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같이 타게 된 러시아 근육맨 선장님이, '승무원 명부'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셨다.
'류, 아니 한붐. 너 이름이 '한붐'이었구나?'
그리고 그 이름이 재밌었던지, 선장님은 나를 '한붐'이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나의 이름을 들은 몇몇 선원들도 왜 'Family name(성)'을 쓰냐고 한 번씩 물어보기 시작하였다.
필자의 취미인 캘리그래피로 쓴 본인 이름
그리고 나도 여기에 대하여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국가에서 온 선원들을 봐 왔지만, 어느 누구도 자신의 '성'으로 불리는 사람은 한국사람을 제외하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이후, '영어 이름'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생각은 나의 학창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어떤 경로에서든 '원어민 선생님'과 수업을 해 본 사람이 있다면, '영어 이름 짓기'라는 부분이 아마 있었을 것이다.
이때 나는 한창 역사공부를 좋아했었고, '국뽕'이 충만한 상태였어서 이 '영어 이름 짓기'가 현대판 '창씨개명'처럼 느껴졌고, 재미로라도 영어 이름을 따로 짓지 않았다.
나는 영어 이름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 'Ryu'라는 이름을 당연히 사용해 왔다. 그리고 나는, '성'과 '이름'이라는 또 다른 불편한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미드 '프렌즈'의 한 장면이 오버랩이 되었다.
미드 '프렌즈'에서 한국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뒤의 대화
그 당시에 이것을 볼 때는 나도 공감하면서 웃고 넘겼었다.
(그린피스 동료만 해도 Kim이 3명이나 있어, 들어온 순서대로 Kim1, Kim2, Kim3로 불릴 때가 있다.)
하지만, '왜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성을 사용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난 뒤에는 약간 슬프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잃고 산다.
3학년 2반 11번, 주번, 반장부터 시작하여, 이대리, 김 과장, 철수 엄마, 철수 아빠, 아버지, 할아버지...
이렇게 불리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외에 가서도 본인의 이름이 어떻게 불리든 크게 상관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이주하던 시절, 그분들은 사회에 적응을 하기 위하여 자신을 소개하는데, 미국인 입장에서 발음이 어려운 '길동'이라 말하지 못하고, 그저'홍'이라 불러라고 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이름을 설명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굳어진 문화가, 박찬호의 'Park'을 만들었고, 손흥민의 'Son'을 만들었으리라... 그리고 우연히 미국의 이름에 킴 카사디안과 같이, Kim이란 이름이 있는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Kimberly란 이름의 준말로 추정된다.)
한국 군인의 명찰, 영문은 죄다 성이다.
나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고 나니, 나는 더 이상 나의 이름을 'Ryu'라고 소개하지를 못했다.
그 후에는, 나 자신을 HanBum이라고 소개 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입장에서 발음하기 힘든 이 이름 때문에, 몇 번이고 이름을 다시 물어보긴 했지만, 그때마다 알려주었다. '한범'이라고. 또한, '교양 있는'사람들은 자신의 발음이 맞냐고 제차 확인까지 하였다. 예의를 지키기 위함이였다.
이미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Ryu'라고 소개해줘서, 몇몇은 아직까지 '헤이 류~'라고 하지만, 이것은 나의 잘못이니 어쩔 수 없이 넘어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최대한 '한범'으로 불리고자 하지만, 발음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붐'이라고 하는 것 까지도 넘어가기로 하였다.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의 이름을 완벽하게 발음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나의 생각이 옳지 않을 수도, 너무 비판적이고 오버하는 것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됐건 나의 이름은 최종적으로 다시 'HanBum'이 되었고, 몇 번이고 기쁜 마음으로 반복해서 주입시키며, 사람들을 나의 이름에 적응시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