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삶에 대하여
무엇이 그들을 뾰족하게 만들었을까? 뾰족해진 이유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걸까?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의 보호를 원하는 걸까?
버티는 삶. 직장인이면 누구나 버티는 삶을 산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수많은 버틸 요소들 중 '인간관계'를 말하고 싶다. 오늘도 나는 가시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찔리지 않도록, 그리고 찔려버린 아픔을 버티면서 오늘도 그 가시를 반면교사로 삼는다.
'일' 보다 '사람'이 힘들다
일은 처리가 되면 끝이다. 그런데 서로 돕자고 있는 사람이 왜 일보다 힘들까? 힘든 사람의 유형 중 하나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유형의 사람이다. 직장에서는 이러한 유형들을 생각보다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에게 가시가 돋은 이유가 무엇일까? 소름 돋게 싫은 상황(사람)을 피하려다 보니 가시가 돋았나?
나도 일을 하다 보면 온 몸에 가시가 돋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일에 '원래 그 자리 담당이었다' 라며 책임 없는 말과 함께 툭 던져진 업무를 한 두번(세번네번다섯번) 처리하다 보면 '이걸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하는 분노가 차오른다. 나는 제대로 된 사수를 만나지 못해 인수인계를 개똥 같이 받은 말단사원이다.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에도 제대로 받지 못한 교육에 후폭풍은 간헐적으로 들이닥친다.
또 (어찌어찌)해냈다.
아무도 모르는 일, 가르쳐주지 않은 일, 갑자기 던 저진 뭣모르는 일에 여기저기 해결방법을 찾아다니며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일 처리는 곧 해결되나, 내 마음에 가시 하나가 돋아 있음이 느껴진다.
띵(?) 맞은 순간에도 가시가 돋았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본인의 좁디좁은 틀에 벗어나면 무안을 준다. 한 순간에 개념이 없냐는 둥 회사생활이 처음이냐는 둥의 말로 본인이 거슬린 부분을 지적한다.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지는 알겠지만 부정적인 어투와 적절하지 않은 단어 선택은 듣는 사람의 뒤통수를 때리고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갑자기 띵(?) 맞는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적반하장임을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걸까 의심이 된다.
이렇게 생긴 내 가시가 나는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나 또한 누군가를 찌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어떤 이유에서든 그렇게 싸가지 없는, 그리고 책임감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내 안에 돋은 가시를 갈고닦는 훈련을 한다. 사방에 가시 돋친 선인장들이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똑같이 이유 없는 상처를 내고 싶지 않다. 혹여나 나로 인해 상처가 났다면 정중히 사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를 지키는 방법은 상대를 깔고 그 위에 쌓아 올린 알량한 자존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선인장들의 공통점 : 인정 욕구
알고 보면 선인장들은 인정을 받길 원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일이 많은데, 한번 도와주니까 당연한 줄로 안단다. 물론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서운할 수 있지만, 그 가시들로 인해 인정의 말이 오고 가는 게 이렇게나 어려울 줄이야. 얼마나 더 쌩떼를 받아줘야 하나. 오히려 반대의 태도가 일을 즐겁게 하고 서로에게 좋은 동료로서 역할을 잘하게 될 텐데... 선인장들에게는 그 조차 자존심 찔리는 일이 되는 걸까? 언제까지 가시 싸움을 하고 싶은 걸까?
양심을 찔러 복수하기
누구나 인간관계가 쉽지 않고 나를 지키는 방법도 가지각색이겠지만, 최소한 선과 예의는 지킬 줄 아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앞으로 더 많이 돋아날 가시를 잘 컨트롤했으면 좋겠다. 바보 같은 방법일 수 있지만 나는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주는 방법으로 복수하고 싶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는 계속 싸움밖에 되지 않으니, 오히려 그의 양심을 찔러 불편한 자극을 주는 방법을 쓰고 싶다는 거다. 누구도 양심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믿는다. 이 방법도 아니라면 내 인생에서 당신을 아웃시키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