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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Jan 11. 2023

기억을 먹는 뇌, 뇌를 먹는 두려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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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는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는 건 마치 부모를 버리는 것 같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의 부모를 요양원에 보낸다는 생각만으로도 어떤 죄악감을 느끼는 듯했다.


주변의 말에 의하면, 좋은 요양원은 시설이 좋고 밥도 잘 나오고 프로그램도 많아서 적적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만큼 보상이 따른다. 돈. 이모도 좋은 요양원에 보낼 재력이 있었더라면, 요양원을 나쁘게 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부자들의 부모가 치매를 앓을 때, 부자 자녀들은 어떤 고민을 할까.




요양원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를 앓으셨던 그때를 떠올렸다. 할머니의 형제가 어머니를 돌보셨는데, 방치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형제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주 다투었다. 그리고 일에 치여 사느라 바빠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할머니의 눈에 아픈 기억이 일렁인다.


그리고 예전에 요양원 청소일을 시작하려고 들어갔는데, 그때 맡았던 악취를 잊을 수 없다 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서서히 무너져 가던 모습, 부모를 방치하는 형제에게 품었던 불만. 악취가 코끝을 스치자마자 일련의 잔상들이 깨어나 난동을 부린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요양원은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곳, 보내지는 순간 죽음이 당신을 집어삼키는 곳으로 여겨졌다. 




할머니는 내게 전화를 걸었다. 바쁘냐고, 안 바쁘면 잠시 내 얘기를 들어달라고.

혹시 내가 정신이 온전치 못하게 되어도 요양원에 보내지는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시면서 참았던 아린 감정들을 쏟아내셨다.

아이들 등원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다 순간,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할머니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러나 아픈 감정을 늘 혼자서 처리하는 나에게 할머니의 뜬금없는 통곡은 낯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 지금 두려우니까 알아달라'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정신은 나보다 건강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까. 그때는 당황하여 그저 "걱정하지 마세요."만 자동 응답기처럼 반복했는데, 아마 다시 돌아가도 그 말만 반복할 것 같다.


'세상이 아무리 귀한 것을 건네려 해도 당신이 받지 않으면 받을 수 없고,

반대로 악한 것을 건네려 해도 당신이 받지 않기로 마음먹으면 그 어떤 것도 당신을 해칠 수 없다.

그러니 과거의 잔상이 당신을 해치도록 허용하지 않기를.'

이런 내 생각을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할머니는 본인 뜻대로 살아갈 테니까.


단지 할머니가 믿는 하나님이 두려움을 이겨낼 지혜를 내려주시길, 기도하는 수밖에.



ⓒ Photo by Rod Lo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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