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깊은 회장님이 (1)을 읽고 글을 보내왔다
오래된 흉터엔 사연이 많을 수 있지. 그래서 옛 흉터를 들춰내는덴 조심스러워야 하는것도 맞는것 같아. 근데 난 여전히 너에게 못보던 상처가 보이면 또 물어볼 것 같구나. "너 이 상처 뭐야"라는 질문엔, 네 몸에 생채기가 났고 어쩜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생채기도 났을지 모른다는 염려가 담겨있다고 생각하거든. 난 그게 애정이라고 생각해. 비록 작은 상처에 불과하더라도, 그게 있기 전후의 나를 또렷히 기억해주고 살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래서 늘 그렇게 살아왔어.
하지만 이번엔 내가 완벽히 잘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앞선 두번의 대화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냥 내가 무신경했다는 뜻으로밖엔 받아들여지지가 않네. 염려를 담았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근데 나는 그걸 극구 부인하고 싶었어.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너의 상처를 신변잡기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아니야. 라고 말하고 싶어서 요즘 일이 힘들고, 내게 들어오는 데이터가 너무 많고 등등의 궁색한 변명들을 내놓은것 같아.
귤한테 하소연한 이유도 이런 배경이 아닐까 싶은데. 남편이란 이름의 내편인 귤은 나의 대나무숲 답게, 관계의 온도차가 있었던건 아닐까 라며 나의 무심함을 모른척 덮어준거겠지. 그리고 난 또 이유 모를 억울함과 서운함에 굳이 덮어도 될 이야기를 또 꺼내 네 마음을 불편하게 한 듯 싶다. 근데 다시 생각해도 이번엔 내가 잘못한게 맞아. 너가 너의 화법을 돌아볼 이유는 하등 없어. 미안했어. 이 말은 꼭 해야만 할것 같아서 장문의 글을 보낸다.
아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흉터가 있어. 왼쪽 엄지와 검지 사이에 난 생채기인데, 작은아빠가 나를 안고 담배를 피우다 담뱃재를 떨어트렸다고 해. 그 후부터 나는 작은아빠만 보면 서서 오줌을 쌌고, 지금도 내 인생엔 그가 없지. 결혼식 때 받은 축의금까지 고스란히 돌려보낼 정도로. 미성년자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담배를 피는 친구에게 주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정도로 금연을 권고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서 출발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