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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향 Dec 17. 2020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블랙 미러 2 <화이트 크리스마스> 리뷰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2020년을 대표하는 키워드만의 어워드를 연다면 후보 1번 코로나 19, 후보 2번 주식 투자 열풍, 후보 3번 미 대선 등이 나오지 않을까? 그중 가장 많은 지지(?)라는 표현을 붙이는 것도 다소 웃픈 일이지만 2020년은 코로나 19로 시작해서 코로나 19로 막을 내린다. 우리는 “이번 한 해, 환불 안 되나요?”라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코로나 19 확산은 좀처럼 걷히지 않고 이제는 3차 대유행이라는 단어 아래 지역 곳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올 한 해 어떤 연락보다 많이 받은 것이 재난 메시지인데, 눈 앞의 트리는 어떤 해보다도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참 아이러니하다.  

지난 일요일에는 눈이 참 많이 내려서 주변 곳곳을 하얗게 덮었더라. 주말 내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겠다며 집에 틀어박혀 넷플릭스만 봤다. 일요일 자정이 넘자, 넷플릭스가 나를 보는 건지 내가 넷플릭스를 보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것에게 빠져있었다.

오늘은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생각날 것 같은 블랙 미러 2 스페셜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리뷰 하려 한다. 이맘때쯤 항상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현대판 공주와 왕자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스토리’ 같은 것들을 즐기던 내 눈에 들어온 낭만적인 제목, 화이트 크리스마스. “올해는 과연 화이트 크리스마스일까요? 하얀 눈이 온 세상을 아름답게 덮어줄까요?”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뉴스 앵커가 하는 이야기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걸맞게 아늑한 오두막에서 ‘매튜’와 ‘조’, 두 남자의 대화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대화라기보다 일방적인 질의였다. ‘매튜’는 너무 적극적이고 ‘조’는 너무 경계심이 많았으니까.  자신이 이 곳에서 왜 5년이나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조’에게 ‘매튜’는 크리스마스에 걸맞은 요리와 와인을 주며 자신의 이야기부터 꺼낸다. ‘매튜’는 말로 돈을 벌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방송인, 강사, 등을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고 하니, 사기꾼이라는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요약하자면 ‘매튜’는 미래 기술인 ‘제드 아이’를 이용해 의뢰인의 시야를 직접 보면서 연애 코칭을 해주는 일을 했다. 마치 과거에 봤던 예능프로그램 <뜨거운 형제들>처럼 의뢰인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다. 그냥 연애 코칭만 했다면 순수한 서비스를 제공한 것에 불과했겠지만 의뢰인이 보는 모든 것은 다른 8명의 남자 유저들에게 구경거리였다. 의뢰인은 이 사실을 몰랐고 의뢰인이 상대방과 잘돼서 잠자리까지 갖게 된다면 이 모든 것이 공유되는 것이니 이는 범죄다. 생각보다 순조롭게 흘러가던 연애 코칭,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인가? 커플이 탄생할 것 같았던 예상이 와장창 무너지고 순식간에 두 남녀의 자살로 장르가 바뀐다. (자세한 내용은 직접 보길 바란다.) ‘매튜’는 모든 데이터를 은폐하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관음증 성범죄자가 된다. 이후 ‘매튜’는 아내와 자녀로부터 차단당하게 된다. ‘제드 아이’로 차단당하면 사람의 모습이 모자이크 실루엣 처리가 되기 때문에 평생 볼 수도 대화할 수도 없다.  

이렇게 ‘매튜’가 자초한 비극 한 편 끝, 하지만 이것은 ‘매튜’의 직업이 아닌 사생활일 뿐이었다. ‘매튜’는 복제인간을 ‘쿠키’ 속에 집어넣은 시스템, 쉽게 말하자면 ‘스마트 홈’을 제작하는 일을 한다. 직접 에피소드를 시청하면 알겠지만 2020년 현재 시점에서 보기에 ‘쿠키’며, 인공지능이며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쉬리,’ ‘빅스비,’ ‘기가 지니,’ ‘알렉사’였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를 보고 나니 친근함보다는 다소 두려움이 우위에 서는 기분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복제한 나의 데이터를 쿠키에 담아 조종하는 것이니 나의 니즈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나니까. 그러나 복제 버전이 진짜 ‘나’가 되고 싶다고 소리를 지를 때 소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를 깨워주고 장을 봐주고 토스트도 원하는 정도로 구워주고 일정도 세워주는 것에 익숙해져 내가 멍청해진 틈을 타 몸을 빼앗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긴장이 일었다. 이것이 ‘매튜’가 들려주는 두 번째 비극이었다.

타인의 비극적인 스토리를 들으면 아이스브레이킹이 되는 걸까, 드디어 ‘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조’에게는 사랑스러운 여자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여자친구의 아빠는 ‘조’를 못마땅해했다. 어느 날 ‘조’는 쓰레기통에 버려둔 임신테스트기를 통해서 여자친구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조’가 아빠가 됐다는 설렘에 춤을 추기도 전에 여자친구는 그를 밀어낸다. 영문을 알 수 없지만 갑자기 ‘조’의 여자친구는 그를 차단해버리고 직장을 그만둔 후 잠적해버린다. ‘조’는 여자친구를 찾아 헤매다가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 집에서 지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매년 그들을 보러 갔던 조는 멀리서나마 여자친구와 자신의 아이의 실루엣을 지켜본다. 자신의 소중한 아이가 딸인지 아들인지 알 수 없다는 건 비극이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보고 ‘조’는 자신의 아이가 딸이라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러나 비극은 끝이 없다. 어느 날 뉴스를 보던 ‘조’는 자신의 전 여자친구가 열차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을 접했다. 여자친구가 죽으면서 자연스럽게 차단이 풀려버리고 ‘조’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딸에게 줄 선물을 들고 찾아간다. 아늑한 오두막이 들어있는 스노우볼이다.

아이를 다정하게 불러본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딸을 본다는 기대에 가득 찬 그는 잠시 후 돌멩이를 품은 눈덩이 하나로 머리를 얻어맞았다. ‘조’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딸은 동양인의 얼굴을 갖고 있었다. 알고 보니, ‘조’의 여자친구가 아시아계 직장 동료와 외도로 얻은 아이였던 것. 이제야 왜 임신 사실을 숨겼는지 왜 자기를 그렇게 밀어냈는지 실마리가 풀린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충격에 빠진 ‘조’는 그녀의 아버지와 실랑이 중에 그를 살해한다. 딸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화면이 전환된다. 이 모든 상황은 일종의 프로그램이었고 성범죄자로 분류된 ‘매튜’가 석방 조건으로 ‘조’에게 자백을 얻어낸 것. ‘조’는 괴로워하고 ‘매튜’는 석방되나, 그는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차단당한다. 범죄자의 실루엣은 빨간색이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이다.

다시 평화로워 보이는 오두막, 창문을 열어보니 하얀 눈 밭 위에 동사한 아이가 있다. 펑펑 내리는 눈은 초록 나무 위엔 소복이 쌓였지만 아이는 덮어주지 않더라. 눈은 나무를 덮고 지붕을 하얗게 덮었으나 그의 범죄는 덮지 못했다. 어떤 죄도 하늘은 그걸 알고 있으며 눈 감아 주지 않는다. 경찰은 시스템을 이용해서 프로그램 속 ‘조’에게 1분을 천년처럼 보내도록 벌한다. ‘조’는 자신의 범죄 현장에서 평생 캐럴을 들으며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다. ‘조’의 처절한 비명을 캐럴이 파묻는다. 스노우볼 속 오두막, 그곳에선 따뜻한 냄새가 나는 수프가 끓고 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누군가에게는 생애 마지막 날이자, 평생 깨지 못할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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