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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이 Apr 25. 2021

듀이 신문 발췌 (1) 언어, 공감, 행동

별안간 신문 구독을 시작했으니 정리를 해본다

1. 농인성소수자들, 혐오 지우고 자긍심 담은 새 수어를 짓다 [커버스토리]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면, 그 집은 늘 소란스럽다. 새로운 언어는 수시로 태어난다. 어떤 언어는 잊히거나 폐기된다. 그 생사의 경계에서 누군가 자신을 표현하는 정확한 언어를 얻으려고 싸웠다. 언어는 소란 속에서 조금씩 변해왔다.


낙태를 임신중지로 바꿔 부르기까지 66년이 걸렸다. 그사이 살색이 살구색이 됐다. 여류작가는 작가가, 결손가족은 한부모가족이, 장애우는 장애인이 됐다. 그렇게 언어에 묻은 여러 차별을 걷어내는 손길이 계속됐다. 지금도 누군가는 언어의 집에서 투쟁한다.


여기, 다시 ‘언어싸움’을 선언한 존재들이 있다. 농인이자 성소수자다. 한국 사회에서 ‘이중소수자’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국수화언어(한국수어)를 사용하면서 자주 언어에 담긴 혐오와 차별을 마주했다. 한국수어에서 동성애자는 특정 성행위를 묘사한다. 이 수어로 자신을 표현하려면 스스로 혐오를 실어날라야 했다. 자기혐오의 수어는 이야기를 멈추게 하고, 존재를 감추게 했다. 성소수자 관련 용어 대부분은 수어가 아예 없었다. 이들은 언어의 부재를 곧 ‘존재의 부재’로 느꼈다.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없는 수어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지금의 언어로 자신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언어로 더는 스스로를 욕되게 할 수 없었다. 정확한 언어로 자신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2. 지속가능한 공감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


3. 어른을 위한 동화와 어른들의 동화읽기 -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

"트렌드나 콘텐츠로 어린이를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안에도 이와 유사한 이중성이 있다. 어떤 존재가 무난한 호감과 함께 회자된다는 것은 그 존재의 개별적 권리가 정확히 반영되지 않고 있으며 포괄적 옹호의 감정 안에 주체의 목소리가 뭉뚱그려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은 본래 요란하며 좋은 아동문학은 안온하지만은 않다. 어린이가 걷어차고 반격할 수 있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동문학의 목표 중 하나다. 우리는 언제나 ‘아이처럼’ 지난 시간으로 되돌아가 나를 돌아볼 수 있지만, 어른이라면 ‘어른답게’ 어린이에게 걷어차일 대비를 해야 한다.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그 기본이다.


물론 최근의 어린이 열풍은 과거의 어린이 향수와 상당히 다른 측면이 있다. 어린이를 하나의 세계로서 정중하게, 독립적으로 바라보려는 시선이 두드러진다. 어린이 곁에서 생활하지 않는 비양육자 어른들의 관심이 적극적인 점도 눈에 띈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접근의 한계를 이해하는 ‘어른의 동화읽기’가 늘고 있는 것이 반갑다. 어린이날이 다가온다. ‘어린이가 더 행복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의 회원을 모집하고 싶다. 아마 그 연구의 가장 큰 수혜자는 어른이 될 것이다."


4. 동네에서 즐기는 지구의 날 -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물론 누군가는 다른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신공항을 더 짓겠다는데, 그까짓 자전거 이동 인증샷이 얼마나 세상을 변화시키겠냐고, 오늘 밤에 주문하면 내일 새벽에 가져다주는 물류시스템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는데, 비닐봉지 한 장 덜 썼다고 뿌듯해하면 정말로 기후위기를 막아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 사회가 발전소를 포기하지 못하고 성장주의를 놓지 않는데 시민들의 소소한 삶에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기후위기 시대가 우리 사회의 대전환점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나의 하루하루를 바꾸겠다는 결심도 당연히 함께 가야 한다. 기후위기를 생활의 중심에 가져다놓겠다는 의지는 삶에서 많은 부분 불편함을 감수하겠다는 결심이어야 한다. 더 많은 생산과 빠른 소비에 휩쓸리지 않고 즐거움을 찾겠다는 노력, 나의 효율을 위해 다른 사람, 다른 지역, 다른 종을 착취하기보다 분배와 돌봄에 더 공을 들이겠다는 결심이 있어야 우리는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일회용품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쓰레기무덤에 탄식하거나, 에너지를 덜 쓰겠다는 의지 없이 발전소만 비난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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