 내가 충동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이번에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이었던 것 같다. 근데 원래 뭐든 계획을 많이 세우고 준비한다고 해서 꼭 잘되는 건 아니다.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건 다음에 차차 풀어보겠다.)

내 관심을 돌릴 다른 게 필요했다. 나는 무언가 하나에 빠지면 거기에 너무 미쳐있어 다른 것을 차마 돌아보지 못하는 편이다. 잘만 이용하면 아주 똑똑하게 쓸 수 있지만 아직까지 느낀 바로는 단점이 더 많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몇 년 전 가입만 해두고 잊고 있던 ‘브런치’에 접속했다.

2. 답 없는 ‘브런치,’ 노답? 그래서 더 끌린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해서 그냥 글만 적으면 되는 줄 알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기 위해서 프로필도 채워 넣고 자기소개도 하고 앞으로 계획도 써야 하는 줄 알았으면 아마 신청하지 않았을 거다. 생각보다 내가 많이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이 얘기도 차차 다루겠지만 아주 짧고 굵게 스치듯 말하면 나는 아나운서다. 1년 전까지는 지망생이었고 수도 없이 많은 자기소개서, 1분 자기소개 등등에 질릴 대로 질렸다. 내 글은 항상 정답이 되지 못했다. 아쉬운 오답도 아니었다. 아나운서를 준비하면서 논술, 작문 등 스터디를 하면 내 글은 분명 뭔가 좋다고 하는데 ‘합격 글’은 아니었고 심사위원이 정해둔 기준에는 맞지 않았던 거 같다. 하지만 내 글이 좋다고 분명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이 있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 봤자 ‘합격 글’이 아니라서 난 내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송 대본 말고는 글을 쓴 적이 하루도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술술 풀어내는 걸 보니 그동안 참 많이도 쌓여 있었나 보다.  

글쓰기에 자신이 있으면서도 없었는데, 찾아보니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수능을 망친 탓에 내 10대 시절 마지막 단추가 떨어져 나갔지만 난 의지가 부족해 반수도 재수도 안 했었는데 (이것도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어쩌면 내 인생 모든 게 글감인 거 같다) 브런치를 검색하니 3수, 6수, N 수…. 가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긴장은 했지만 쫄지는 않았다.  

죽을 때까지 내성이 생길 것 같지 않은 ‘서탈(서류 탈락),’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의 충격을 여기서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본명도, 직업도, 아무것도 오픈하지 않았다. 오로지 글로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취업용 자기소개서를 쓰듯 각 잡고 글을 쓰며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퇴근길 지하철에 앉아 스마트폰 메모장에 끄적였다. 말 많은 나에게 300자는 참 짧게 느껴졌지만 그 속에 나를 녹여냈다. 그리고 요즘 푹 빠져있는 넷플릭스의 <블랙 미러>의 한 에피소드에 대한 감상평을 함께 제출했다. (명작이니 봐주길 바란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내 감상평은 2순위로 제쳐도 좋다) 심사 과정에서 5일은 걸린다고 해서 또 하나의 합격자 발표일이 달력에 추가됐고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매일 메일함을 들락거렸다. 회사에서 일하던 중에 갑자기 휴대전화 진동이 두 번 울렸다. 화면 상단의 ‘필기체 b’는 처음 보는 알림이지만 앞으로 자주 볼 것 같았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중한 글 기대하겠습니다.” 이 두 문장이, 나의 식어버린 브런치를 데워줬다.  

내 자기소개는 “안녕하세요, 현재 경제방송 아나운서로 근무 중인 김수정입니다” 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눈에는 오답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눈에는 일단 합격했으니, 정답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그냥 나의 글이다. 물론 ‘그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엔 내게 너무 특별한 ‘시작’을 도와준 글이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기로 한 이유 300자다. 앞으로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여기 ‘박제’해서 자주 들여다보려 한다.


<작가님이 궁금해요.>

나는 SNS를 통해서 다른 이들의 행복한 일상을 엿보며
나의 일상의 무료함과 공허함을 느꼈다

아무리 먹어대도 이 허기를 달래기엔 역부족이었다. 나의 무료함을 덮을 수 있게
예쁜 브런치 카페에서 먹은 샌드위치와 콥 샐러드 사진을 SNS에 한 스푼 퍼 올렸다.

내 허기는 한 스푼으로도 감당 불가더라. 한 스쿱을 덜려던 그때 난 브런치를 만났다.
그렇게 난 작가라는 새로운 나를 만들어냈다.

나의 무료함과 공허함은 한 편씩 연재된다. 무료함 1 무료함 2 무료함 3 공허함 1 공허함 2 공허함 5….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내 일상이 나의 브런치 책장을 가득 메운다.

예쁜 사진을 위해 목을 매지 않아도,
정방형에 딱 들어맞는 알록달록 디저트를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더라.

그렇게 나는 브런치 책장에서 무료함 하나를 꺼내 핥아먹는다.
공허함을 한 입 베어 물고 삼켜버린다.
오늘도 난 브런치에서 브런치를 즐겼다. 잠시나마 허기를 달랬다.


그렇게 난 브런치 작가가 됐다. 글을 쓰다 보니 참 길어졌다. 아직 나의 필명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쌓여있는데 말이다. 의도치 않게 2편으로 나눠서 진행해야 할 것 같다. 쓰는 내게도 시간이 필요하지만 내 브런치를 먹은 당신에게도 음미하고 소화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된 사연은 여기까지, 자 그럼 이제 “내 브런치 맛이 어땠는지”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되새김하는 건 원치 않으니 너무 늦지 않게 2편으로 찾아오겠다.)


내가 만든 브런치, 맛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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