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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야 Feb 13. 2023

완벽함과 결점

그리고 사랑

학교에서 재벌 가마는 1250도였다. 첫 번째 700도에서 소성을 마치고 두 번째로 고온에서 도자기를 완벽하게 하는 것이다. 1250도 가마에는 생각보다 많은 기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들어갈 수 있다. 그 뜨거운 기물들이 이틀, 삼일 정도 1250도의 뜨거움을 견뎌내고 나오면 연주를 한다.

팅  틱 틱 쨍  쨍 틱 쨍   팅  틱   음 이 소리를 안 들어보면 설명하기 어렵지만 약간 유리잔을 부딪치는 소리와 흡사하다고 생각하면 될 거 같다. 큰 소리는 아니다. 가마 속에서 소성을 끝낸 도자기들이 뜨거움을 식히면서 내는 소리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나는데 내 기물들이 잘 나왔나 궁금해서 가마에서 나올 때쯤 소성실에 내려가면 가만히 서서 듣고 있곤 했다. 마치 톡톡 막걸 리가 익는 소리가 떠오른다.

그 소리가 나면 막걸 리가 익듯이 가마에서 나온 기물들의 소리를 들어야 완벽한 도자기가 되었다는 나만의 정의 같은 게 있었다. 단단하고 반짝거리는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는 도자기. 뜨거움의 고통 속에서 상처 없이 자신을 단단하게 한 그 완벽함.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도자기는 아름답다.



그런데 사실 겉으로 보기엔 도자기라고 할 수 있겠으나 아마 자기 작품을 완벽하다고 표현하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뜨거운 가마 안에서 며칠씩 있다 보면 작품이 뒤틀려지기도 색이 변형되기도 금이 가기도 하기에 숙련된 작가가 아니라면 작가의 의도와 생각보다 다른 작품이 나오기 때문이다. 프로페셔널한 작가라 하더라도 자신의 작품이 완벽하다 라 말하는 작가를 본 적이 있는가. 뭐 그리고 도자기란 잘못 쥐다가 바닥에 떨어뜨리면 깨지는 건 한순간이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한순간의 실수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 완벽이란 무엇일까? 그렇다면 완벽은 어떨 때 완벽하다 할 수 있는 걸까. 완벽이란 말을 사람이나 사물에게 부여할 수 있는 것인가.


나 자신이 완벽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왔다. 그 생각 때문에 회사 생활도 학교 생활도 힘들었다. 내가 아닌 듯한 모습으로 꾸며내기도 했고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엄격한 기준을 부여해서 남이 칭찬하더라도 믿지 못하기도 했다. 누군가 내 발표가 좋다 해도 믿지 못하며 스스로 나를 의심했다. 하지만 완벽해지는 방법은 있을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을 낮추고 기준을 낮춰야 했다. 결점을 인정해야 했다. 그런데 결점을 인정하면 나 자신이 조금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고 귀여워 보이기도 했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내가 사랑스러웠다. 티비 프로그램을 보다가 한 작가님이 인간은 결점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하신걸 들은 적이 있다. 때로는 결점을 드러낼 때 우리는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사랑을 받고 자연스러워지지 않는가? 완벽함보다 결점이 느껴질 때 좀 더 마음이 가는 거 같다. 나와 같은 사람인 거 같아서일까.


도자기도 결점이 있다. 떨어뜨리면 깨진다는 그 결점 덕분에 우리는 도자기를 만질 때 조심스럽게 다루게 된다. 깨질까 봐 조심히 어루만지고 바닥에 살며시 놓게 된다. 도자기가 인간이 자신에게 행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우리는 도자기를 만질 때 플라스틱보다 조심히 아껴가며 다룬다. 어쩌면 완벽이란 건 사물이나 사람에겐 없는 듯싶다. 어딘가에 완벽한 사람이 있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는 완벽해지고 싶은 결함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 결점들을 안고 살아가서 다정하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인가. 옆구리가 뚫려있는 퍼즐을 다른 한 퍼즐이 와서 안아주는 것처럼. 완벽을 말할 때 결점을 말하고 사랑을 말할 수 있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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