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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 Dec 15. 2023

[임신일기] 내 인생 첫 두줄

정말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추석연휴 이틀 전, 친정과 시댁에 방문할 준비를 하기 위해 퇴근 후 장을 보러 롯데마트에 갔다. 양가에 드릴 추석선물 세트를 간단히 구매하고 매장 내에 있는 샤브&초밥뷔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샤브와 초밥 덕후인 나는 평소 그 매장의 음식이 맛있다는 생각은 없었으나 비도 오고 저녁이라 피곤했기 때문에 저녁을 빨리 해결하고 쉬고 싶어 편하게 선택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초밥도 너무 맛있고, 샤브용 소고기도 왜 이렇게 맛있지? 소고기 향도 너무 구수하고, 좋아하는 매장은 아니었으나 오랜만에 위까지 차오르도록 과식을 했다. 가을이 다가오니 살이 찌려나보다 생각했다. 저녁을 먹고 우리 집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남편이 말했다.


“테스트해볼 거야?”

“무슨 테스트??“

임신테스트.


남편이 뜬금없이 임신테스트를 해보라고 권했다. 우리는 6월 시험이 끝난 후 아이를 가질 계획을 했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조만간 생기면 좋으려나 생각해왔다. 지금 생각하면 이건 계획도 아닌것 같다. 주변에 임신이 된 몇몇 지인들이 배란테스트를 권해주었고, 임신성공 후 남은 배란테스트기를 나에게 주기도 했다. 배란테스트기를 써서 한방에 임신이 되었다고 했다. 나 또한 그럴 수 있을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두 세달을 사용해 보았다. 그러나 나는 세 번의 실패가 있었다. 각 사람마다 때가 있다고 믿고 있었으나 막상 배란테스트기까지 사용하면서 임신시도(?)를 했는데도 실패하니 뭔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결혼 1년 반 후 6cm 근종수술+양쪽난소낭종수술+난소와 자궁의 유착으로 총체국난국이었던 내 몸상태로 인해 혹시나 임신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시간이 지날수록 임신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졌다.


9월은 임신에 신경 쓰기 싫었고, 그냥 조만간 난임병원이나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8월 중순부터 적당한 직장을 구할 수 있게 되어서 이번달은 그냥 일에 적응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싶었고, 또 몇 년 만에 월급을 받으니 하루하루가 기뻤다. 가까운 대학교에서 하는 가요제도 즐기고, 가죽공예를 배우고 싶어서 공방을 알아보러 가고, 축제시즌이라 볼거리도 많았다. 몸의 변화에 신경 쓰지 않아서 그런지 평소와 다를 게 없었고, 조금 피곤한 건 이제 새로운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평소와 다른 점을 굳이 찾아보자면 기초대사량이 포인트 소멸하듯 줄어드는 기분이 들었던 것, 평소 걸음이 빠른데 의지와 달리 빨리 걷는 게 힘이 든다고 느낀 것? 그냥 더 늦기 전에 다시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중이었다.


음.. 테스트기 아까워서 쓰기 싫은데..


남편이 임신테스트를 해보라고 권유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이번달은 진짜 아니라서 테스트기 쓰기 아까운데… 그냥 이번주에 그날이 오지 않으면 써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며 그동안 몇 번 한 줄 나오고 허무하게 버리던 경험이 쌓여서 이번에도 그냥 버리기 아까운 마음에 다음에 임신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은 그렇게 지나가고 다음날 아침이 돌아왔다.


아침 출근 전, 어제 남편의 말이 생각나 갑자기 테스트를 해볼까 다섯 번은 고민한 것 같다. 왜냐하면 내일부터 추석연휴이고 은근히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계시는 양가에 팩트를 가지고 가면 좋겠다고 나누었던 대화 때문이다. 얼마 전 배란테스트기를 대량 구입하면서 함께 구입한 몇 개의 임신테스트기를 두고 고민했다. 어플상 생리예정일은 1~3일 정도 남았기 때문에 임신이 맞다면 지금쯤 희미한 두줄을 볼 수 있는 시기는 되는 것 같았다. 그럼 이번에는 임신이 아닌 걸 확인하기 위해 테스트를 해보자며 임신테스트기는 다음 달에 또 사면 되지 뭐, 이러면서 소변검사를 했다. 내가 사용한 테스트기는 맘카페에서 두줄이 나오기가 어려워 이 테스트기에서 희미하게라도 두줄이 나오면 빼박 임신이라는 ‘단호박 임테기’, ‘야박한 임테기’라고 소문이 난 제품이다. 게다가 결과선이 빠르게 나온다는 슈퍼패스트 제품이었는데, 결과선이 나타날때까지 기다리는 마음이 답답하지 않아 확실히 빠르긴 빠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이 빠르고 단호한 임신테스트기를 대량 구입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양치를 하며 역시나 한 줄이네 하는 순간, 왼쪽에 희미하게 한 줄이 더 보이는 것 같았다!


에엥..? 내 눈이 잘못되어 헛것이 보이는 줄 알았다. 코로나 걸렸을 때 검사키트에서도 볼 수 없었던 두줄을, 오류 없고 임신이 절대 아니면 두줄은 절대 안 나온다는 ‘단호박 임테기’로 유명한 임테기에서, 두줄이 나온다는 게. 나한테만 오류가 있는 건가? 상상 속에서는  스스로도 깜짝 놀라며, 남편한테 깜짝 서프라이즈 하면서 똑같이 깜짝 놀라며 기뻐하는 남편의 모습까지 생각해 왔었는데, 막상 점점 진해지는 두줄을 볼 때 난 차분했고, 생각보다 임밍아웃 같은 걸 계획할 마음의 확신과 여유가 없었다. 아침 8시, 이미 출근을 마쳤을 시간이라 남편에게 바로 연락했다.


“자기..에엥…? 이거 진짜인가?”


내가…? 임신이라고..!?




2023. 9. 27(수) AM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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