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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em Apr 04. 2023

[나는기레기다] 우리의 소원은 기렉시트

만능캐

만능캐


게임에서 만능캐라는 말이 있다. 모든 능력치가 뛰어난 사기적인 캐릭터를 일컫는 말이다. 만능캐는 모든 능력치가 뛰어난 만큼 어디서나 쓸 수 있는 팔방미인형 캐릭터다. 그리고 좋은 기자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팔방미인형 만능캐와 닮았다.


만능캐형 기자는 업계에 인적네트워크도 구축돼 있고 관련 지식도 빠삭하며, 학습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뛰어나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텍스트 정리 능력도 뛰어나다. 페이퍼웍 등 기술적인 부분은 시간을 가지고 가르치면 그만이니 큰 문제가 안되고, 이런 인재는 어떤 업무를 맡겨도 평타는 친다. 한마디로 검증된 인재라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탐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젊고 유능한 만능캐들의 탈기자 행렬은 최근 언론계의 화두 중 하나다.


우리의 소원은 기렉시트

     

메이저일보 김똘똘 기자 A모 그룹 홍보팀으로 이직

메이저경제 이똑똑 기자 B모 증권사 홍보팀으로 이직

메이저방송 에이스 기자 C모 IT회사 콘텐츠 제작팀으로 이직  

   

기자 단톡방에서는 주기적으로 어떤 기자가 어느 회사로 이직했는지 명단이 떠돈다. 그리고 이 명단에는 업계에서 평판이 좋기로 소문난, 기자들 사이에서 나름 이름이 알려진 기자들이 대다수다. 이 같은 메시지를 받아보고 있으면 인재 유출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실제로 최근 기자사회에 최고의 화두 중 하나는 바로 기렉시트다. 기렉시트는 브렉시트처럼 기레기와 EXIT의 합성어로 기자직을 탈피해 기업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는, 다수 젊은 기자들의 목표다.

     

젊은 기자들이 기렉시트를 꿈꾸는 이유는 간단하다. 언론사가 '직장'으로 별로기 때문이다. 언론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메이저 언론과 그 외 중소 인터넷 언론사. 최근에는 다양한 뉴미디어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있지만, 이런 회사들은 신입 보다는 경력직을 뽑고,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다.


언론사 하면 누구나 떠올릴법한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한겨레 등 신문사를 비롯해 KBS, SBS, JTBC와 같은 방송 매체까지. 이런 회사들을 메이저 매체라고 한다. 메이저 매체의 경우 입사시 난이도와 처우는 모두 대기업 수준에 준한다. 또한 통상적으로 방송사의 기업문화나 처우가 종이신문보다 좋다고 알려져있다. 기자치고 워라벨도 괜찮은 편이고, 보수또한 나름 괜찮은 대기업 수준이다. 사내문화도 언론사 치고 준수한 편. 그래서 방송사 기자로 입사하면 만족하며 장기간 재직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신문사 기자들이다. 언론사의 승진체계는 일반 기업과 다르다. 대리 과장 등이 없고, 10년 이상 근무하면 차장 혹은 차장대우의 직급이 주어진다. 이 기간동안 연봉 인상률은 통상적으로 한자리수. 메이저매체의 경우 초봉은 대기업에 준하는 수준으로 시작하지만, 승진등이 없는 업계 특성상 임금인상률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시기가 찾아온다.


반면 업무능력이 가장 급격하게 성장하는 시기가 입사 직후 만 2년정도 지난 3년차부터다. 통상적으로 회사에서 2~3년 정도는 교육기간으로 본다. 기업에서 경력직으로 입사시 경력 만 2년, 즉 3년차부터 인정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3년차는 이직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대이직 시대가 열리며, 3년차 이상부터는 헤드헌터들로부터 본격적으로 오퍼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장 이직이  많이 일어나는 시기는 5~7년차인 대리~과장시기. 이 때가 직장인이 가장 빠릿빠릿하면서도 좋은 퍼포먼스를 내는 시기다.


이렇게 업무능력이 수직상승하는 시기에 기자의 연봉인상률은 물가와 겨루고 있으니 누가 남아있고 싶겠는가? 더불어 언론사는 기본적으로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내가 수평우월주의자는 아니지만, 창의적인 능력을 요하는 콘텐츠생산이 주된 비즈니스인 업계가 수직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건 여러모로 부정적인 부분이 더 많아보인다. 


물론 언론사가 기자들 사이에서 '공장'이라고 불리며 정형화된 기사를 찍어내는 경우도 많지만, 이런 기사는 단독 등 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개인의 성장도 찾기 어렵고, 돈도 적게 받다 보니 능력있는 젊은 기자들은 기자직을 탈피해 기업 홍보팀으로 이직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실제로 내가 기자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려고 알아보니 경력을 살릴만한 쪽은 기업 홍보팀이 가장 좋아보였다. 그래서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기렉시트를 위해 기자들이 더욱 기업 비판 기사를 쓰지 못하고, 기업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나중에 내 상사가 될지도 모르는(혹은 내 상사가 됐으면 하는) 사람과 얼굴 붉히면 영 껄끄럽지 않겠는가. 


젊은 인재들의 기렉시트는 언론이 '언론으로써 기능'이 약해지고 있음을, 더 나아가 자본과 권력의 감시자 역할을 하는 경비견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애완견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편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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