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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em Mar 31. 2023

[나는기레기다] 젊은기자를 위한 언론사는 없다

남겨진 자들

세대의 양극화


한국의 갈등은 극에 달해있다. 이념갈등, 젠더갈등, 계층갈등 등 세상은 둘로 갈라져 서로를 헐뜯기 바쁘다. 그리고 이 갈등양상에서 과거부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세대갈등이다. 압축성장과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달은 시간의 밀도를 대폭 증가시켰고, 이는 세대의 다름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즉, 부모의 어제가 나의 오늘이 아니게 된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나이 차이가 10년만 나도 성장환경이 엄청나게 다르다. 그렇기에 보수적인 집단일수록 젊은 세대와 생각의 다름이 크고, 이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며, 젊은 세대는 떠나간다.


언론계도 젊은이들이 탈출하는 곳 중 하나다. 언론계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세대는 늙었고, 문화 자체도 상당히 보수적이다. 얼핏 보면 깨어있는 정신으로 사회를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구시대적인 문화를 가진 곳이 언론계다. 언론계의 비즈니스 구조를 비롯해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국 특유의 학연, 지연, 혈연 문화가 가장 만연해 있는 곳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합리, 공정, 투명성 등으로 표상되는 젊은 세대의 정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업무 기량이 절정이라고 불리는 5년~10년 차에 언론계를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절은 바뀔 생각이 없고, 내가 바꿀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렇게 세대의 양극화라는 악순환에 빠진다.  


'꼰데'스크


언론사의 수직적인 문화를 탈피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중 하나는 교육시스템이다. 메이저 언론사도 아직까지 직속 선배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는 도제식 교육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기자 업무 특성의 한계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교육을 체계화할 생각을 못하는 듯하다.


또 언론사에는 데스크라는 시스템이 있다. 기사가 발행되는 데 있어 게이트키핑 역할을 하는 일종의 컨펌시스템이다. 기사가 회사의 논조와 맞는지, 논란이 될 거리는 없는지 등을 검토하기 위함이다. 특히 비판기사는 경우에 따라 점하나, 단어나 표현 하나 때문에 소송에 휘말리고 패소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데스크는 일반적으로 고연차의 베테랑 기자가 담당한다.   


순기능만 할 것 같은 데스크는 나쁘게 작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데스크라는 명분을 앞세워 기사를 이래저래 손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기사의 제목이 바뀌거나, 표현이나 내용이 바뀌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기자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은 결코 편하지 않다. 특히 논조가 바뀌어 버리면 그 기사는 내가 쓴 목적에 부합하지 않게 변하기에 나가지 않느니만 못하다. 또한 내 이름으로 나가는 기사가 제목이나 표현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영 찝찝해진다.

  

물론 좋은 선배기자도 있다. 하지만 좋은 선배라도 나와 생각이 100% 일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언론이라는 집단은 기본적으로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편이다. 그렇기에 데스크를 거쳐 내가 쓴 기사가 마음에 안 들어도, 데스크를 본 대로 기사가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데스크가 전문성이 떨어질 경우 잘 쓰인 기사를 오보로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고부갈등(?)은 리서치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2019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제14회 언론인 인식조사’에 따르면 젊은 기자들은 편집/보도국 간부가 언론 자유를 제한한다는 응답의 비율이 높았던 반면, 50대 이상 세대는 그 비율이 확연히 낮았다. 즉 40대 중 후반 이상의 기자들은 자신이 후배들에게 간섭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평기자의 대부분은 선배들이 자신의 업무 자율성을 상당히 제한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늙어가는 언론, 떠나가는 젊은 기자들     


더 큰 문제는 젊은 인재들이 언론계를 떠난다는 것이다. 언론의 연령은 점점 모래시계형 연령구조로 변해가고 있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기자들의 평균 연령은 40.1세로, 2017년 보다 1.5세 상승했다. 지역일간지의 경우 44.7세로 가장 높았고, 인터넷언론사의 기자들은 36.4세로 가장 낮았다.


문제는 고령화 비율이다. 50대 이상의 기자의 비율은 20.7%로 2017년에 비해 5.4% 늘어난 반면, 35세 미만 기자의 비율은 39.3%에서 35.8%로 줄어들었다. 고령화는 경력을 기준으로 본 인력 구조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중간 허리에 해당하는 10년 이상 20년 미만 경력 기자의 비율은 2005년 43.8%에서 2019년 32.7%로 꾸준히 꾸준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최근 언론계에서는 메이저 언론에서 기업으로 기자들이 빠져나가면, 메이저 언론사는 마이너 언론사의 인재를 채용하는 연쇄이동이 잦은 빈도로 일어난다. 즉, 언론에는 전반적으로 ‘떠나지 못해 남겨진 자들’이 상당수라는 것이다. 과거 대기업 못지않은 급여와 복지, 명예를 가진 언론계는 어느새 좋은 인재는 빠져나가고 기렉시트 하지 못한 자들만 남은 업계가 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남겨진 자들


언론에 남아 있는 고연차들은 크게 세부류로 나뉠 수 있다. 기자라는 직업이 정말 좋아서 남아있는 사람. 과거 언론의 영광의 시절을 누리고 언론사에서 한 자리 잡고 편하게 회사생활 하는 사람. 그리고 떠나지 못해 남겨진 사람. 그리고 물을 흐리는데 미꾸라지는 한두 마리면 충분한 법이다.


일을 하다 보면 40~50대 언론사 부장들을 만날 경우가 있는데, 그들을 만나면 종종 우리나라가 참 먹고살기 좋다는 생각이 절로든다. 아스팔트에 고인 빗물처럼 얕은 지식, 대화와 소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커뮤니케이션스킬, 한글을 가지고 쓴 글임에도 해독이 필요할 정도의 필력, 논리는 초등학생만도 못한 수준으로 '언론사 부장'이라고 목에 빳빳하게 힘을 주고 다니는 걸 보면 말이다. 기자라는 직업은 구조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다 보니 오랜 시간 기자를 하다 보면 척추가 뻣뻣해지는 병에 걸리는 경우도 더러 있는 듯하다.


특히 이들이 기업 관계자 등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갑질을 하고, 접대받은 것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라떼'를 보고 있으면 수치심이란 걸 모르는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람들은 회사에서 유독 목소리가 크다.


반면 ‘언론인 출신’ 기업 관계자들, 즉 기자에서 기업으로 이직한 홍보팀 직원을 만나보면 스마트하고 배울점도 많다는 인상을 준다. 나만의 생각이 아닌, 젊은 기자들이 모이면 형성되는 공감대다. 후배 기자들은 ‘떠나지 못해 남겨진’ 언론사 선배와 ‘능력을 인정받아 기업으로 떠난’ 언론사 출신 기업 사람들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낀다. 기업으로 스카우트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동료들 사이에서도 '좋은 선배'와 '안 좋은 선배'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를 보면 직무의 경력이나 적합성을 떠나 ‘좋은 선배’의 보편적인 기준은 분명히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좋은 선배'는 언론사에서는 쉽사리 찾아보기 힘든 유니콘 같은 존재들이다.


이제 언론은 '떠나지 못해 남겨진 자들'의 리그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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