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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nda Ko Feb 18. 2021

어떤 집을 찾으시나요?

제주 종달리에서의 한 달 살기

제주로 내려오기 전,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을 때 집을 급하게 구했다. 갑작스러운 제주행이었기에 맘에 드는 집을 찾지는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동네에 살아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충분히 설렜다.


하지만 도착한 첫 날, 사진에서 봤던 숙소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생각보다 작은 집에 들어서니 방금 막 청소한 것처럼 냉장고 유리 선반들이 싱크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집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은 긴 전깃줄까지 함께 나와 곧 바닥에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거기다 거실에 블라인드가 있기는 한데 한 창문만 가려져서 밖에서는 집 안이 훤히 다 보일 정도였다. ‘아, 그냥 숙박비 하루만 제하고 다시 돌려달라 할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들. 휴지도 한 장 마련되지 않은 집을 보고 난 심각하게 육지로 다시 돌아갈까 생각했다.

가까스로 몇 년 전 아프리카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래, 샤워하다 전기가 나가서 젖은 머리 말리지도 못하고 벼룩이 득실거리던 침대 위에 서도 침낭 깔고 잘 잤는데 내가 여기서 못 지내겠어? 아프리카에 비하면 여긴 천국이지.’



바닥에 까는 매트리스가 마치 이부자리처럼 너무나 얇아서 첫날부터 허리가 베기는 경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그 또한 적응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면 늘 몸이 뻐근하지만 얇은 매트리스 덕분에 늦잠을 자려고 해도 더 잘 수없으니 어쩌면 다행 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부지런하게 만드니 말이다. 약간의 수면 부족 증상으로 끊었던 커피를 다시 마시기 시작한 것 말곤 괜찮다. 적응 아닌 적응 후 일주일 정도 시간이 남았을 때, 육지로 돌아가서 푹신한 매트리스에 적응 못하는 건 아닐까 쓸데없는 걱정을 해봤다.
집에서 밥을 해 먹거나 잠을 자는 것 외에는 매일 외출해야 하는 귀찮음을 감수할 정도로 무조건 밖에 나가서 작업을 했다. 물론 새로운 공간이나 카페를 가서 작업을 하는 걸 좋아해서 가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낮에도 이 집은 춥다는 점. 물론 햇빛이 잠시 머무를 땐 거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지미봉(오름)을 보며 잠시 멍 때리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지만, 그 외엔 바람이 많이 불거나 비가 많이 오는 날이 대다수라 난방을 틀어도 바닥이 잘 따듯해지지 않아서 정말 나가야 할 땐 집 바로 옆에 있는 북카페에 가서 차 한잔을 주문해 그림을 그리곤 했다. 덕분에 좋은 북카페를 알게 돼서 비 오는 날의 그림 그리는 시간도 즐기게 됐다.


하지만 이 집은 예상보다 꽤 난이도가 높았다.

바람이 많이 불던 날, 이 집의 맨 얼굴이 드러났다. 분명 집 안에 있는데 밖에 있을 때 들리는 바람소리 크기와 같고, 문이라는 문은 다 닫았는데도 어디선가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커튼이 창문을 열어놓은 것처럼 세차게 흔들렸다. 거기다 자는 방에 딸린 화장실 환기구를 통해 바깥바람이 들어와 덜거덕 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바람 부는 날은 잠을 다 잔 거나 마찬가지였다. ‘바람 부는 제주도가 이 정도일 줄이야.’ 소리 때문에 무서운 게 아니라 일찍 기절해서 자지 않으면 해가 뜬 후에야 잠이 든다는 사실이 더 두려웠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당시에도 바람이 불어 새벽 4시가 가까이 되도록 잠을 못 자고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분다는 종달리라는 얘길 듣기도 했다만 그동안 종달리를 여러 번 왔을 때를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바람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 적은 없었기에 난이도 최고의 웃풍 있는 집을 경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한 가지 또 재밌었던 건, 주인집 사장님 얼굴을 떠나기 일주일 정도 남겨두고 뵙게 되었다. 문자와 전화로만 연락이 가능했던 사장님. 첫날 도착했을 때 냉장고 작동 때문에 연락을 드렸더니 전화 조차 받지 않으셔서 적지 않게 당황한 적도 있다. 풍랑주의보가 있던 그 날, 천장 형광등이 점점 더 내 머리 위까지 내려와서 더 이상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어 늦은 저녁이었지만 문자를 드렸다. 다행히 감사하게도 직접 오셔서 천장 벽에 형광등을 다시 고정시켜주셨다. 그제야 나는 처음 사장님을 뵙게 됐다. 코로나라서 비대면을 원하신 건가? 이래저래 그동안 생각이 많았던 내게 여자 혼자 있어서 직접 만나러 오는 게 불편할까 봐 그러셨다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그동안의 의심이 조금은 풀렸다.

“내 딸도 서른 정도 됐는데 비슷한 또래일 것 같네요. 불편한 게 있으면 또 언제든 문자나 전화로 연락해요.”  

선량하게 웃는 사장님 뒤로  “네 그럴게요, 늦은 시간에 감사합니다.” 멋쩍게 웃었다.  


하루는 잠을 자는데,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방에 사람이 들어왔을 리는 없고,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내 방과 붙어있는 주인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방음에 취약하다는 걸 깨닫고는 그제야 나는 ‘벽에도 귀가 있다’라는 속담이 떠올라 민망했다. 종종 부모님과 통화를 하다가 이 집의 불편한 점에 대해 시시콜콜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있는데 설마 그 얘기가 다 들렸으려나?라는 생각에 얼굴이 갑자기 붉어졌다. 코 고는 소리도 들리는 데, 흥분된 상태의 내 큰 목소리가 안 들렸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일주일 남짓 남은 지금, 여전히 크게 들리는 바람소리와 웃풍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의 연속이지만 한편으론 이 집에서 생긴 나의 작은 루틴들이 곧 사라질까 봐 아쉬웠다. 혼자 있으니 화 낼일도 없고, 누구의 잔소리 없이도 스스로 부지런히 움직였던 날들. 온전히 나의 일상 패턴들을 잘 지키며 지낼 수 있다는 게 고마웠다. 물론 예상치 못하게 며칠은 숙면을 취하지 못해 귀차니즘 병이 돋기도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종달리라는 마을과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아서 행복했다. 푸른 하늘과 새소리로 아침을 맞이하고, 낮에는 조용한 카페를 찾아 작업을 하거나 동네 작은 상점들을 발견하는 소소한 기쁨을 맛보기도, 저녁에는 산책하며 보는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하는 것 까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하루였다.


다시 이 집에 머무르겠냐고 물으면, 사실 “아니요”라고 바로 대답할 정도로 내게 그리 편한 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감사한 건, 이 집에 머무는 동안 내가 애정 하는 종달리를 더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된 것. 그것만으로도 이 집은 내게 충분히 귀한 시간을 선물해 준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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