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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Nov 29. 2022

삶을 견디는 기쁨

아빠의 생신날

지난주, 아빠의 생신날. 나는 미사리에서 아빠와 놀고 싶었다. 잼민이 시절, 주말마다 아빠랑 동생이랑 자전거를 타고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다녔던 추억을 되새기고 싶어서였다.


바쁜 동생이 비워놓은 자리를 남편과 아이들 둘이 앉았다. 우리는 6인승 자전거를 빌렸다.

남편이 운전석, 아빠가 조수석에 앉고 나는 뒷자리에서 아이들의 인간 안전벨트 역할을 맡았다.


"자, 출발!"

운전하지 않는 나는 마음이 편하다. 아빠와 남편이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페달이 두세 번 돌았을 뿐인데 앞자리 남성들의 숨소리가 격해졌다. 걸어가는 것보다 느리게 움직였다. 옆에서 다른 사람들이 쌩쌩 지나가니 감질맛 났다.


"왜 이렇게 힘을 못 써. 도와줄까?"

엄마의 힘은 위대하지. 내가 합류하면 잘 움직일 거야. 나는 아이들을 잡은 채로 뒷자리 페달에 발을 올렸다. 이제 걸어가는 속도는 나오는데, 여전히 이상했다. 페달을 두세 번 굴렸을 뿐인데 등에서 홍수가 났다.


"이게 맞아..? 이렇게 힘들다고?"

몇 분 동안 성인 3명이서 의아해했다. 아이들은 지루해 보였다.

잠깐 가는데 이렇게 힘들면 돌아가는 건 어떻게 하지. 하늘이 노랬다. 뒤를 돌아보니 대여소가 보였다. 우리가 제대로 반납할 수 있을까. 이러다 직원한테 걸어가서, '죄송한데 저희가 힘이 달려서... 도저히 반납을 못하겠어서 도로 한복판에 두고 갈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이게 다 저희가 운동을 안 한 탓이에요..' 이런 허튼소리를 할 상황이 올까 봐 걱정이 됐다.


"어, 여기 방법이 쓰여있네요."

자전거 운전석 손잡이 오른편에 QR코드가 있고, 그 위에 [자전거 이용방법]이라 쓰여 있었다. 남편이 스마트폰으로 읽는 동안 우리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때 마침, 반대편에 똑같이 6인승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와 다르게 산뜻한 속도로 다가오는 그들을 보고 아빠가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달려요?"


아빠의 말을 들은 남성분이 한 마디 남기고 지나갔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푸셔야 돼요!"

브레이크...? 브레이크 안 잡았는데..?

남편은 설명서를 보면 무슨 얘긴지 알 거라면서 읽고 있었고, 성격 급한 우리 부녀는 브레이크를 이쪽저쪽 움직여보며 의아해했다.

잠시 뒤 아까 그 남성분이 자기 자전거를 멈추고 우리 쪽으로 다가와 알려주었다.


"이게 처음부터 사이드 브레이크가 걸려있어요. 이걸 풀어줘야 돼요."

남편 운전석에 브레이크가 내려가 있고 그 위를 걸쇠 같은 것이 막고 있었는데, 아뿔싸, 그게 브레이크가 걸려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여태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왜 차가 안 나가냐고 불평했던 것이다.

남성분이 브레이크를 풀어주고 나서 페달을 밟아보았다.


추워서 한적한 미사리


"오오!!! 움직인다!!!!! 우와!!! 시원하다!"

드디어 하늘이 파래 보였다. 허둥거리는 우리들을 보던 아이들은 우측의 호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남편은 설명서 끝까지 봤으면 나도 금방 알았을 거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아빠와 나는 이 상황이 웃겼다. 아까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거 몰랐으면 어쨌을까, 이렇게 잘 굴러가는 자전거를 두고 불평을 했다며, 막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렇게 추억을 하나 더 만들었다.




나는 요즘 돈미새(돈에 미친 새..)다. 욕구불만에 빠져있다. 주변 사람들의 생일에 비싼 제품을 선물로 주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의 생신날에도 그런 상태는 여전해서, 나는 아빠를 만나자마자 한우를 대접하겠다고 덤벼들었고, 상차림비가 인당 5천 원씩 추가된다는 말에도 동요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디퓨저 하나에 10만 8천 원이라는 가격표를 보면서 동공 지진이 일었지만, 생일선물을 어떻게든 사드리고 싶어서 돌아다녔다.

상대가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보다, '이런 비싼 제품까지 사줄 수 있는 나는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인정을 받고 싶은 나의 이기심이었다.

하지만 나의 아빠에게는, 자전거 타면서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어놓는 우리의 바보 같은 모습, 함께 깔깔거리고 바람을 쐬는 추억 같은 것에 비하면, 밥과 커피와 선물은 보잘것없어 보였다.


아빠는 요즘 살면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느낀다.

그런 아빠에게 삶을 견디는 기쁨이 남아있을까.


할아빠와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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