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산업의 민낯
인터넷의 보급은 언론사에 쓰나미급 충격을 가져왔다. 뉴스를 인터넷에서 무료로 보는게 당연해지면서 언론사들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였던 구독료가 사라지다시피 한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2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2022년 종이신문 열독률은 9.7%를 기록했다. 종이신문 열독률은 50대(12.4%)와 60대(13.2%) 70대(10.5%)가 가장 높았고, 20대(3.5%)와 30(8%)대는 10에 달하지 않았다. 구독률은 더욱 낮았다. 구독료 지불 여부와 상관없이 종이신문을 정기적으로 구독하고 있다는 응답 비율은 8.4%로 나타났다.
또한 인터넷의 보급은 언론권력 탈중앙화로 이어진다. 언론사들이 인터넷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면서 미디어 권력의 중심이 인터넷 포털로 넘어간 것이다. 이로인해 어느 지면에 어떤 기사를 배치하고 어느 광고를 유치할 것인지를 결정하던 권한까지 인터넷 포털로 넘어간다. 실제로 위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다고 생각는 언론사·매체사’와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매체사’에서 연령대별로 차이를 보이지만 연령대가 어릴수록 네이버의 영향력이 컸다.
언론 권력의 중심이 포털로 넘어간 대표적인 예로 2021년 발생한 연합뉴스의 네이버 퇴출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이 언론계에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연합뉴스가 언론사들 사이에서 가지는 위상 때문이다.
연합뉴스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기자수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다. 여기서 통신사란 신문이나 방송사 등 다른 언론사들을 상대로 뉴스를 제공하고 판매하는 곳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뉴스 도매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들어 서울 지역 언론이 상대적으로 뉴스 가치가 떨어지는 지방 뉴스를 처리하기 위해 주요 거점마다 주재 기자를 둘 경우 비용 대비 효율이 극히 떨어지게 된다. 반대로 영세한 지역 신문이 주요 취재원이 집중된 서울에서 취재활동을 벌이기에는 경제적 부담이 너무 크기에 뉴스의 도매상인 통신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언론사들은 통신사와 계약을 맺고, 기사를 거의 그대로 베껴 송출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연합뉴스의 취재망은 국내 최대 규모로, 기자단은 해외 특파원 4~50명 정도를 포함해 총 600명 정도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 기자단 수가 200명대인걸 보면 연합뉴스의 기자단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또 포털에 전송하는 기사수도 연합뉴스가 다른 언론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연합뉴스에게도 포털 퇴출은 치명적이었다. 지난해 8월 연합뉴스는 10년간 기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기사형 광고 수천 건을 포털에 마치 일반 기사인 것처럼 위장해 전송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네이버, 다음 양대 포털사이트에서 퇴출됐다. 연합뉴스는 포털에서 퇴출이 결정되자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지위가 유지될 수 있을지 불안감도 있다”며 법적 소송을 벌였다. 국내 최대 규모 언론사도 어떻게든 포털에서 퇴출당하지 않기 위해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쓴 것이다.
현장에서도 언론의 권력이 포털로 넘어간 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낀다. 실제로 내가 어떤 회사에 대한 비판 기사를 쓰면 그 회사 관계자에게 전화가 와 ‘(기사를)네이버에서만 안 보이게 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2008년 아이폰이 공개된 이후, 사람들의 삶은 점점 스마트폰 스크린 안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각종 미디어 플랫폼이 탄생했고, 인플루언서나 크리에이터와 같이 사회적 영향력이 큰 직업이 새롭게 탄생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며, 상대적으로 언론사의 입지는 줄어든다.
언론사는 원조 인플루언서였다. 과거에는 언론이 전달하는 사건은 팩트라는 '신뢰'가 기반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신뢰할만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야 말로 말로 언론이 힘을 가질 수 있었던 본질적 요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국의 언론사는 신뢰를 잃었다. 2021년 한국의 언론 신뢰도는 32%로 46개국 중 38위를 기록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20% 초반으로, 항상 꼴찌였다. 또한 30%를 넘은 것도 2021년이 처음이다.
신뢰를 잃은 주요 요인으로 ▲편향된 보도 ▲전문성 결여 등이 꼽힌다. 기자들이 전문성이 없다는 것이다. 업계 종사자인 내가 봐도 그렇다. 메이저 신문사, 인터넷 신문사를 가리지 않고 정말 전문성을 가졌다고 느껴지는 기사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는 미디어라는 언론사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첫번째 원인은 한 분야에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큰 비용과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 언론사의 수뇌부는 기자가 한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성을 함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전달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기자와 그렇지 못한 기자가 하는 ‘전달’은 질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
또 대다수의 언론사에서는 한 분야를 마스터한 한 전문가보다는, 여러 분야를 다양하게 커버할 수 있는 기자를 더 선호한다. 실제로 종합 언론사의 경우 기자로 입사하면 한 부서에서 쭉 성장 시키는 게 아니라 사회부로 시작해 경제, 문화부 등 전 분야를 경험시키는 커리큘럼이 통상적이다.
전효성 한국경제TV 기자는 ‘언론계를 떠나는 젊은 기자들’이라는 유튜브 영상에서 “한명의 기자를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만들기 위해서는 5년 10년이 넘는 막대한 시간이 걸린다”며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비용과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간당간당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하는 언론사들이 이 긴 시간을 기다려줄 수 있느냐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나 또한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는 업게의 전문가가 되어 깊이 있는 기사를 쓰고 싶었다. 기사 대부분이 얄팍한 지식수준에서 작성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언론산업에 종사해보니 전문성이 없는 기자가 잘못된게 아니라, 전문성을 기른 기자가 특이 케이스라는 걸 깨달았다.
실제로 내가 기자를 하며 선배에게 가장 많이들은 말 중 하나가 "기자에게 석·박사급 지식은 필요 없다. 우리가 쓰는건 논문이 아니다. 기사 한 꼭지 쓸 정도면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는 두번째 원인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두번째 원인은 기사는 기본적으로 휘발성이 강한 콘텐츠라는 것이다. 이슈는 계속해서 발생하는 만큼 모든 이슈를 심도 있게 분석해 쓰는 건 너무 비효율적인 일이다. 심도 있는 분석이 필요한 경우 외부 전문가나 대학교수 등에게 의견을 묻는 방법이 있다.
언론계에 발을 들이고 가장 놀랐던 사실 중 하나는 기자가 하루 일과 중 정말 ‘기사’라는 글을 쓰는데 투자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기자는 업계 관계자를 만나고, 현장 취재를 다니고 이슈를 파악하는 등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한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언론사의 자충수가 된 듯하다. 사람들이 정보 검색을 위해 언론사가 아닌, 블로그나 유튜브등을 통해 그 분야의 전문 인플루언서들을 찾기 시작했다. 기업입장에서는 언론사보다는 그 분야의 인플루언서나, 인플루언서가 모여있는 플랫폼에 광고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것이다.
전효성 기자는 “언론사는 인플루언서나 플랫폼기업에 비해 홍보차원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언론산업이 사양산업이란 말은 20년 전부터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10년 넘게 홍보 일을 한 어느 대기업 차장이 내게 한 말이다. 과연 10년 후 언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나도 당장 기성 언론사들이 망하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기성 언론사들이 우리 사회에 전반에 결성해 놓은 카르텔은 철옹성처럼 단단해 보인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는 점점 빨라지고 있고, 이 철옹성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언론사들도 이 변화를 눈치 채고 어떻게든 대응해 보려 하지만, 아직까지 마땅한 대책은 없어 보인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자생력을, 편향된 보도로 신뢰를, 인플루언서들의 탄생으로 영향력을 잃었다. 그렇기에 언론사들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타인의 잘못은 쉽게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부족함은 인정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기레기’라는 한 단어에 모두 함축돼있다.
4차 산업혁명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아직까지 1990년대에 살고 있는 듯한 대다수의 언론사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언론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누려오던 권위와 기득권을 대부분 잃은 현 시점에서 과연 언론이란 무엇일까. 대다수의 언론사들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