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다다른
알싸한 흰색 천일홍이
비에 젖어 물기를 머금는다.
바다의 짠내를 머금은 바람이
하나의 머리카락을 흩뜨리고,
그것이
시야를 가린다.
어쩌면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가려주는 것처럼.
가을비가 추적,
걸음마다 달라붙고
하나의 파란 우산 속에는
빗방울이
토독, 토독
고요하게 울린다.
어느새
겨울에 가까워진 탓일까.
집 앞이라
가볍게 입은 탓일까.
하나는
노란색의 얇은 가디건을
여몄다.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자
문득
호수의 냄새가 났다.
함께 걷던 걸음.
숨쉴 때마다
작게 오르내리던 가슴.
함께 웃던
그 웃음 소리까지.
바람에 섞여
하나의 코끝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파도가 세차게 불던 바다에서
하나와 호수는
각자 어떤 선택도
뚜렷이 내리지 못했다.
할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진 태풍을
우리는
우리가 쌓아 올린 모래성 안에서
버텨보려 했다.
누구를 닮은 건지
생각은 자꾸만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시선을 돌리자
혼자 걸음을 세던 순간이
어느새 둘의 풍경이 되어 있었다.
걸음의 속도는
기억 속
호수의 걸음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일까.
문득
이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바람의 언덕.
그 아래에 다다랐다는 걸
생각의 늪 속에서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호수와 함께했던 시간보다,
어색해진 혼자의 시간이
이곳을 더 익숙하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혼자의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던 날들이 지나고
이젠 견뎌야 할지도 모르는 순간 앞에서
하나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언덕 끝,
나무 아래.
호수가
서 있었다.
…
이건
지난 꿈일까.
그렇다면
이 마지막, 선물 같은 순간을
하나는
마음대로 쓰고 싶었다.
한 발,
또 한 발.
움직이는 걸음마다
눈물이 매달려
시야를 가렸다.
하나는
거칠게 눈물을 털어냈다.
그리고
점점 짙어지는 바람을
그대로 뚫고
달려갔다.
앞에 있는 아이.
머뭇대면서도
시선을 거두지 않는 아이.
고장 난 것처럼 서 있으면서도
어딘가
받아낼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
그게
정말
호수라는 걸 깨닫는 순간,
하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달려가
품에 안겼다.
… 아니,
지난 날의
미안함.
그리움.
연민.
그 모든 것을 닮은 채,
하나는 작은 몸으로
자신의 세상이 되어버린 아이를
끝내,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