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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유월 Apr 27. 2022

"썩다리 몸테크 14년째, 남편이 암에 걸렸다"

나는 2006 강남의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친구는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살았다. 나는 친구와 함께 하교하며, 가끔씩 은마아파트 뒤쪽의 스타벅스갔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스타벅스에 들어가 비싼 커피를 마실 때면 괜스레 마음이 두근두근했던 기억이 난다.


16년 전 내 눈에 비쳤던 은마아파트의 모습은 낡고 허름했다. 친구는 “집에 녹물이 나와서 미치겠다. 겨울에 씻는 게 두려워 샤워 안 할 때도 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었다. 걱정하는 내 모습을 보고 친구는 “걱정 마. 우리 집 곧 재건축된대”라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에 진학했고, 친구는 프랑스의 한 대학에 들어갔다. SNS를 통해 간간히 연락을 이어갔지만 친구가 프랑스에 있는 기간이 길어지며 서서히 연락은 끊어졌다. 친구네는 결국 은마아파트를 팔고 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 다른 친구 B 역시 8년 전 재건축을 꿈꾸며 은마아파트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아파트를 증여해줘 가능했다. 그렇게 친구는 재건축이라는 꿈에 부풀어 흔히 말하는 ‘썩다리 몸테크’를 시도했다. "이젠 정말 되겠지"라고 들어갔지만, 이사할 당시 신생아였던 아이는 벌써 초등학생이 됐다.


안타까운 재개발 사례도 있다. 타기업의 한 여자 부장은 14년 전 한남 뉴타운 재개발 물건을 샀다. 당시 8억 정도를 주고 샀다고 했다. 지금 그 호가가 40억이니 투자에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차라리 그 돈으로 좋은 아파트를 사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고 후회한다. 그동안 기다린 게 아까워 팔지도 못하고, 근사하게 지어진 집을 상상하며 현실의 고통을 잊는다.


그는 한남 뉴타운이 곧 개발된다는 얘기를 듣고 투자했는데, 14년이 흘렀다고 투덜댔다. 부장의 가족은 투자하고 여윳돈이 없어 낡은 빌라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고생만 하던 남편은 암에 걸리기도 했고, 아이들은 대학생이 됐다. (암은 초기에 발견해 지금은 괜찮다고 한다) 사는 게 초라해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집들이는 꿈도 못 꿨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지 못했다.


재건축과 재개발은 돈이 된다. 어느 날 부자가 되기도 한다. 돈 대신 시간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돈이 없지만 부자가 되고 싶으면 썩다리 몸테크 하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렇다 보니 현재의 행복을 계속해서 유예한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크게 아프거나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에야 '현재의 행복’을 누리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만다.


왜 사람들은 신축에 살고 싶어 할까. 공간은 사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옷차림만 근사하게 입고 나가도 하루의 태도가 달라진다. 24시간의 절반 가량, 아니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은 그 역할이 더 크다. 깨끗하고 크고 좋은 집에서 가족이 행복할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 재건축과 재개발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누군가는 장밋빛 전망을 그린다. 물건 역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며 사람들의 기대감을 높인다. 하지만 간단하게 생각해도 동시다발적으로 재건축을 풀기는 어렵다. 가격 급등과 주택이 멸실되며 이주 대란 등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재건축 기대 단지 가격이 급등하자 인수위가 규제 완화 속도 조절에 나서며 실망감도 커지고 있다.


콘크리트는 어지간해서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높아진 안전진단을 그동안 대부분의 재건축 단지들이 통과하지 못했다고 한다. 거주 환경이 나쁠지언정 안전상 크게 문제없으니 그냥 살라는 것이다. 향후 재초환이 완화될 수 있으니 차라리 연식 30년 차 아파트에 들어가 10여 년 간 몸테크 하라는 전문가들도 있다.


과거에도 "이번엔 무조건 된다. 장담한다”라고 했던 전문가들은 아무도 결과에 대해 책임져 주지 않았다. 그만큼 재건축 재개발이 쉽지 않다는 걸 염두해야 한다. 실패 사례만 나열했지만, 성공 사례도 분명히 많다. 10년 정도 썩다리 몸테크 하고, 재개발돼 부자가 되기도 한다. 인생역전이다. 하지만 주변에 지지부진한 사례들을 보며 재건축과 재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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