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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야 Jan 19. 2023

음식은 오래 남는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음식은 왜 이렇게 오래 남고 추억하는 걸까. 먹는다는 행위는 참 중요하다. 아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서 먹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바빠서 편의점에서 잠깐 데워 금방 먹는 삼각김밥이든, 컵라면이든, 분식집에서의 라볶이와 김밥이든, 백반집에서 한 끼 챙겨 먹는 혼밥이든, 오랜만에 누군가와 먹는 파스타든, 집에서 먹는 집밥이든, 우리는 일생을 사는 동안, 살아내기 위해서 하루에 몇 번씩 입안에 무엇이든 넣고 오물오물 씹는 행위를 한다. 그게 의식적이든, 의도적이든. 최근 식욕이 늘었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고 바쁜 와중에도 누군가 함께 하는 점심 한 끼, 저녁 한 끼가 너무 맛있고 신나고 감사하다. 낯을 가려도 혼자 밥 먹는 것보다 '같이' 먹는 걸 좋아한다. 혼자서도 잘 먹을 수 있지만 같이 먹으면 나에게 오래 남는다. 짧지만 지금까지 인생에서 내가 단단히 잘 살 수 있게 만들어준 음식들이 뭐가 있을지 한번 생각해 봤다. 대부분 나 하나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했던 시간들 속에 있는 음식이다. 그리고 기억나는 음식들이 생각보다 소박해서 놀라운데 만약 이 글을 계속 읽을 사람은 배고플 때 본다면 참기 힘들 수도 있겠다!



'순두부찌개'는 엄청난 나의 소울 푸드이다. 5000원이었을 때부터 분식집에서 먹었던 음식이다. 1인분의 적당한 크기의 뚝배기 안 빨갛고 보글보글한 국물 속에 희고 보드라운 말랑말랑한 두부가 숭덩숭덩 올라가 있다. 내 앞에 놓인 뚝배기에 숟가락을 넣고 뒤적뒤적하면 그 속에 노오란 노른자가 숨겨져 있기도 하고 아니면 옆에 있는 날계란을 깨뜨려 내가 밑에다 숨겨야 하기도 한다. 내 기억으론 이런 순두부찌개를 입시를 시작하면서 먹었다. 예술 고등학교와 미술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갔던 입시 미술학원에서 짧은 식사시간 때문에 친구들과 나는 근처 분식집에서 배달시켜 먹는 게 일상이었는데 나는 거의 순두부찌개를 시켜 먹었다. 시험을 망쳤을 때도, 입시를 준비하느라 힘들었을 때도 식사시간이 되면 나는 내 앞에 있는 밥공기에 말랑한 두부와 얼큰한 국물을 슬슬 비벼서 입안에 넣었다. 그럼 내 안에 뭔가 채워지면서 이상한 힘을 주었다. 그 후에 대학교에 가서도, 직장인이 되어서도 나는 이 순두부찌개를 매번 찾았고 약간의 조미료 맛과 얼큰하고 달짝지근함은 나를 종종 위로했다.


'미역국에 삼치조림'은 매우 뛰어난 조합이다. 미역국에 불고기, 미역국에 잡채 같은 어떠한 조합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한 끼 식사다. 내 기억으론 우리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미역국에 삼치조림을 자주 해줬다. 엄마가 하는 미역국과 생선조림은 다른 식당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맛있다. 학교에서 돌아와 앉아서 먹는 밥상에 미역국과 삼치조림이 있는 날에는 미역국에 밥을 말아 놓고 삼치를 발라서 찢어 살짝 밥 위에 올려놓고 먹으면 그것이야 말로 꿀맛이었다. 우리 엄마가 우리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음식 중 하나인 이 조합에는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어렸을 때 셋째 이모와 같이 살았었는데 하루는 내가 자다가 새벽에 깬 적이 있다. 아마 새벽 두 시 반쯤 되었을 거 같은데 내가 배고프다 하자 이모가 엄마가 해놓은 미역국과 삼치조림을 꺼내서 나에게 차려준 적이 있다. 늦은 시간이라 자라고 할 법도 했는데 이모는 왜 밥상을 차려 주었을까? 아직도 옛날 집과 이모의 젊었던 모습 그리고 새벽에 우걱우걱 밥을 먹는 나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 장면 중 하나이다.


'미숫가루에 수박 동동' 내가 아무리 미숫가루에 수박을 넣어서 먹어보라고 해도 그걸 왜 먹냐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친구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이 맛있는 조합을 모르고 살다니 나는 정말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엄마는 무더운 여름날 꼭 미숫가루에 얼음이 아닌 수박을 깍둑 깍둑 썰어서 숟가락과 함께 나와 동생에게 주었다. 더운 날 놀이터에서 한껏 뛰어놀고 온 나는 동생과 마주 앉아 입안에 고소한 미숫가루와 달달하고 시원한 수박이 들어가는 순간 잘 익은 수박을 입천장과 이빨로 누르면서 행복을 알아버렸다. 마지막 미숫가루가 남기 전 행여나 수박이 먼저 없어질까 봐 아껴 먹느라 은근히 머리를 써야 했다.


나는 '만두' 킬러다. 만두를 정말 좋아한다. 특히 군만두 보다 찐만두를 정말 좋아한다. 공장 만두보다 손만두를 좋아한다. 하얀 김이 나는 만두 집을 그냥 지나치기는 정말 힘들다. 우리 집에는 인스턴트 만두가 아닌 식당에서 파는 손만두가 늘 냉동고 안에 있다. 내가 만두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 아빠가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시켜서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만두를 좋아하는 아빠 덕분에 칼국수를 먹든, 냉면을 먹든, 중국집이든, 어딜 가서든 만두가 있으면 꼭 시켜 먹었다. 지금도 아빠는 한 달에 적어도 한두 번은 근처 칼국수 집에서 만두를 잔뜩 사 온다. 스무 개는 기본이다. 너무 많이 먹어서 질릴 법도 한데, 잠깐 보기 싫다가도 다시 찾게 되는 게 만두의 매력이다. 만두 하면 명절 때마다 다 같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어렸을 때 외할머니 댁에서는 주로 고기만두를, 친할머니 댁에서는 김치만두를 빚던 추억이 있다. 나는 의외로? 만두를 예쁘게 빚지 못했는데 예쁘게 빚는 이모와 동생을 질투했던 게 기억난다. 나는 주로 이상한 모양을 내고 싶었다. 사실 빚기보다 개수가 찰 때마다 할머니가 바로 쪄오시는 만두를 한 개 두 개 훔쳐 먹으면서 만두를 빚는 이모와 친척들 뒤에서 빈둥빈둥 놀았다. 그립다.


'떡볶이'는 사실 아직도 그렇지만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다. 하지만 있으면 먹게 되고 항상 떠올리는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 때 밤 10시에 미술 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선릉역을 향해 가면 항상 떡볶이 트럭이 줄지어 도로 옆에 있었다. 나랑 내 친구들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배고픔에 종종 삼삼오오 모여서 떡볶이 1인분에 순대, 어묵까지 먹었었다. 밥이 아닌 떡이 주인공인 음식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지만 서너 시간 그림을 그리고 나오는 길에 빨갛고 달콤한 국물에 기다랗고 쫄깃한 밀떡은 참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친구들과 모여 수다 떨면서 먹는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웠던 거 같다. 그 친구들의 근황은 알지 못하지만 그때의 그 기억이, 힘들고 재미없었던 고3 수험 생활의 나를 반짝거리게 만들어 준거 같아 너무나 고맙다. 얼마 전 선릉역 그 거리를 지나갔었다. 이제는 떡볶이, 튀김, 어묵 분식을 팔던 그 트럭이 안 보여서 조금 씁쓸하다.


'쌀국수'는 나에게 위안을 주는 음식이었다.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이년 정도가 되었을 때 가끔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혼밥을 했던 적이 있다. 직장인이 그렇듯 쉴 새 없이 사람과 일에 치여 살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었나 보다. 한 시간 점심시간에 십 분이나 걸어가서 혼자 먹기 좋은 아담한 베트남 식당을 발견한 나는 만 원짜리 쌀국수를 시키고 후루룩후루룩 면을 가득 입에 넣고 중간중간 아삭한 숙주를 씹으며 뜨끈한 국물로 내 마음을 달랬다. 쌀국수를 추억하다 보니 대학교 시절 작업하다가 친구들과 시켜 먹었던 게 생각난다. 그때는 배달 어플이 아닌 전화로 주문했었는데 하루는 배달 아저씨가 쌀국수 국물을 보온통에 담아 오셨다. 목이 빠져라 음식을 기다리던 우리 앞에서 가느다란 흰 면 위에 국물을 부어주셨는데 마치 딸자식이 따뜻한 음식으로 배 채우길 바라는 심정인 거 같다고 생각했다. 따뜻한 기억이다.


'배추 전'은 내가 전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외할머니 댁에 가면 항상 할머니가 배추 전을 부쳐 주신다. 부엌에서 전을 부치시는 할머니의 뒷모습까지 생각나는 음식이다. 바로 부친 전을 손으로 길게 길게 찢어주시는데 내 옆에 있는 할머니의 손과 냄새까지 생각해 낼 수 있다. 배추 전은 밀가루가 많으면 안 된다. 밀가루는 조금만 묻혀야 하고 은근히 바삭하게 부쳐서 씹으면서 배추의 달달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 배추 전을 먹으면 할머니는 과일도 썰어주시고 과일을 먹고 나면 밥을 또 먹으라고 하신다. 이제는 아빠도 엄마도 나도 배부르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배추 전을 길게 길게 찢어주시는 할머니가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음식을 생각하다 보니 배가 고파져서 이제는 그만 디저트 얘기를 하고 마무리해야 할 거 같다. '녹차 프라푸치노'는 내가 여름에 찾는 좋아하는 음료 중 하나이다. 이 녹차 프라푸치노를 나는 고등학교 졸업 전, 마지막 입시 준비가 끝난 날 밤에 먹었던 거 같다. 정확하게 언제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겨울에 친구 따라 녹차 프라푸치노를 처음 시키고 추운 날 한 손에 들고 친구랑 웃긴 얘기를 하며 선릉역 거리를 돌아다녔던 건 생각난다. 그전엔 녹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의심했지만 그날따라 녹차 음료를 시킨 나는 빨대를 물고 음료를 빨아들인 순간, 달콤하면서도 쌉싸름하면서 씁쓰름한 그 맛에 반해버렸다. 그 후에도 녹차 관련된 음료나 음식에 대해 거부감이 없어졌고 그때 녹차 프라푸치노를 처음 먹었던 그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면 그 순간이 생각난다.


다른 생각나는 음식들이 있지만 앞서 말한 음식들이 지금 현재 나를 생각하고 돌아봤을 때 나에게 가장 영향을 주었던, 가장 생각나는 것들이다. 돌아보니 내 경우에는 특별한 날 먹었던 음식이나 여행지에서 먹었던 음식, 혹은 비싼 음식보다는 어릴 때부터 먹어왔고 주변에서 너무나 평범하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 내가 얼마나 평범하게 살아왔는지 보여주고 있지만 한편으론 음식들을 통해 내가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라는 유명한 말도 있듯이 한 사람이 살면서 먹는 음식은 그 사람의 생활, 환경, 철학, 가치관, 태도 등을 대변하기도 하는 거 같다. 현대인들은 식사를 하기 전 본인의 식사를 찍어 남기고 sns를 통해 음식 사진을 올려 남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에는 그 사람이 오늘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궁금해하고 또 만나서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이렇게 먹는 행위, 특히 어떤 음식을 누구와 공유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 음식을 굳이 기록하고 추억하고 기억하려 한다. 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이토록 중요한 의미일까? 밥을 먹으며 '오감'을 전부 다 쓰기 때문일까? 음악만 들어도, 냄새만 맡아도 특정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시작된 프루스트 효과는 후각을 통해 기억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대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 근데 밥을 먹는 시간 동안 우리는 한 가지 감각이 아니라, 오감을 모두 쓴다. 뿐만 아니라 밥을 먹는 사람과의 그 공간, 조명, 대화가 흐르는 그 분위기까지 온몸으로 우리는 느끼고 있다. 영화 속에 있다고 해도 좋을 거 같다. 그러니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느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물론 밥 먹는 그 순간에 집중하고 있었다면 말이다. 나는 우리 밥 먹자 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술이 아닌 차 한잔이 아닌 '밥 먹자'는 좀 더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식사는 무엇을 먹는 것이 중요하기보다 그 사람과의 식사 자체가 더 중요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 순간을 기억하고 결국엔 그 음식이 내 삶의 한 조각이 된다. 훗날 내가 이 글을 보게 되었을 때는 또 어떤 음식이 추가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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