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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Nov 29. 2022

교육에 관한 단상

뇌와 마음을 파먹는 직업, 학원 강사 !

아직도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면 가끔 놀란다. 나는 나를 교육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감히 내가 교육자라고? 싶은 생각) 전반적인 교육을 총괄하는 공교육 체계에 속한 선생님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학원에서 특정한 과목에 대한 실용적인(이라고 부르는게 맞나 싶다)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일 뿐이다.

수학(애매하다)과 영어(거의)를 가르친다. 역사도 단기 강사 알바를 했었고(전공을 살려 친구의 한능검 고급을 가르쳤었다. 이 친구가 제일 열심히 한 듯...^^) 가끔 국어나 드문 경우지만 사탐도 가르친다. 진정한 이 시대의 보따리 장수라고 할 수 있겠다. 머리를 파먹고 사는 직업이라 그런가 요새 간헐적 두통이 심하다. 스무 살 무렵, 나갈 곳은 많지만 들어오는 곳은 한정된 돈 때문에 내가 다녔던 학원 조교 알바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박봉에 그 박봉 마저도 체불하던 곳이라 좋은 곳이었다고는 못하겠다. 우연찮게 전공하는 역사를 시험대비 단기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딱히 보람차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도 그럴게 정말 나열된 사건을 설명하고 외우게 하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그렇게 여러 알바를 전전하다가 늦여름에 송파에 있는 어떤 학원에서 연락이 와서 수학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그 시절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그래도 학원가가 내 또래 친구들이 하던 일반 알바보다는 페이가 좋았으니까. 간만에 공부하는 수학이라 머리가 띵할 때도 있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어쩌다보니 그 학원에서 영어도 맡게 되었고 학생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잘 해내었다. 분명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생각이 오고 갔다.

강남도 상황은 비슷하다. 부모님이 보내니까 오는 애들이 태반이다. 학교 수업보다는 학원 수업으로 진도를 맞추는 아이들. 선행 학습이 당연한 그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딱히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한참 어릴 때라 조금 못된 생각도 했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 공부하고 싶어서, 더 좋은 성적을 받고 싶었지만 차마 학원에 보내달라고는 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아이들에게 투영되어서일까. 쾌적한 환경에 있으면서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르치는 사람이 할 법한 생각은 아닌 거 같다.

분명 학원 강사를 계속 할 생각은 없었다. 학부모에게 하나하나 연락하는 것도 꽤 지치는 일이고 할 의지가 전혀 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르치는 것도 기운 빠지는 일이다. 그러던 와중에 휴학하고 새로운 학원에서 강사를 시작했다(투잡). 페이가 쎄지는 않았지만 시간 대비 보수가 막 나쁘진 않아서 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알게 된 사실은 학원은 학부모와 원장 모두가 가끔은 엄청난 부담이 되기도 한다는 것. 원장님이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교육 방식이 꽤 고압적이라 보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스트레스였다(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만난 아이들(당시 중학생)에게 정이 들어버렸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제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다. 처음 봤을 때는 분명 중학교 2학년이었던 애들이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을 마무리해가고 곧 한국 교육의 온갖 부정이 집중된 고등학교 3학년이 된다. 여기 학원이 지역이 지역인지라 학원비가 비싼 편이 아니다.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지역 별로 아이들의 눈빛이 다르긴 하다. 항상 마음 아픈 경우가 간절함이 눈에 보이는 아이들이다. 성적에 대한 간절함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그나마 제일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공부라는 것을 받아들인 아이들이 유독 그렇다. 하나라도 더 알아가기 위해서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성적에 더 예민한 편이다. 스스로도 참 많이 스트레스일텐데 그래도 열심히 다시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그냥 참 대견하고 예뻐죽겠다.

정이 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내 목표가 아이들의 성적 향상인만큼 사적인 감정이 더해지면 본래 목표가 흐려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근데 시간이라는게 참 어쩔 수 없는 거더라(+나라는 사람의 성정). 오래 같이 있으니 정이 들 수 밖에. 이 시기(*글을 작성한 시기가 11월 초입) 고등학교 3학년에게는 가르치기 보다는 멘탈 관리가 더 주된 일이다. 나도 다 겪은 감정이니까 더 이입이 된다. 그 시기 나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나였다. 성적 향상이 부진했고 수능은 얼마 남지 않아서 참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외부 탓을 하기 보다는 내 탓을 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었다. 내 아이들 역시 그런 것 같다. 괜찮을 거라는 말은 잘 안 한다. 전혀 힘이 되지 않는 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잘 하고 있다고 말한다. 너가 지금 믿지 못하더라도 노력했던 순간순간은 계속 쌓이고 있고 그건 정말, 천천히 쌓이다가 정말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 피게 된다고.

수능이라는 게 수학능력시험이다. 대학의 학습을 따라갈 수 있는 지를 평가한다. 평가 목적과 내용이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수능 성적이 좋더라도 막상 대학에 가서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고심해서 정한 전공이 맞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산출되는 성적보다는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걸 목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습관은 관성이고, 그건 아마 나중에 어떤 대학을 가도 아주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며 졸업 이후에도 두고두고 살면서 축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 때도 잘 하지 않던 영어 공부를 일하면서 가장 열심히 했던 거 같다. 물론 실용적인 회화보다는 수능 독해 위주라 좀 아쉽긴 하다. 가르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 제일 즐거웠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귀찮음을 압도하던 시절이 있었다. 열심히 하는 아이들 앞에서는 목이 아파도 더 말하고 싶어졌다. 나도 이유는 모르겠다. 나는 내가 제일 소중한 사람인데 어쩌자고 그렇게 행동했었는지. 

졸업 후에도 계속 이 길을 나아가기로 결정하니 많이 두려워졌다. 나는 이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고, 그렇게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원을 알아보았고 일단은 내년 하반기부터 준비해서 내후년 입학을 생각 중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고 또 졸업하면 뭔가 변화가 생길까. 요새는 계속 무언가에 쫒기는 거 같다. 실체도 모르는 대상에 쫒기다 보면 도착하는 곳은 결국 나 자신이다. 막연한 미래가 두렵고 무섭다. 분명 각각의 장단점이 있지만, 회사라는 고정된(?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직장이 아니라서 벌이가 가변적이다. 그래서 몇몇 주위 사람들은 가끔 내가 하는 일을 폄하하고 되려 겁을 준다. 그런 말에 쉽게 흔들렸었다. 그러다보니 더 무서워질 수 밖에.

지금도 무섭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많이 낙관적이게 되었다. 다닌지 얼마 안 된 학원의 원장님은 배울 점이 참 많은 분이다. 체계적으로 잘 가르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보면서 항상 존경하게 된다. 더 노력하고 싶어지고 더 잘 가르치고 싶어진다. 그런 욕심이 점점 생기는 중이다. 나같은 사람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나를 자꾸 노력하게 만든다.

사람은 평생 공부해야 한다. 단순히 학문적 지식이 아니라 모든 방면에서 공부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으면 모르게 되고, 모르면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부조리는 대부분 사람의 욕심과 그런 사람들 간의 이해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인생을 잘 헤쳐나가려면 공부해야 한다. 해결이나 소화는 보통 이해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발악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고 다정하게 살아가고 싶으니까 더욱 공부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내 말을 듣고 있고 공부 외적인 부분(주제에 대한 설명에서 드러나는 관념이나 여타 발언들에 아이들은 쉽게 동화된다)에서도 적지 않게 영향을 받으니까 나는 더 좋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선생님은 그래야 한다.

선한 영향력을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이들은 여전히 너무 사랑스럽고 나는 갈 길이 멀다. 조금이라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 가능한 일일 것 같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수업을 준비할 때가 아직은 제일 재밌다. 행동은 전염력이 있어서 내가 조금이라도 선한 방향으로 가르친다면 아이들도 조금은 비슷한 방향으로 행동해주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 있다.

아무튼. 이건 전부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이 만든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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