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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식당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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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쌍 Jun 25. 2017

대학교 근처에서 두루치기 팔아요.

음식점 영업일지#2

내가 운영하고 있는 가게의 대표메뉴 두루치기


"제주대 후문 근처에서 두루치기 팔고 있어요."

나와 아내는 두루치기를 파는 식당을 대학교 근처에서 운영하고 있다. 13-14년쯤 된 가게인데, 처음에는 지금 장소가 아닌 곳에서 어머니가 시작했었고 지금 위치에서 10년 정도 친이모님들이 맡아서 운영했다. 이후 서울에서 돌아온 내가 운영한지는 3년, 결혼 후 회사를 나온 아내가 함께 한지는 1년 정도 되었다.

대표 메뉴는 두루치기이다. 제주산 돼지고기를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제워두웠다가 디포리 육수를 자작하게 붓고 무생채, 콩나물, 파무침을 얹어 익혀먹는 음식이다. 1인 분에 공깃밥 포함 6천 원. 가게를 오픈한 13년 전과 가격이 같다. 매일 바뀌는 밑반찬 2가지와 고정으로 나가는 양배추 샐러드. 김치가 제공된다. 또 상추, 마늘, 고추 쌈이 나가고 겨울에는 된장국이 여름에는 냉국이 함께 나간다. 반찬은 부족한 것을 손님들이 스스로 더 떠다 드실 수 있다.

제주대 근처에 가게가 별로 없던 시절에는 학생들이 많이 오는 식당이었지만, 지금은 치킨집 중국집 등 제주대 상권이 많이 불어났고 학교 내의 구내식당도 여러 개 더 생겨서 학생 숫자가 줄어들었다. 다행히 지금은 제주의 건설경기 붐 덕분에 건설노동자 분들이 식사하러 많이 와 주셔서 함바집 느낌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이고, 젊은 새댁이 이렇게 힘든 장사를 해서 어떡한데."

가게 근처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가 아내를 보면 매일 하는 아내도 나도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가격이 저렴한 음식을 팔고 있으니 고생스럽다 생각했을 것이고, 오시는 손님들이 건설노동자 분들이 많으니 고생스럽다 했을 것이고, 직원을 많이 쓰지 않는 가게이니 고생스럽다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고생스러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는 주머니 사정 가벼운 학생이나 건설노동자 분들에게 싸지만 푸짐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물론 큰돈을 벌고 있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빚지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만큼은 벌고 있으니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건설노동자, 흔히 노가다라고 불리는 아저씨들도 선입견 없이 매일 만나다 보면 젠틀하고 다정한 분들이 많으시다. 물론 가끔 몇몇 무례한 분들이 계시지만 그게 노가다아저씨여서 그렇겠는가. 사실 비율로 따지면 회사원이나 관광객 중에 무례한 손님이 더 많다. 점심시간 11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빠르게 바쁜 가게다 보니 짧은 시간만 일하는 알바를 구하기도 어렵고 인건비도 부담이 된다. 그래도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분들이 가족처럼 열심히 일해 주시고 서로를 챙기고 생각해주니 늘 감사하고 미안하다.

사실 가게를 10시에 열고 3시에 닫고 있기에 스스로도 지치고 힘들다는 생각을 하기 어렵다. 식당 운영은 회사 다닐 때 밥 먹듯 했던 야근도 없고 내가 언제까지 이 바닥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고민도 없으니 대체로 우리는 고생할 것이라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행복하다.


"우리 집 특별한 곳 아니니까 여기 말고 다른 데 가서 맛있는 거 먹어."

우리 부부는 육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서울에서 회사생활을 했다. 때문에 그때 지인들이 제주에 놀러 오면 가게에 식사하러 오겠다고 자주 연락이 온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대단한 식당 아니니 놀러 온 너희는 사진도 이쁘게 나오고 추억도 될만한 곳에 가서 식사를 하고 정 보고 싶으면 세시 이후에 밖에서 보자고 이야기한다.

우리도 알고 있다. 우리는 대단한 음식을 팔고 있지 않다. 우리 가게는 누가 바쁜 시간을 내고 맛집을 검색해서 찾아올만한 곳이 아니다. 우리는 동내에 있으면 누구나 지나가며 먹고 밥하기 싫을 때 먹고 회사 점심시간에 먹으러 올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곳이다. 물론 우리도 평범한 두루치기 집이 아니기 위해 신경 쓰는 부분들이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직원과 아내가 좋은 노래들을 선곡해서 틀고, 평범한 함바집에서는 단가 문제로 안 만들 만한 미트볼이나 장조림 같은 반찬도 가끔 특식으로 만든다.

그래도 안다. 우리가 팔고 있는 두루치기가 대단한 음식이, 엄청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장사하고 있는 이곳이 누가 사진 찍어 인스타에 올려줄 만큼 멋진 곳이 아니라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내와 지금 함께 일하는 분이 들어오고 영업시간을 조절하기 전에 나는 엄청난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나도 누구처럼 멋진 음식 비싼 음식을 팔고 싶고, 누구처럼 멋진 곳에서 셰프복 딱 입고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새로운 음식을 팔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매일 했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소소하고 평범한 한 끼를 만들고 그것을 매일 먹으러 와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리고 그런 나를 응원하는 아내와 가게식구들 덕분에 열등감은 많이 희석됐다.


가끔 누가 나에게 셰프라고 불러주면 난 손사래를 치면서 난 조리사지 셰프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셰프는 좋은 일이 있을 때 큰 맘먹고 간 레스토랑에서 음식 하시는 분, 그중에서도 제일 오래 하고 제일 잘하는 분이 불리는 명칭이다. 난 조리사가 맞고 조리사에 아직 만족한다. 조리사가 더 나은 부분도 분명 있다. 내가 만드는 음식이 내가 운영하는 가게가 손님들에게 더 일상적이고 더 가까우니까.

식당을 운영하면서 앞으로 어떤 다른 사업을 하게 될지 어떤 다른 분야의 음식을 만들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어떤 걸 하겠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고 미숙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지금 내 가게와 내 음식이 좋다. 여기에 머물러 버리겠다는 의도는 아니지만 지금의 삶이 좋고 충분히 행복하다. 이 장황한 글에 다 담아내지 못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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