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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야 Jan 21. 2023

난 흙으로부터 시작했다

손길, 흙을 따라

흙이라는 물질은 마음을 겸허하게 해 준다. 학교 선배님이시자 도예 작가이신 이윤경 선배님의 '손길, 흙을 따라'라는 책에 쓰인 말이다. '손길, 흙을 따라'는 도예가이신 이윤경 선배님께서 본인의 스승인 조정현 선생님의 삶과 예술을 회고하면서 쓰신 책이다. 2018년 내가 학부생 때, 선배님께서 책을 내시고 학교에 와 후배들께 소개를 하며 나눠주셨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선배님의 스승이신 조정현 선생님의 철학과 가치관 그리고 인생관이 담긴 책이고, 나에겐 너무나 어른이신 분이지만 책을 읽으며 나의 전공과 삶에 감사함의 의미를 느끼게 되어 학부시절이 그리울 때면 펼쳐 들곤 했다. 까마득한 선배님이시자 책의 주인공 조정현 선생님은 한국의 옹기, 색채, 도예, 교육 분야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신 분이다. 책을 읽다 보면 선생님의 정신과 가치관을 좇아가고 싶은 마음에 나의 이십 대의 시작이 흙이 기본인 도예를 전공했다는 것에 자부심이 든다.


학부 때 내 전공은 도자예술이다. 사실 '도자'라는 분야는 내 머릿속에는 없었다. 그림을 좋아했던 나는 주변에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미술 선생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단순히 그림이 좋으니까, 미술 선생님이 되어야지 하며 나는 서양화과를 준비했고 중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 미술학원에 다녔다. 그런데 오랫동안 평면 위에 그림을 그리는 입시를 하다 보니, 정작 전공을 선택할 때 똑같이 하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상상한 서양화는 내키지가 않았다. 그래서 순수예술 분야 내에 다른 쪽으로 시선을 옮겼더니 도자예술이란 전공이 이상하게 끌렸고, 선택했다. 그리고 선택을 받았다고 표현해야 할지 내 이십 대의 처음부터 반은 도자라는 분야 안에서 살게 됐다. 어떻게 보면 순전히 우연이다. 이 선택이 가끔 후회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무엇보다 잘한 선택이다. 감사한 일임을 알게 했다. 4년 동안 나는 흙이라는 물질을 통해서 부족하지만 인간의 삶과 본성에 대해 성찰해보기도 하고 흙과 성실히 다투기도 해 보며 나를 찾아갔다. 흙은 내가 내면적으로 성장하고 조금이라도 더 성숙할 수 있도록 일깨우려 했다.


"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흙과 대화를 먼저 한다. 흙을 다지며 어떤 형태가 적합할지, 흙의 상태를 손으로 느낀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배가 나온 둥근 형태를 만들려고 했는데 준비한 흙을 다지다 보면 둥근 형태를 만들기에는 흙에 힘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 형태를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 흙을 다지며 형태를 구상하지만, 물레성형을 하며 형태의 변화가 올 수도 있다. 흙, 나, 물레의 삼요소가 한마음이 되지 않으면 좋은 형태가 나올 수 없다.

형태가 만들어지면 반건조 상태에서 굽을 깎고 문양을 넣는다. 문양 역시 내 앞에 놓인 도자와 대화를 나눠 결정하게 되고, 건조시킨 후에 초벌과 재벌을 거쳐 완성된 작품이 주는 느낌에서 작품의 제목이 탄생한다.

일단 시작된 작품은 중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만두거나 다시 만드는 경우는 없다. 만들기 시작한 작품은 가능하면 모두 '살린다'.

만드는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그 상황에 맞는 다른 해결책을 찾게 되고, 이런 경우 의도한 작품이 아닌 다른 작품이 나오는데 의도한 작품보다 더 좋게 나올 경우가 있고, 일상적으로 내가 구상하는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성격의 작품이 탄생하기도 한다. "

책에 나온 선생님의 한 전시 도록 부분이다. 도예를 하며 내가 느꼈던 모든 부분을 말로 풀어놓으신 듯한 이 부분이 난 참 좋다. 마치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겪어 내야 할 모든 것을 말씀하시는 듯하다. 그래서 난 이 흙이라는 게, 나에게 있어 감사한 스승이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흙을 치대고 주무르던 때, 나도 흙을 향해 속으로 이번엔 잘해보자, 내 속 좀 그만 썩이자 하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면서 흙과의 교감이 시작되는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만졌던 모래, 학교 수업시간에 만졌던 지점토가 아닌 마음대로 되지 않는 흙다운 흙을 만지며 온몸으로 느끼고 또 다른 나를 완성해 나간다. 모양을 갖춰나가는 동안엔 돌이켜보면 주말에도 쉬지 않고 학기 중에 며칠, 일주일, 한 달 가까이 내 앞에서 모습을 갖춰가는 작업물에 전념했었다. 특히 조형 작업은 절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정성 들여 어루만지고 다듬어가며 조금씩 모습을 갖춰가면서도 흙은 성질 자체가 너무 예민해서 쉽지 않았다.


바람, 온도, 습도에 민감한 흙, 너는 나를 4년 내내 힘들게도 했다. 자신에게 조금만 버거운 습도나 점도면 너는 꼭 티를 내더라. 비가 오는 날이면 습기에 무너져 내릴까.. 널 위해 덮은 비닐을 걷어 내기 위해 다른 곳에서 수업을 듣다가 작업실로 종종걸음으로 뛰어가기도 하고 햇빛이 창창한 날이면 너무 건조해 갈라지며 스스로 상처를 내진 아닐까 내 속을 애태웠다. 연애를 안 하고 있어도 흙 너 때문에 항상 연애 중인 거 같았다.


어렵사리 완성한 나의 분신 같은 작업물을 아껴가며 건조를 시키고 초벌을 하고 나면 노르스름하면서도 불그스름한 게 푸르스름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 마치 뜨거운 불 속에서 잘 이겨내 왔다고 말하는 거 같아 대견하면서도 안도감에 마음이 한결 놓인다. 그런데 이 녀석에겐 또 한 번의 인내가 필요하다. 이번엔 1250도의 뜨거움을 잘 이겨내야만 완성될 수 있다. 결국 몇 차례 이겨내야 이제야 본격적으로 나에게 진짜 흙다운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잘 이겨내기만 하면 될까 그것도 아니다. 그 불가마 속에서 잘 견디지 못하면 깨질 수도, 금이 가 있을 수도 있다. 또 초벌하고 안료, 유약 등의 색으로 옷을 입히는데 1250도의 뜨거움 속에서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색이 나올 수가 있다. 원하는 색이 나오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해봐야 하지만 큰 작업물에 나 같은 애송이가 예측하기는 쉽지 않았다. 색채에 관해 고민이 많았던 나는 흙을 다루는 데 있어서, 도자를 하는 데 있어서도 예측하지 못하는 변수들에 많은 한계를 느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일찍이 그 한계에 포기했던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조정현 선생님은 흙은 살아있는 생명체라고 표현하셨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가지고 내 의지대로 하려니 그렇게 힘들었나 보다.



도예는 재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끈기와 노력을 통해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재주가 많아도 성실한 사람보다 나을 수가 없다. 그래서 좋기도 했다. 서양화나 동양화나 내가 보기엔 재능이 뛰어난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도예는 재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자기 앞에 놓인 흙을 끈기와 인내심을 가지고 성실히 다루려는 노력이 중요했다. 끊임없이 지켜보며 애정을 가득히 줘야 한다.

지나 보니 흙과 함께한 시간들이 그립다. 내가 갈라지고 깨져도 해내왔듯이 계속 살아내라며 살아보라고. 짧지만 흙은 나에게 마치 살면서 닥친 일에 자기가 날 어떻게 가르쳤는지 기억해 보라는 듯 가끔 내 마음속에서 비집고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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