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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Oct 29. 2022

취향에 관한 단상

튜닝의 끝은 순정임을...

시선에 집착하는 편이다. 타인을 향한 시선과 나를 향한 시선 같은 것들. 조금 음침하다 여겨질 수 있겠지만, 나는 관찰이 좋다.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좋다. 그래서 마음이 가는 것들의 외양을 유심히 살펴본다. 움직이는 눈동자를 따라가곤한다. 그 끝에 내가 있음을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고양감이란. 말로 설명하기에 가끔 너무 큰 마음이 있다. 이런 마음은 때때로 소리 없는 시선에 집약된다. 눈에만 담을 수 있는 어떤 감정들이 좋다. 애정을 담은 말보다 애정을 담은 시선이 더 좋은 이유이다. 아마 내가 생각보다 말주변이 없어서 소리 없는 것들을 사랑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길을 가다 문득 보이는 들꽃이나 흐린 하늘의 구름, 망망대해의 윤슬같은 것을 사랑한다.


나를 향한 시선에 대해 생각해본다. 평생을 시선에서 살아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있지. 대부분은 불쾌하지만, 그래서 간혹가다 느끼는 애정어린 시선에 온 마음을 빼앗겨버리는 것이다.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지. 나를 좋게 봐(?생각해)줬으면 하는 건 누구나 갖는 생각이니까. 외적인 부분은 어떨까. 나는 꾸미는 걸 좋아하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아름다움을 추앙하는 건 인간의 오래된 성정이니까. 이건 외모지상주의와는 조금 다른데, 아름다움이란 것 자체가 외모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는 잘 꾸며진 애인의 외면보다는 나를 만나기 위해 스스로가 어떻게 해야 예쁘게 보일까 고민했던 시간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정성이잖아. 그런 것들에 끌리는 거지.


취향은 변할 수 있다. 소설을 제일 좋아했던 내가 이제는 시를 제일 좋아하는 것처럼. 해산물을 싫어했던 내가 초밥만 보면 군침을 흘리는 것처럼(물론 다른 해산물은 여전히 질색이다). 누구나 스스로에게 매몰되는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뭔지. 그렇다면 싫어하는 것은 뭔지.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것은 뭔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나쁘지 않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겐 제일 많이 변했으면서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한 부분이 이성 취향이다. 나는 남성성이 짙게 드러나는 외양을 좋아한다. 도드라진 티존이나 단단한 뼈대, 큰 손 같은 것들. 제일 많이 변한 부분이 여기서 나타나는데 이성 취향이 외적인 부분에서 내적인 부분으로 상당 부분 그 자리를 옮겼다. 살다보니까 내적인 것들이 좀 많이 중요하더라고.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더니.


정말이지 나는 다정한 사람에게 끌린다. 그래서 나도 그러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 원래도 그랬는데 살다보니 더 그래진다. 대학과 사회에 문어발치면서 살아보니까 계속 느끼는 건데... 세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사소한 단점 하나를 찾아서 어떻게든 까내기 위해 노력한다. 나도 그런 집단에 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은 동화될지도 모르는데. 정말이지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다른 사람(특히 좋아하는 사람) 마음에 작은 생채기 하나 내고 싶지 않다. 이건 아무리 상대가 내게 상처를 줘도 마찬가지야.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바람이 아니라 햇빛이었다며. 어떤 나그네는 아무리 햇빛을 쬐도 오기로 버티고 싶을 수도 있지. 그러면서 상처도 주는거고. 그래도 언젠가는 마음을 열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다정하게 계속 대하다 보면 상대도 다정해지지 않을까. 그래도 난 아직 사람의 다정을 믿어(믿고 싶고).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 취향 맞춤 추천이라는 키워드만 보면 가끔 아찔해진다. 나는 내가 보던 것만 보고싶지는 않거든. 새로운 것도 경험하고 싶은데 그걸 다 막아버리니. 나는 클래식도 좋아하지만 힙합도 가끔 듣는단 말이야. 그래서 가끔은 나와 정반대의 취향을 가진 사람을 경험하고 싶어. 분명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알다 보면 이해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우리는 애정, 그 깊은 퇴적물은 사랑이라고 하지. 아마 내가 살아있는 한 계속 이런 스탠스를 유지할듯 싶다. 그러고 싶기도 하고.


라벤더향 리프레셔. 딥로즈 오일. 말차 향수. 차가운 아메리카노. 옛날 시집. 인디음악. 영화관. 피아노. 수영장. 애프터눈 티세트. 오일 파스타. 망고 튤립. 델피움. 시원한 숲. 식물원. 푸른 바다. 우주. 시큼한 자몽. 말랑한 복숭아. 동물들. 핑크색. 보라색. 푹신하고 무겁고 따뜻한 이불. 타투. 등의 점들. 잠든 얼굴. 새벽에 혼자 책을 읽는 시간. 멘솔 담배. 벨벳 원피스. 하늘색의 셔츠. 진주 목걸이. 왕 큰 반지. 내 머리를 쓰다듬는 손. 짙은 눈썹. 얇은 입술. 잦은 스킨쉽. 웃을 때면 조금 패이는 볼. 다정한 시선과 태도. 부슬부슬 비오는 날. 인화되어 영원이 된 순간들.


나의 취향은 그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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