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으로써 언론사
적응의 동물, 인간을 지칭하는 말이다. 실제로 인간의 뇌는 환경에 적응하는데 최적화 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이 적응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환경이다. 어느 심리학 논문에 따르면 인간이 하는 행동에 관여하는 의지의 비율은 5%에 지나지 않고, 95%는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런 과학적 사실을 꿰뚫고 세 번이나 이사를 간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논문은 인간은 원래 ‘의지박약’인 존재니 ‘나에게 적절한 환경’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기자가 되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언론산업의 환경과 메커니즘 안에서 돈을 벌기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메커니즘에 잘 적응할수록 기자는 기레기로 변해간다. 즉, 기레기를 양산하는 것은 언론산업의 ‘환경’이라고 나는 변명하고 싶다.
자생력을 잃은 오늘날 언론이 처한 현실에서는 많은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자로 살아가기 쉽지 않다. 언론사들이 '직장'으로 열악하기 때문이다. 중소 신문사는 그냥 열악하고, 메이저는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열악한 요인으로는 급여뿐만 아니라 사내 문화, 워라밸, 발전가능성 등도 포함된다.
당신이 기자를 꿈꾼다면 포기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돈이다. 기자직의 연봉은 낮다. 인터넷 신문사의 연봉은 처참한 수준이고, 조중동 같은 메이저 언론사의 연봉도 입사난이도와 업무강도를 감안한다면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다.
인터넷 신문사의 보급은 기자직의 문턱을 낮췄지만, 기자직 종사자의 처우에도 악영향을 준다. 과거에는 언론사를 차리려면 신문을 인쇄해서 배포할 수 있는 시설과 조직을 갖추거나(신문사) 혹은 방송 내용을 전파에 실어서 수신할 수 있게 하는 장비와 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행정 기관에 간단한 신고를 거치면 최소 세 명만으로도 인터넷 신문을 창간해 운영할 수 있게 됐고, 무수히 많은 인터넷 신문사가 생겨났다.
물론 모든 언론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자유나 정의, 공정 등 온갖 좋아 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단어는 죄다 넣어놓는다. 또한 한겨레의 창간역사처럼 자유언론의 실천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인터넷 신문사를 창간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언론의 사업모델을 악용해 주머니를 채우려는 목적으로 인터넷신문을 만든 사람도 상당수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만든 언론사(대다수의 인터넷신문)는 기자는 착취하고 윗선만 배부른 구조를 만든다. 그래서 인터넷신문사의 기자직 종사자의 처우는 대개 처참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작년 발표한 ‘2022 신문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을 기준으로 전체 신문사 수는 총 5,397개다. 참고로 나는 기자생활 전에 언론사를 5개정도 알았고, 기자생활을 한지 몇년이 지난 지금도 100개도 모른다. 그리고 진심으로 100개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언론계 전체 종사자 수는 4만 3,328명, 기자직 종사자는 2만 8,686명이다. 인터넷신문 종사자는 2만 1,040명(48.6%)이고, 인터넷신문 기자직 수는 1만 4,225명 (49.6%)이다. 인터넷신문 종사자가 전체의 반정도 차지하는 셈이다.
하지만 인터넷신문이 차지하는 매출 비율은 상당히 낮다. 또 종이신문을 발행 하는 신문사에서 발생하는 매출액(3조 3,844억원)이 전 체 매출액의 83.4%를 차지하고 있기에, 남은 매출을 나눠먹는 인터넷 신문사의 환경이 얼마나 열악할지 유추해 볼 수 있다.
또 2021년 전국 종합일간지인 12개 신문사(경향신문, 국민일보, 내일신문,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아시아투데이)의 매출이 1조 3349억원, 9개 경제일간지(매일경제, 머니투데이, 서울경제, 아시아경제, 이대한경제, 이데일리, 파이낸셜뉴스, 한국경제, 헤럴드)의 매출이 7764억원을 기록했다. 신문사 총 매출이 4조 573억원인걸 감안한다면 0.4%의 신문사가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면, 언론의 양극화가 얼마나 극심한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인터넷 신문사에 종사하는 기자의 연봉이 바닥인건 너무나 자연스러워보인다. 기자직의 초임 월급을 조사해본 결과 기자 직 초임은 100~150만원 미만이 38.1%로 가장 많았고, 150~200만 원 미만은 26.8%, 100만 원 미만 19.9%, 200~250만원 미만 12.3%이었다. 종이신문은 150~200만원 미만이 38.4%로 가장 많았고, 인터넷신 문은 100~150만원 미만이 41.6%로 가장 많았다.
당신이 인터넷 신문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경우 수직적인 사내문화와 배울 것 많지 않은 선배, 최저임금도 안되는 임금을 견뎌야 할 확률이 상당히 높단 말이다. 나도 5군데 정도 면접을 봤다. 대부분 작은 인터넷신문사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대기업들이 초봉 1억시대를 연 2021년, 작은 신문사의 초봉은 대부분 2000만원 중반대였다. 당연히 포괄임금제였고, 종종 이 연봉에 퇴직금이 포함됐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놀라운 곳도 있었다.
웃픈건, 기자에게는 취저임금도 주지 않고 부려먹는 언론사가 대기업 직원의 임금을 불합리하다고 비판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임금문제는 인터넷 신문사의 처우가 악순환의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종합 재앙 셋트같은 소규모 인터넷신문 특성상 한 곳에서 기자로 1년 이상 근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니 버티는게 이상한 일이다. 또 낮은 연봉과 높은 업무강도, 거지같은 사내문화의 콜라보를 견뎌도 돌아오는 건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연봉인상이다. 사람이 들어오더라도 선배는 어차피 나갈거란 생각에 후배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후배는 선배가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으니 나가는 악순환에 만성적으로 인력 부족에 시달린다.
결국 취재는 나가야 하는데 사람이 없다면 들어온 지 일주일 된 기자라도 혼자 취재를 한다. 실제로 내가 그랬다. 이런 구조는 경험과 지식이 쌓일 시간을 주지 않는 만큼, 기자와 기사 수준 발전이 어려워진다. 여기에 만성 인력난에 시달리다보니 자질이 결여되거나 미달인 기자들을 쉽게 내칠 수 없게 만든다. 가뜩이나 사람도 모자라고 언제 신입 기자가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자르면 당장 회사가 돌아가는데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메이저 언론도 상황이 녹록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중앙일보 노조가 공개한 ‘2020년 주요신문사 신입 기자 초봉 추산치’에 따르면 기본급과 고정 지급 수당을 합해 4000만원이 넘는 곳은 10곳, 가장 많이 받는 곳이 5030만원이었다. 4000만원이 넘는 초봉이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내로라하는 대기업들과 견줄만한 메이저 언론사의 입사 난이도를 감안하면 많다고도 할 수 없다. 실제로 필드에 있다보면 경력쌓아 대기업 이직을 목표로 기자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상당히 자주 나온다.
특히 언론계는 학벌을 상당히 중요시 한다. 조선일보는 지금도 서울대아니면 못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문제는 이런 학벌을 가진 인재들은 다른 기업에서도 당연히 탐내는 인재라는 점이다. 또한 지식노동이 주된 업계치고 사내문화도 상당히 보수적인 편에 속한다.
문과생들이 대표적으로 취직하는 금융권, 그 중 4대 시중은행(국민, 신한, 우리, 하나)의 경우 초봉은 6000만원 내외로 알려져있다. 메이저 IT기업이나 대기업의 경우 연봉과 더불어 워라밸, 좋은 사내문화도 함께 따라온다. 하물며 잘나가는 스타트업에도 언론사 만큼 주는 곳들이 있다. 어찌보면 메이저 언론사에 입사한 사람들은 여러모로 더 좋은 근무 환경을 '포기'하고 기자직을 선택하는 셈이다.
또한 대기업과 초봉이 비슷하더라도 기자들의 승진체계 특성상 일반적인 기업에 비해 연봉 인상률도 미비하다. 일반 기업들의 경우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과 같은 직급체계가 있어 승진과 함께 연봉이 큰폭으로 상승하는 경우가 있지만, 기자의 경우 대리나 과장 직급이 없다. 어느 정도 연차(10년쯤)가 쌓이면 차장이나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주지만, 이 직급을 반갑지 않아하는 기자도 많다. 신문사에서 관리자직급을 달면 일정부분 ‘광고 영업’이라는 책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에 언론산업이 사양산업이란 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전체 매출액은 8.5% 늘어났다. 하지만 2012년부터 2021년 사이 소비자물가지수는 약 10.7%p증가하였음을 고려하면, 신문산업 매출액은 실질적으로 감소한 셈이다.
이같은 총체적 난국에 사람이 전부인 언론계에 우수한 인재들이 떠나는 일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