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지금우리학교는·워킹데드...다음 시즌을 가다리며
미국 드라마 ‘워킹데드’ 시즌5에서 릭은 자신을 ‘걸어 다니는 시체(walking dead)’라고 정의한다. 좀비가 정복한 세계에서 오직 생존을 위해 수많은 싸움을 하면서 자아(ego)가 사라졌다는 의미다. 통제되고 국한된 세계에선 기존의 사회적 규범은 쓸모없는 것이 된다.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참가자들은 좀비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철저하게 통제된 세계로 진입한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는 오징어게임은 게임보다 현실이 훨씬 더 가혹하다고 전재한다. 한 번 풀려났던 참가자들은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죽더라도 게임을 해서 이기면 거액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는 극단적 선택과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영화는 개인의 삶을 극단으로 내모는 경향이 있다. 현실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파괴적 본성은 극대화되고 사회적 부조리는 더욱 선명해진다.
최근 흥행 돌풍을 일으킨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어떠한가. 한국영화에서 흔히 학교는 자아를 허락하지 않는 억압된 장소다.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로 많이 쓰인다.
지금 우리 학교는의 인물들은 서로 협력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초인적인 좀비가 강력한 맞수로 등장하고 인물들을 압박한다. 공포에 내몰린 아이들은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탈출에 성공한다. 무엇보다도 희생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드라마에서 대체로 주어진 환경에 맞춰 현실에 충실한 이들은 기존의 선한 가치들을 무시하며 남을 짓밟는 일을 서슴없이 단행한다. 선함을 주장하는 이는 생존할 수 없다. 일종의 선악의 역전 현상이다. 선함을 강조하는 사람은 ‘우월감’이라는 말로 멸시되고 조롱당한다. 생존을 위해 선한 가치들 짓밟는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이 맞는 것이고 착하게 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헷갈린다. 현실에서 선악의 역전 현상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댓글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여권 신장 운동을 하는 사람(페미), 파업하는 민주노총(철밥통), 지하철을 가로막은 장애인들(징징충·때쓰는 사람),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대깨문) 등등 모두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된다.
실제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즐거움 마음을 갖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보면, 대부분이 그냥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 업종을 바꿔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거나 회사가 변화하도록 노력하는 것 없이 어쩔 수 없이 견디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세상을 오래 살면 살수록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취미에 집중한다. 등산, 싸이클링, 요가, 헬스, 필라테스, 테니스 등등 일에서 얻지 못하는 행복을 찾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이들은 인정받기를 원한다. SNS에 취미 활동을 올리고 ‘좋아요’를 많이 받으면 기분이 훨씬 좋다. 워라벨(일과 생활의 균형)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겨난 것이다.
워라벨과 소확행은 행복을 얻는 다양한 방법들 중 하나다. 동시에 일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사람들은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지만 소확행이나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오징어게임 참가자들은 소확행조차도 없는 극한에 몰린 사람들이다. 만약 시즌2가 나온다면 선한 가치를 지키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기훈(이정재)은 계속되는 오징어게임을 중단시킬 수 있을까. 지금 우리 학교는 에서 초능력이 생겨버린 남라는 강압적으로 통제만 하려는 세상과 어떻게 맞서 싸울 것인가.
워킹데드에서 릭은 죽어있는 자신을 다시 소생시킬 수 있을까.(필자는 현재 시즌6을 시청하고 있음). 릭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료들도 그에게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따른다. 좀비도 좀비이지만 사람끼리의 대립이 핵심 플롯이라는 점은 10 시즌까지 이끌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오징어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 은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나머지는 시청자(관객)의 몫이라는 말보다는 통쾌한 방법을 제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극장 영화가 갖지 못하는 TV시리즈의 장점을 잘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