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언론인을 꿈꾼다면 최우선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이다. 단순히 ‘기자’라는 타이틀이 갖고 싶은 건지, 아니면 사회에 일조하며 더 나은 모습의 내일을 만들어 가고 싶은 건지. 단순히 직장인이자 명예직을 원하는 건지, 아니면 어떠한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 건지.
만약 당신이 전자라면, 메이저 언론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하기를 권장한다. 기자란 직업은 겉보기엔 꽤나 멋진 직업이다. 기레기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형 언론사의 기자들은 ‘지성인’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메이저 언론사가 아니라면 기자의 의미는 더 이상 ‘전문성을 띤 고소득 명예직’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작은 언론사 기자는 처우나 사내문화만 놓고 본다면 알바를 하는 게 나을 정도인 회사가 수두룩하다. 물론 작은 언론사에서 시작해서 메이저 언론사로 이직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국내 언론사의 문화는 전반적으로 모두 보수적이고 일종의 순혈우월주의 같은 사내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굴러들어 온 돌로 커리어에서 성공하는 건 쉽지 않다.
후자, 즉 사회에 어떠한 형태로 일조하고 싶다면 굳이 언론사 취업을 권장하진 않는다. 특히 작은 언론사에서 당신이 꿈꿔왔던 ‘진짜 기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환멸을 느끼며 언론사를 그만두는 수순을 밟게 될 확률이 높다. 대형언론사라도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 젊은 기자들이 대형 언론에서 조차 줄 이탈을 하는 걸 보면, 차라리 블로거나 유튜버를 하는 것이 당신이 꿈꾸는 언론인의 정의에 더 부합한 행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대형언론사에 취직할 경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겠으나, 작은 언론사에선 이조차 기대하기 힘들다. 취재의 질 또한 실제로 블로거와 큰 차이가 없다. 자료 받아쓰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기자들은 자신이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가득하다. 이런 현실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외면하는 것일까.
"기자라는 직업은 XX님의 자아실현 수단인 건가요? 그렇다면 꼭 기자가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상관이 없겠네요?"
다른 언론사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들은 말이다. 나름 업계 분야에서 탄탄한 인지도를 가진 회사였지만, 그럼에도 언론인이 아니라면 대다수가 모를만한 그런 회사였다. 이 질문을 하며 찡그린 면접관의 표정에는 우려와 불쾌함이 섞여 있는 듯했다.
여기서 취업을 위한 답변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내 가치관과 맞지 않는 상사와 함께 일하면서 회사를 다니는 건 지속 가능하지 않고, 회사 생활이 상당히 괴로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내 삶의 방식은 명사로 단정 짓고 싶지 않았다. 나는 기획자, 글 쓰는 사람, 커뮤니케이터, 이야기를 발굴하는 사람 등으로 내 삶의 방향을 정했고 이를 통해 실현하고 싶은 가치들이 있었을 뿐이다. 직업의 이름은 내게 중요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닌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 면접관이 그랬고, 그 회사가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기자라는 직업의 본질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위 질문을 한 면접관은 기자라는 '직업'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는 듯했다.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나, 이 자부심을 타인에게까지 강요하는 건 일종의 가치관 강요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고, 이런 사람과의 동행은 쉽지 않을 테니까. 더불어, 내 언론관과도 맞지 않고 말이다.
나는 글 써서 돈 벌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기자생활을 시작했고, 그렇기에 언론 이해도는 전무했다. 이런 내게 언론의 의미란 무엇이지 깨닫게 해 준 건 손석희가 쓴 장면들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언론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수많은 묘사를 통해 이야기한다.
언론의 옳고 그름을 단정 짓기는 어렵다. 언론의 존재 이유는 공정, 정의, 인권 등 사회가치 수호에 있고, 이 가치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개인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쉬이 정의될 수 없다. 수많은 언론사가 같은 사건을 두고 다른 해석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즉, 관점의 차이다. 하지만 때로는 모든 언론이 입을 모아 비판을 하는 사건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박근혜 시절 세월호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이 책에서는 왜 jtbc가 시청률이 떨어지고 비판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세월호 사건을 중계했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이 설명은 내게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가이드라인과 틀을 만들어줬다.
또한 손석희도 변해가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언론이 어떻게 해야 종속 가능한지를 고민한다. 이 고민의 답은 클래식이다. 즉 언론 본연의 모습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언론 본연에 모습에 충실하다는 것은 단순히 뉴스를 많이 내는 것이 아닌, 언론사가 기사를 쓸 때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는 행위가 이뤄줘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고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대다수가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직장인으로서 시키는 일을 하기도, 먹고살기도 바쁜 현실이다. 또한 고민을 하더라도 아무나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없는 게 언론사다. 수직적인 군대식 분위기, 사내문화에서 조차 평등, 공정, 정의 등의 가치가 논의되지 않는데, 자신들의 현실을 외면한 채 사회에서 이런 가치를 논하는 것부터 아이러니 아닐까. 삶은 뉴스보다 가까이 있는데 말이다. 입으로만 떠드는 공정과 평등, 정의는 공허할 따름이다. 사회의 가치를 지키면 무엇하겠는가, 정작 내 삶은 변하는 게 없는데. 의미 있는 기사 한 편 보다, 공장처럼 기사를 찍어내길 바라는 게 현실인데.
기사의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본받고 싶은 사람은 한국일보의 최문선 기자였다. 최 기자의 기사는 언제나 나의 경솔함을 반성하게 만들었고, 따듯한 마음에서 나온 차가운 비판이 무엇인지 가르쳐줬다. 이렇게 훌륭한 두 선배를 보고 배우려 노력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제대로 된 기자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 할수록 오히려 언론과 멀어지는 것 같아서. 인정받을수록 스스로를 기자라고 이야기하기 부끄러워지는 현실에 환멸을 느껴서. 생계를 위해 선택한 직업이었지만, 그럼에도 이 직업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서. 그래서 나는 언론계를 떠나기로 했다.
언론사에 3년을 근무하며 언론과 기자는 회사나 직업 이라기 보단 세상을 향한 태도나 삶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더 나은 세상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공부하며, 커뮤니케이션하고 옳은 것들을 전달하려 노력하는 삶. 그리고 나는 현 언론 환경 속에서는 이런 삶을 살 수 없는 사람임을 잘 알고 있기에.
언론계를 떠나기로 했지만 기레기 없는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에, 언론다운 언론이 제대로 작동하는 세상에 살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쓴다. 이 글이 저열한 조롱이 아닌 차가운 비판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