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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야 Feb 26. 2023

걸으면 마주하는

언제나 그곳에서

매주 주말 중에 한번 아침,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너무 춥거나 더운 날이 아니라면 특별한 일이 없는한 시간을 내어 아빠랑 걸으려고 한다. 보통 여덟 시 반쯤, 여름에는 더워서 좀 더 일찍 집을 나선다. 주말이면 더 늦게까지 자고 싶기도 한데 이상하게 전날 밤 내일 아침에 나가서 운동하자 약속이라도 하면, 당일엔 평일 어느 날보다도 일어나는데 힘이 들지 않는다. 일어나서 간단하게 아침을 챙겨 먹고 엄마와 아빠 나 셋이, 혹은 아빠와 나 둘이 집을 나선다. 우리 집 근처에는 걷기 좋은 공원이 정말 많은데 공원이 많다는 점이 우리 집의 장점이다. 우리가 그날그날 걷는 코스는 다양하다. 집에서 출발해서 올림픽공원만 간단하게 한 바퀴 돌고 오기, 올림픽공원을 지나 잠실한강공원을 찍고 송파 둘레길을 걸어오기,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돌고 오기, 집에서 출발해 헬리오시티를 지나 탄천(송파 둘레길)과 양재천을 찍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기, 헬리오시티를 지나 탄천을 지나 삼성역 근처에 한강공원을 보며 한강을 바라보며 걷다가 올림픽공원을 지나 돌아오기(제일 힘든 코스). 보통 두 시간은 기본이고 많이 걸으면 세 시간 정도 되어 만 오천보에서 무리하면 이만 보 가까이 되는데 이 코스들이 봄여름가을겨울 다 매력이 넘친다. 제일 자주 가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올림픽공원인데, 올림픽공원도 곳곳의 숨어있는 다양한 코스로 운동할 수 있어서 누군가는 지겹지 않냐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다.

올림픽공원 겨울

사계절 공원을 다니면서 매년 보는 모습이지만 그 순간순간을 자주 보고 싶어서 중간중간 멈춰서 사진을 찍는다. 매년 봐도 다르고 멋있다. 그 누군가에게 올림픽공원은 나의 삶의 친구이고 나의 인생 역사가 담겨있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어릴 적 사진 앨범을 펼쳐보면 올림픽공원에서 활짝 웃으며 놀았던 모습들이 잔뜩 담겨 있다. 성인이 돼서는 공원 가까이 살게 되어 더 자주 찾았기에 그동안 공원을 찾아 친구와 부모님과 동생과 걸으면서 얘기 나눴던 나의 고민들, 생각들은 이 공원의 나무가 알고 꽃이 알고 새가 알 듯하다. 매년 올림픽 공원의 사계절을 함께 하는데, 봄에 꽃이 피고 벚꽃이 피고 여름이 돼 가면서 녹음이 짙어지고 장미공원에 장미꽃이 만발하고, 가을엔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공원을 물들고 겨울에는 눈이 공원을 잔뜩 덮어 아이들이 썰매를 타는 것까지 모든 계절의 모습들이 내 눈에 담겨 있다. 걷다 보면 다음의 봄의 모습, 여름의 모습이 기대된다. 이젠 인생에 있어서 나에게 크고 의미 있는 장소이다.

곧 다시 찾아올 올림픽공원 봄

운동을 나가는 날에는 빠른 속도로 걷거나 종종 뛴다. 언제 저기까지 가나 싶으면서도 아빠와 얘기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른다. 한 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느라 서로가 자기 얘길 하느라 바쁘지만 얘기하다 보면 평일 동안에 속상했던 일도 우울하던 마음도 어느새 사라지고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같이 발맞춰 걷고 뛰다 보면 공원도 아빠도 세상에서 나에게 언제나 든든한 백이 있는 거 같아 마음이 위로가 된다.


오늘도 아빠와 걸었다. 모처럼 날씨가 좋아서 이른 시간인데도 아이들이 공원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좋을 때다" "돌아가고 싶지? 지금이 제일 좋은 거야. 아빠도 육십 인 지금이 제일 좋아. 너도 지금이 얼마나 좋니" 운동하면서 지나가는 어린애들을 보며 내가 저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얘기하자, 아빠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좋은 거라고 한다. 미래의 막연함에 약간의 답답함을 토로하던 중 공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 애들이 부러웠는데 현실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는 우리 아빠.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또 지금을 그리워할 수도 있겠지~! 함께하는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졌다. 어렸을 때 나와 아빠의 모습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많이 변화했다. 어느새 서른이 되었고 아빠는 예순이 되었다. 내가 올림픽공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항상 제자리에서 변함없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원의 저 나무는 항상 그곳에서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그곳에서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는데, 우린 참 많이 달라졌고 변화했다. 아니다. 나무들도 '같이' 변화해왔겠다. 그래도 항상 그 자리에서 내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항상 지켜봤던 것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라. 앞으로도 우리를 항상 지켜봐 줘.

올림픽 공원 여름-바람이 가장 많이 부는 곳
가장 멋진 공원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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