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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Dec 06. 2022

학자금 대출을 11년 만에 청산하며,

"당신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윤선생 영어교실에서 강선생으로 근무하던 엄마는 동료 직원 이야기를 꺼냈다.

32살인 여직원이 여태껏 학자금을 갚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17살이던 나는 의아했다.


"32살이면 대학 졸업한 지 한참 됐을 거 아냐. 근데 아직도 학자금을 갚고 있다고? 여태 뭐했대?"


지금 생각해보면 망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었다. 그때는 참 어리석었다. 돈은 부모님이 벌었고, 나는 공부나 교우관계만 신경 쓰면 그만이었다. 학자금이 얼마 정도 되는지, 직장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관심 없을 나이였다. 부모님도 돈에 대해 철저히 숨기셨다. 우리 집 대출금은 몇 년 뒤에 은행이 알려주었다.


뭣도 모르고 세상에 뛰어들었다. 대학 시절엔 엄마가 빌린 500만 원을 갚고, 생활비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대여섯 개 했다. 학자금은 기본이고, 생활비까지 없을 때는 150만 원씩 학자금 대출의 도움을 받았다. 마지막 학기에는 취직하면 학교에 안 나가도 학점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일찍 입사했다.

24살. -21,802,000원. 이자는 별도.

마이너스는 내 스펙이었다.


첫 연봉은 1800만 원. 파견직이었다. 첫 직장에서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정리해고 대상이 된다. 해고당하기 전에 운 좋게도 이직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직장에서 근무하고 몇 달 후, 한국장학재단에서 이런 뉘앙스의 메일이 왔다.


"직장 다니고 있으면 이제 학자금 슬슬 갚으셔야죠? 이 달 안에 xxx만원 갚아주세요. 안 그러면 회사에 통보해서 다달이 월급에서 까겠습니다."


xxx만원이 얼마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내가 당장 갚을 수 있는 액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학자금을 갚고 있다는 걸 회사에 알리기는 싫었다. 하지만 한국장학재단은 얄짤 없었고, 내 잔고도 그랬다. 결국 자존심이 어떻든 간에 회사 총무팀은 알게 되었다.


"다음 달부터 월급에서 10만 원 정도 나가고 남은 돈이 입금될 겁니다."

"네..."


찔끔찔끔 갚고 있을 즈음, 아이가 찾아왔다. 임신 8주였다.

퇴직연금과 청약을 깨고, 신용대출 두 개에 주택대출, 시부모님 도움까지 받고 나서야 남자친구랑 결혼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영끌이었다.

26살. 약 -150,000,000원. 마이너스는 내 포트폴리오였다.




그리고 2022년, 32살.

이제 대출이라면 지긋지긋하고, 채무자 신고도 감시당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 (한국장학재단은 매년 연말이 되면 채무자의 재정상황을 체크하기 위해 채무자 신고를 하라고 한다. 현재 직업, 부양가족 이런 걸 물어본다. 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나는 올해야 말로 기필코 학자금 대출과의 인연을 끝내리라 마음먹었다. 그 소망이 너무도 강렬해서 하루는 포토샵 잘하는 친구에게 내 학자금 잔액이 찍힌 사진을 보여주면서 부탁했다.


"여기 보이는 대출잔액을 0으로 바꿔주라."

친구가 내 잔액을 지우면서 말했다.

"정말 이대로 됐으면 좋겠다."


친구가 보내준 사진이 첫 번째,

실제 상환하고 찍은 사진이 두 번째다.

아예 내역이 없어질 줄은 예상 못했다.


"32살이면 대학 졸업한 지 한참 됐을 거 아냐. 근데 아직도 학자금을 갚고 있었어? 여태 뭐했길래?"


예전의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물어본다면, 나름 열심히 살았다는 변명으로 이 글을 보여주고 싶다. (물론 삽질을 덜 했으면 좋았겠지만.)


32살. 여전히 마이너스는 내 커리어다.

하지만 조금,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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