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두야 만두야! 저기 봐봐 "
" 달이 엄청 밝아 "
요즘같이 맑은 날 밤하늘에 어여쁜 달이 보이는 날엔 가족이든 친구든 내 생각이 난다고 한다. 내가 달 사진을 찍는 날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얘기하기 때문이다. 나는 달을 보면 소원을 빈다. 보름달이 아니어도 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밤늦게 집 가는 길에 달이 떠있으면 초승달, 그믐달, 반달, 보름달 상관없이 바라보며 그냥 내 속마음을 얘기해 본다. 철이 없다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내 간절한 마음을 거기에 빌어보는 거니까. 보름달이면 한번, 두 번, 세 번 여러 번 빌어 본다. 보름달이니까 한번 비는 걸로는 부족할 거 같아서. 바라는 마음이 가득한데 한 번에 빌어야 할지, 나눠서 빌어야 할지, 하나만 골라서 빌어야 할지 아직도 고민이다.
예전부터 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중학교 때 좋아하는 과학 선생님이 천문 동아리를 하셔서 일 년 동안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일산의 한 천문대에 가서 토성을, 저기 저 멀리 있는 토성을 매우 뚜렷하게 망원경으로 본 뒤로 나는 밤에 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우주에 관심을 가졌다. 저 너머 까만 밤하늘 가운데 말하는 듯 반짝이는 달과 별들은 어디서 온 걸까. 왜 이렇게 반짝이는 건지 학원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엔 내 마음을 아는지 나 가는 길을 외롭진 않게 했다.
학부 1학년 때, 어느 대학생처럼 MT를 갔었던 날이었다. 술도 마시며 게임도 하고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놀다가 답답해서 문을 박차고 나와 선선한 밤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셨다. 그때의 밤공기는 깨끗하면서 청량했다. 와 공기가 진짜 맑은가 봐 여기! 알딸딸한 술기운과 시원한 밤공기에 기분이 좋아 깔깔 웃다가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하늘이 계속해서 반짝거렸다. 깜깜한 하늘 아래 무수히도 많은 반짝임이 마치 나에게 쏟아질 거 같았다. 내가 늘 올려다봤던 하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원래 하늘에 이렇게 많은 별이 있는 거였나? 믿기지 않아 다시 보고 또 봤는데도 별이 까아만 하늘을 잔뜩 메우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벤치에 앉아서 고개를 들고 한동안 목이 아플 때까지 하늘을 바라봤다.
그렇게 밤하늘에 잔뜩 펼쳐져 손만 뻗으면 닿을 거 같이 선명했던 별들은 그 이후 본 적이 없다. 서울을 벗어나 여행을 가는 날이면 별을 볼 수 있을까, 다시 한번 그 순간이 올까 싶은 기대감을 품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보긴 힘들었다. MT를 갔었던 태안 보다 더 서울에서 멀리 혹은 산속으로 가는 거 같아도 밤하늘 뒤에 가려진 별들은 도통 나오지 않았다. 내가 거기에 얼마나 많은 게 숨어 있는지 알고 있는데! 그래서 여행의 끝자락 잠이 들기 전엔 항상 하늘이 별이 야속했다. 그 예쁘고 아름다운걸 왜 이렇게 나한텐 잘만 숨기는지.
그런데 달은 나에게 예쁜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지하철 안에서, 뭔가 힘들었던 하루를 보내고 돌아가는 울적한 버스 안에서, 매서운 추위에 바람까지 부는 한겨울 날 매일 서있는 버스 정거장 위에 둥그랗게 혹은 가늘지만 빛이 나서 같이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울 하늘 위에 홀로 떠있는 달이 그날따라 눈에 잘 들어오면 핸드폰을 꺼내 최대한 담아보려고 노력한다. 근데 어느덧 나뿐만이 아닌 주변 사람도 한 둘씩 핸드폰으로 달의 초점을 잡으려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는 왜 아름다운 걸 보면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걸까. 인간은 문명이 있기 전부터 하늘을 보았고 문자보다 별을 먼저 그렸다고 한다. 그 옛날도 오늘날도 광활하고 너른 하늘을 바라본다. 우린 하늘 위로 올라가도 잡히지 않을 것들을 궁금하고 사랑한다.
달에서도 항상 지구가 보인다고 들었다. 지구는 달보다 네 배나 커서 달에서의 밤하늘엔 거대한 지구가 늘 보인다고 한다. 넓은 밤하늘의 한쪽을 차지하는 지구의 모습이라니 달에서 바라보는 지구는 어떻게 아름다울까? 여기서 보는 달보다 별보다 훨씬 크겠지. 훨씬 빛나겠지. 만약 생명체가 그곳에도 있었다면 우리의 보금자리가 어떤 의미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