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타의 유혹
올해 첫째가 8살이 되었다.
첫째가 아기일 때부터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
"애가 초등학교 입학하면 정신없이 바빠질 거야. 숙제 봐주다 보면 시간 훅 가."
"그때는 애한테도 중요한 시기야. 휴직하고 엄마가 애 좀 봐줘야 돼."
"공부습관은 엄마가 잡아줄 수밖에 없어. 선생님이 다 해 줄거라 생각하는 건 오산이야."
예전엔 조금도 공감하지 못했는데,
아직 입학하지도 않았음에도 이제 이런 말들이 이해가 간다.
2월에 접어든 지금, 첫째가 입학하기 전에 준비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일단 한글. 한글을 떼냐 못 떼냐, 학부모에게는 그것이 문제다. 같은 유치원 친구 중에도 국어·수학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아이가 있다. 나도 아닌 척 하지만 내심 초조해졌다.
아이를 낳았을 때는 분명 남들과는 다르게 키우겠다고 마음먹었고, 생각이 트인 엄마라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평균이라는 열차에 탑승하지 않으면 제시간에 원하는 미래로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 나는 아이의 입학을 목전에 두고서야, 자녀교육에 열을 올렸던 아버지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학력을 원하면 본인이 다시 공부해서 쟁취하면 되지, 왜 자녀에게 자신이 못 갔던 길을 강요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엘리트의 길을 아이가 걸었으면 하는 마음이 내게도 생겼다.
그런 나 같은 학부모를 자극하는 드라마가 두 편이 있는데, 하나는 종영한 그린 마더스 클럽 그러니까 녹색 어머니회. 다른 하나는 요즘 방영하는 일타 스캔들이다. 둘 다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리얼하게 그려냈다. 그러나 실제 우리네 삶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아무래도 드라마다 보니, 학부모와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판타지에 가깝다.
그린 마더스 클럽은 안 봤다면 스포 해서 미안하지만,
아들 동석이가 평소에 딴짓하고 무슨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 그저 평범한 장난꾸러기인 줄 알았더니 글쎄, 레벨 테스트를 받아보니까 상위 1%도 아니고, 0.01%의 천재였다! 그 소식을 들은 엄마들도 동석이 엄마를 깔보다가 갑자기 태세 전환을 하더니, 대회에 나가서 상을 휩쓸고...
일타 스캔들은 역시 안 봤다면 미안하지만, 이 드라마가 더 심한 판타지다.
반찬가게 집 딸이 독학을 하는 고2 학생이다. 하교하고 바로 집에 들어와서 책을 펴고 스스로 공부를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벌써 학부모에게는 극락에 가깝다.
거기에 한 단계 나아가서, 딸 해이는 다 1등급인데 수학 하나만 2등급이다. 수학을 어떻게 하면 1등급으로 올릴 수 있을까 고민한다.
여기까지도 판타지인데, 이제부터는 정말 입이 떡 벌어진다. 1조 원의 남자가 별명인 수학 일타 강사,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엄마들이 오픈런을 할 정도인데, 그 강사가 비밀리에 해이의 개인 과외를 해준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나는 여기서 드러누웠다. 드라마지만 내가 나서서 강사님께 절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동석이와 해이처럼 잠재력이 뛰어난 친구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보곤 했다.
부모는 어떤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아야 할까.
아이도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 모르는 게 당연하고, 부모는 길을 찾도록 돕되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원하는 것만 하게 하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일일까.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공부도 필요한데, 어떻게 유도해야 즐겁게 하도록 도울까.
아직 정식 학부모가 아닌데도, 수많은 물음표가 나를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