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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이 Jul 23. 2018

퇴사하는 친구를 위로한 식사

마파두부와 감자치즈계란찜을 먹고 할머니와 엄마를 떠올렸다.


우리 엄마는 할머니의 김치가 사라지는 걸 가장 아쉬워했다. 다음 생이라는 기적이 없다면, 그 세상에서도 모녀로 만나지 못한다면, 두 번 다신 혀 끝으로 느낄 수 없는 맛이 되니까. 그래서 냉동실에는 어차피 먹을 수도 없어 버려야 하는 할머니의 음식이 남아있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 그 먹이를 누가 만드는가.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준 이가, 내 생이 연장되길 바라는 이가 만든다. 할머니는 뜨거운 장작불 앞에서 대식구의 밥을 지었고, 우리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가스렌지 불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네 식구의 밥을 지었다. 맛에 집착하고, 음식을 사랑하면서도 이제 더는 엄마의 요리를 달가워할 수 없는 건 그 노동이 얼마나 고된 건지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다. 밥과 국, 반찬 몇 가지를 차리는게 그게 그냥 드라마에 나오듯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는걸 똑똑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지금도 밥하기 싫다고 하면서 본인이 먹고 싶다는 이유로 김치를 사시사철 담그고, 동치미에서 나오는 요리 비법을 적어뒀다 꼭 해보는 사람이지만 나는 김치냉장고 두 대 중 한 대는 내다 버리라고 할 만큼 엄마가 요리에서 해방되길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음식을 맛보며 행복을 느낀다. 이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감정은 요리를 하지 않는 자가 느끼는 배부른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 배부른 사치를 염치없이 타인에게서 느낀 건 지난 주다. 사실 한 술 뜨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엄마가 할머니에게 느끼는 그 감정, 그리고 내가 엄마의 음식에서 느끼는 그 감정이 올라오더라. 요리 초보가 일요일까지 사용하며 만든 마파두부 덮밥과 계란찜, 그리고 본인이 만들었다고 우기지만 결코 지금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캐치한 어머니의 반찬까지. 내 시간에 실려 살다보면 상대가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지 못한다고 전에 썼었는데, 참 덕망 높은 이 분은 기가 맥히게 내 상황을 알아주셨다. 살아서 버티게 해줘서 고맙다. 나에게 너의 요리는 그런 의미다. 내가 너의 요리를 그리워하며 울지 않도록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게 살아주세요.


(김밥과 유부초밥의 달인 최, 집들이는 손맛이라고 망언했는데도 불고기 만들어주신 임, 한상 가득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주신 안, 김치볶음밥과 떡볶이 달인 이 님에게도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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