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에 든 꽃
구체적인 방법은 모르지만, 인터넷 신문사들 사이에서는 어떤 기사가 올라갔다 내려갔는지 공유된다. 이처럼 기사가 내려가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전체적인 내용의 오보로 수정조차 불가능한 기사거나, 기업이 부탁해 기사가 내려가는 경우.
후자의 경우는 해당 기업이 불편해하는 이슈인 경우가 대다수다. 워낙 복잡하게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예시를 꼽기 어렵지만, 오너의 이름이 들어간 안 좋은 기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기업 입장에서 오너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는건 이래저래 부담스러운 일이다. 관심이 집중되고, 일거수일투족이 이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SNS를 하는 건 홍보팀 입장에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약이 심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상황을 묘사하자면 대충 이런 식이다. 참고로 상황을 돕기 위한 설명일 뿐, 모 그룹과 전혀 히스토리가 있었던 건 아님을 밝힌다.
기자 : "안녕하세요 협박일보 한푼만 기자입니다. 호구그룹 언론담당 광고비 부장님 맞으시죠? 통화 가능하실까요?"
홍보 : "네 한 기자님 안녕하세요. 통화 가능합니다. 무슨일이실까요?"
기자 : "요즘 회장님이 SNS를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고객들과 소통하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허허"
홍보 :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 회장님이 소통에 적극적이시죠 허허"
기자 : "그런데 어제 올리신 게시물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이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혹시 이에 대해 사측 입장 없으실까요?(= 너희 회장 SNS에 올린 게시글 논란 만들 거다. 어떻게 할래?)"
홍보 : "에이 논란이라뇨 기자님. 저희 회장님이 그러실 분이 아닌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꼬투리 잡아야겠니?)"
기자 : "그 판단은 대중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내부에 발제까지 마친 상황이라서요.(= 잡을 건데 어쩔래?)"
홍보: "기자님 그럼 혹시 부장님 연락처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잘 설명드리겠습니다.(= 또 시작이구만.. 광고 줄게 논란 만들지 말아라)"
기자 : "그럼 내부에 보고 후 연락처 전달 드리겠습니다.(= 진작 이렇게 나올 것이지. 부장한테 광고 준다고 이야기할게)"
홍보팀과의 치열한 눈치싸움(혹은 언론사의 영업활동) 후, 결과에 따라 기사가 나가기도 하고 광고협찬이 진행되기도 하며 단순 압박으로 끝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언론사가 이렇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적 가치를 위한 비판이 언론의 전유물이었고, 이런 인식이 언론사의 협박비즈니스를 형성시켰다.
실제로 기사를 검색하다보면 언론의 특징을 악용해서 억지로 프레임을 만들고, 악질적인 기사를 계속해서 남발하는 인터넷 매체도 왕왕 눈에 보인다. 어린아이들이 장난감을 사달라고 길바닥에 누워서 땡깡부리듯, 언론사도 기업에 돈 달라고 땡깡 부리는 거다. 기업들은 이런 언론의 땡깡을 모를 리 없음에도, 지금까지는 보통 장난감을 사주며 달래기를 선택해왔다.
기업이 지금까지도 언론에 저자세를 취해온 이유는 간단하다. 가진 게 많으면 잃을 게 많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몇백만원이면 해결될 일을 굳이 이미지를 깍아 먹으며 싸우지 않는다. 특히 대기업 입장에서 소송 등을 통해 작은 언론사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몇백만원 정도 쥐여주고 길들이는 일이 기업 입장에서는 훨씬 쉽고 싸게 먹힌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작은 인터넷언론사의 경우 1~200만원이면 기사 막는건 일도 아니다.
대기업 기사가 많이 나오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대기업에 이슈가 있을 때, 언론사들은 일단 자신들이 대기업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기사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기사가 수십 개가 나오는데 누가 그 기사를 일일이 읽냐고? 해당 기업 홍보팀이 보고, 기업 고위 관계자들이 본다.
나 또한 모 대기업 사장의 비판 기사를 쓰고 5분도 지나지 않아 윗선으로부터 기사를 삭제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 말이야 "노력한 건 아쉽지만, 회사를 위해 어쩔 수 없다"라고 하지만, 그 내막에는 기사를 내릴 '명분'으로 광고협찬이 진행됐다.
몇몇 언론사들은 기사(라고 쓰고 협박이라고 읽는다)를 통해 성사된 광고협찬을 기자의 실적평가에 반영하거나,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 이런 언론 산업의 현실은 내가 기자를 시작하며 가슴 한켠에 품은 '사회적 정의'라는 단어를 '환멸'이라고 바꾸기 충분했다.
쓰레기통에 꽃이 들어있다면 그건 꽃으로 보일까 쓰레기일까 꽃일까. 쓰레기로 보인다면, 쓰레기통에 들어있기 때문은 아닐까.
종종 기사에 '기업에게 광고먹은 기사'라는 류의 댓글이 달린다. 결코 우호적인 내용이 아님에도 말이다. 하지만 막연히 이런 댓글을 다는 심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건 아니다. 대중들은 이미 언론사의 실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더 이상 공적 가치나 정의만을 위해 존재 하지 않음을. 하나의 사업체고, 얼마든지 돈으로 통제가 가능한 곳임을. 밥은 펜보다 강함을.
이런 배경지식으로 사람들은 기사의 의도를 의심하기도 하고, 특정 언론사에서 다룬 주제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쓰고 '기레기'라고 욕하기도 한다. 정말 좋은 의도를 가지고 쓴 기사도 특정 언론사라는 프레임으로 인해 왜곡되는 것이다.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쓰레기통 담겨있다면 쓰레기로 보이는 것처럼, 이런 환경 속에 담겨 있기에 기자는 결국 기레기로 보이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