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한범 Sep 27. 2019

황혼의 문턱, 노모의 마지막 화장.

그린피스 항해사 썰#17

 "그날이 오고 있습니다."


 아침 회의에서 기관장님이 다른 선원들에게 말을 하였다. 우리는 선박 수명 연장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다 해왔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이야기였다.

 "세월의 풍파를 겪다."

 선박에 가장 알맞은 말이다. '쇳덩어리'와 상극인 파도와 바람을 맞으며 몇십 년을 버텨준 'Esperanza'호에게 우리는 또다시 요구를 하고 있었다.

 '5년만 더...'

 1983년, 소련 해군의 '소방선'인 시절부터 시작해서, 'Greenpeace'를 대표하는 하나의 배가 되어 여러 가지 활동을 하기 까지, 수많은 일들을 겪은 우리 배는 이제 5년을 더 운항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대로 Ice class선박으로서의 '은퇴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순간을 마주하였다.

그린피스로 오기전, 소련 해군의 소방선이였을 시절의 Esperanza


 역사적으로 배를 이야기할 때 배는 '여자'에 많이 비유된다. 그리고 선박의 대명사로써 'She'가 여전히 만연하게 쓰이고 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1. 배는 여성들과 비슷한 특징이 많다.

 몸체는 파도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유선형의 곡선이 되었어야 하였고, 그 모습이 여성의 신체와 닮았기 때문이다.

 2. 초기 비용보다 유지비용이 더 많이 든다.

 선박의 몸, 선체는 끝없는 풍파(바람과 파도)에 저항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페인트 칠'을 해 주어야 했는데, 이 작업을 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어, 당시 남성에게는 '여성의 화장'과 비유가 되곤 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서, 꼬박꼬박 집에 돈을 부치던 남성 선원들의 불만 또한 섞여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3. 과거의 배는 남성의 산유물이었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총'을 본인의 여자 친구 다루듯이 소중히 다뤄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배에서 또한 '교관'정도 되는 사람들이 '훈련생'들을 처음 교육할 때, 이런 비유를 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박에 승선하는 선원들은 대부분 남성이었으며, 여성이 승선하는 것을 터부시 하였다. 말 그대로 '금녀의 구역'이었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남자만 득실 배에서 여성 대명사인 'She'를 쓸 일이 별로 없었을 것이며, 선박 내에서의 대화에서 'She-her-her-hers'는 자신이 승선하고 있는 배임을 확연하게 들어내는 대명사로 발전하였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배는 거칠고 터프한 노파와 같은 선박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든 우리 배는, 하루가 멀다 하고 검버섯과 같은 '녹'이 올라오곤 하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검버섯처럼 올라오는 녹

 그렇게 기나긴 수리기간의 마지막으로, 배를 물 밖으로 빼내어 선박의 외판을 위한 작업을 하기로 하였다. 이 작업이 끝난 후, 앞으로 5년 동안 선박을 더 운항할 수 있을지 없을지 결정하는 '선급'에게 검사를 받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물이 새는 부분들은 철판을 뜯어내어 수리를 한 뒤 다시 붙여 넣고, 녹이 슨 부분들은 녹을 벗겨내어 다시 페인트를 칠하였다. 부서진 가구들은 필요한 부분들을 다시 만들어 붙여 넣었고, 각종 기계들도 열심히 점검하였다.

 그렇게 바쁘게 마무리 작업을 끝낸 후, 배를 물 밖으로 빼낼 시간이 다가왔다.


 짧은 거리이지만, 약간의 이동 후에 우리 배를 기차 레일과 같은 장치에 올린 후, 외부의 힘으로 선박을 물 밖으로 끄집어내는 계획이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진행하는 작업이긴 하지만, 언제나 이러한 특별한 작업에는 위험이 도사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모두들 신경을 곤두 세워 하나의 실수 없이 70미터가 넘는 큰 배를 잘 끌어올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회의를 하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우리는 그 '레일'로 이동을 하여 배를 조금씩 조금씩 끌어올리기 시작하였다.

선박이 물 밖으로 나오는 방법

 오전에 작업을 시작하였지만, 해 질 녘이 다 되어서야 우리 배는 드디어 무사히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물밖으로 꺼낸 Esperanza의 모습

 그렇게 우리는 선박의 외판에 대한 작업도 시작하였고, 선박의 수명에 대한 검사도 시작하였다.

 모두 긴장된 마음으로 검사관의 표정을 살피며 하나하나 꼼꼼하게 검사하였다. 나는 선박의 수명 연장을 원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전하지 않은 배를 타고 운항하면 위험하니, 복잡 미묘한 심정이었다.

 선박의 구석구석, 평소에는 이런 공간이 있었는지 몰랐었던 구역까지 꼼꼼하게, 배 전체를 조사하였다.

평소에는 철판으로 막혀 볼 수 없었던 배의 바닥 부분

 그렇게 며칠간의 검사가 끝나고, 우리는 마침내 '합격'이라는 서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다시 5년 동안 더 운항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까지 버텨준 배에게 고마웠고, 5년 동안 더 고생을 해야 할 배에게 미안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합격증명서를 받고 나서 우리는 마지막 5년을 위한 '꽃단장'을 시작하였다.

 물속에서는 할 수 없는 선박의 외판을, 특히 더 신경 써서 녹을 제거하고 그 위에 페인트 칠을 하였다.

 

새롭게 페인트칠을 한 Esperanza

길고 긴 작업 끝에 우리는 대부분의 일을 완료할 수 있었고,

나는 다시 항해를 하기 위하여, 항해 계획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본 글의 내용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임을 밝힙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말, 노는 것도 배움이 필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