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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래 Mar 12. 2023

내 맘대로 공주 (1)

빨간 날이 좋은 딸, 까만 날이 좋은 엄마

"난 내 맘대로 공주야.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갓 초등학생이 된 딸은 호기심딱지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본 '내 맘대로 공주'를 따라 하곤 한다. 내 맘대로 공주는 자고 일어나면 세수를 해야 한다는 빙그르르 의사에게서 도망 다닌다. 우리 딸은 그 영상을 보고는, 어찌나 응용력이 뛰어나신지, 모든 상황에서 내 맘대로 공주가 되어버린다.

주로 딸이 내 맘대로 공주님이 될 때는, 친구네 집에 가서 놀고 싶을 때다.


대화 1.

"친구네 집에 가서 놀면 안 돼?"

"오늘은 화상수업이 있어서 집에 가야 돼."

"아니야, 싫어 으아ㅏㅏ아아아앙!!!"


대화 2.

"그래도 친구네 집에 가서 놀고 싶어!"

"다음에 놀자. 오늘은 일정이 있잖아."

"다음이 언젠데. 다음은 너무 길어. 나 안 해!!!"


대화 3.

"난 내 맘대로 공주야. 그러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엄마: (말잇못)

"난 내 맘대로 공주라서~ 집에 안 가도 돼!"

엄마: 야!!!!!@$$@#@#$$@#$#@!!!




아이 둘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닐 때, 엄마는 편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나 기관에서 생활하는 동안, 엄마는 내 맘대로 공주여도 괜찮았다.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에 커리어우먼이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룰 수 있었고, 아이들의 밥 시중을 들지 않아도 되었다.

엄마는 내 맘대로 공주가 될 수 있는 까만 날을 만끽했다. 그동안 딸은 마음껏 쉴 수 있는 달력의 빨간 날에 하트를 그리며 기다린다.


그러나 3월의 까만 날은 달랐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딸이 수업과 점심식사를 모두 끝내도 오후 1시에는 학교에서 나왔다. 아들의 첫 유치원 생활은 그보다 짧았다. 11시 30분에 등원하여 누나랑 같이 집에 갔으니까 2시간 정도. 그러니까 엄마가 내 맘대로 공주가 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뿐이었다. 엄마는 시계 한 바퀴뿐인 그 달콤한 조각을 음미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그러나 아들의 유치원에서 선생님과 상담한 뒤로,

엄마는 더 이상 까만 날을 기다리지 않는다.




ⓒ UnsplashHenrique Malagu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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