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윤선생 영어교실에서 강선생으로 근무하던 엄마는 동료 직원 이야기를 꺼냈다.
32살인 여직원이 여태껏 학자금을 갚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17살이던 나는 의아했다.
"32살이면 대학 졸업한 지 한참 됐을 거 아냐. 근데 아직도 학자금을 갚고 있다고? 여태 뭐했대?"
지금 생각해보면 망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었다. 그때는 참 어리석었다. 돈은 부모님이 벌었고, 나는 공부나 교우관계만 신경 쓰면 그만이었다. 학자금이 얼마 정도 되는지, 직장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 없을 나이였다. 부모님도 돈에 대해 철저히 숨기셨다. 우리 집 대출금은 몇 년 뒤에 은행이 알려주었다.
뭣도 모르고 세상에 뛰어들었다. 대학 시절엔 엄마가 빌린 500만 원을 갚고, 생활비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대여섯 개 했다. 학자금은 기본이고, 생활비까지 없을 때는 150만 원씩 학자금 대출의 도움을 받았다. 마지막 학기에는 취직하면 학교에 안 나가도 학점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일찍 입사했다.
24살. -21,802,000원. 이자는 별도.
마이너스는 내 스펙이었다.
첫 연봉은 1800만 원. 파견직이었다. 첫 직장에서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정리해고 대상이 된다. 해고당하기 전에 운 좋게도 이직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직장에서 근무하고 몇 달 후, 한국장학재단에서 이런 뉘앙스의 메일이 왔다.
"직장 다니고 있으면 이제 학자금 슬슬 갚으셔야죠? 이 달 안에 xxx만원 갚아주세요. 안 그러면 회사에 통보해서 다달이 월급에서 까겠습니다."
xxx만원이 얼마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내가 당장 갚을 수 있는 액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학자금을 갚고 있다는 걸 회사에 알리기는 싫었다. 하지만 한국장학재단은 얄짤 없었고, 내 잔고도 그랬다. 결국 자존심이 어떻든 간에 회사 총무팀은 알게 되었다.
"다음 달부터 월급에서 10만 원 정도 나가고 남은 돈이 입금될 겁니다."
"네..."
찔끔찔끔 갚고 있을 즈음, 아이가 찾아왔다. 임신 8주였다.
퇴직연금과 청약을 깨고, 신용대출 두 개에 주택대출, 시부모님 도움까지 받고 나서야 남자친구랑 결혼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영끌이었다.
26살. 약 -150,000,000원. 마이너스는 내 포트폴리오였다.
그리고 2022년, 32살.
이제 대출이라면 지긋지긋하고, 채무자 신고도 감시당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 (한국장학재단은 매년 연말이 되면 채무자의 재정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채무자 신고를 하라고 한다. 현재 직업, 부양가족 이런 걸 물어본다. 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나는 올해야 말로 기필코 학자금 대출과의 인연을 끝내리라 마음먹었다. 그 소망이 너무도 강렬해서 하루는 포토샵 잘하는 친구에게 내 학자금 잔액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면서 부탁했다.
"여기 보이는 대출잔액을 0으로 바꿔주라."
친구가 내 잔액을 지우면서 말했다.
"정말 이대로 됐으면 좋겠다."
친구가 보내준 사진이 첫 번째,
실제 상환하고 찍은 사진이 두 번째다.
"32살이면 대학 졸업한 지 한참 됐을 거 아냐. 근데 아직도 학자금을 갚고 있었어? 여태 뭐했길래?"
예전의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물어본다면,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변명으로 이 글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삽질을 덜 했으면 좋았겠지만.)
32살. 여전히 마이너스는 내 커리어다.
하지만 조금,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