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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한범 Jul 19. 2018

멀미, 그리고 세탁기

그린피스 항해사 썰 #6

 “배 타면 멀미 안 해요?”


 내 직업이 항해사라고 소개했을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경찰관에게 “강도 안 무서워요?” 혹은 소방관에게 “불 안 뜨거워요?”라는 질문과 거의 동일한 질문이지만, 그때마다 나는 “배 멀미는 적응이 되어서 거의 안 하는 편이에요.”라고 성실히 대답해 줬다... 이 배가 출항하기 전까지는...


 우리 배가 네덜란드를 출항하고 북해로 들어가서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정확히는 자정 당직(Midnight watch)을 가기 전 야식을 먹으러 식당에 왔을 때, 우리 배는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이 정도 흔들림 쯤이야’라고 생각하면서 슈퍼에서 샀던 라면을 먹고, 나의 첫 당직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삼등 항해사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나의 당직을 시작하고 몇 분쯤 지났을까, 파도와 바람이 점점 심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린피스에 일하게 된 것을, 다시 배를 타게 된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Arctic Sunrise호’는 하나의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The Washing machine (그 세탁기)’이다.

 빨래를 할 때, 세탁기 안을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아마 우리 배를 탄 후엔, 그 빨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해서 이 별명이 붙은 게 확실하다.

 조그마한 파도에도 우리 배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무작정 흔들어 댄다. 그땐 왜 그랬는지 몰랐지만, 배에 와서 처음으로 설명해 주는 것 중에 하나가 ‘바가지의 위치’였다. 나는 잠깐 내려가 그 바가지를 가지고 와서, 내 멀미와 함께 속에 있는 것들을 여러 번 게워내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내 몸은 점점 좀비처럼 변해갔고, 겨우겨우 당직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방에 돌아온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침대에 누워있는 것 밖에 없었다.

 ‘빨리 이 파도가 지나갔으면...’  

 평소에 기도나 미신도 믿지 않던 내가, 절박한 상황이 되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누군가에게 요청하고 있었다.
 

 가끔 배란 공간이 너무 익숙해져서 모르고 있다가, 아프거나 혹은 이렇게 심하게 멀미를 할 때에는 ‘배는 매우 무서운 공간’ 이란 것을 깨닫는다.

 내가 아무리 아프거나 멀미를 심하게 해도, 사방에는 바닷물밖에 없어, 아무 데도 빠져나갈 곳 이 없는 갇힌공간... 어디를 둘러봐도 볼 수 있는 건 바닷물밖에 없다. ‘곧 죽어도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이 아마 배에서 나왔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배가 이렇게 흔들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의 뿌리에는 우리 배가 '쇄빙선(Ice Breaker)’인 것부터 시작된다.

 쇄빙선이 얼음을 깨는 원리는 간단하다. 바로, ‘밀어 치기’와 ‘누르기’이다.


 첫 번째인 ‘밀어 치기’는 말 그대로, 바다 위의 얼음을 강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여서 밀어 쳐서 깨뜨리는 방식이다. 쇄빙선의 앞부분은 보통의 선박보다 거의 2배 정도 되는 두께의 강력한 철판으로 이뤄져 있어 얼음 덩어리와 부딪혀도 꿎꿎히 버틴다.

 주로 러시아산 핵추진 쇄빙선이 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는 ‘누르기’이다. 얼음이 상대적으로 두꺼워 밀어 치기로 여이치 않을 때, 쇄빙선은 얼음 위로 슬라이딩하듯이 올라간다. 그리고 선박의 무게로 짓눌러 깨뜨린다. 그리고 다시 뒤로 갔다 앞으로가 올라가서 눌러 깨뜨리기를 반복하며 얼음 지대를 통과해 나아간다. 그리고 이 ‘누르기’ 과정을 위해서는 배 앞부분이 둥글둥글해야 잘 올라가기 쉽고, 이를 위해서 우리 배는 선박의 중심추 역할이자 척추에 해당하는 ‘용골(Keel)을 없애고, 원형의 형태로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작은 쇄빙선인 우리 배는 주로 누르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쇄빙선의 원리


 그리고, 이러한 둥근 모양을 가진 것에 대한 부작용으로, 우리 배는 약간의 파도에도 거침없이 흔들리는 ‘세탁기’가 되었다.

 그렇게 상하 앞뒤 좌우로 요동치는 ‘세탁기 모드’의 스위치가 ON 된 이후로, 나는 약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더 이상 괜찮은 척하지도 못했다. 그저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릴 뿐...

 가끔 갑판에 나가보면, 나와 같은 신세의 사람들이 여럿 누워 있었다. 생강, 비스킷, 페퍼민트, 솔잎, 레몬 등 멀미에 좋다는 건 모든지 다 해봐도 그 순간만 괜찮아지는 느낌일 뿐, 몇 분이 흐르면 다시 멀미가 시작된다. 약을 먹어도 안되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여기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벗어나는 유일한 순간이 있다면, 멀미에 못 이겨 곯아떨어져 잠이 들 때뿐...



 그렇게 정신 잃은 며칠이 지나고,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니 마치 꿈에서 깬 것처럼 나의 멀미가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흔들림에 적응을 한 것인지 흔들림이 줄어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먹을 수 있고, 꽤나 말짱한 정신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게 중요하였다. 그냥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밥 먹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 태어나서 처음 느꼈다. 그렇게 나는 긴 멀미에서 깨어나 다시 정상적인 정신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다시 항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북극권(Arctic Circle)에 진입하게 되었다.

Arctic Circle

 저 멀리서 노르웨이의 땅에서 떠오르는 태양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Arctic Sunrise에서 보는 Arctic Sunrise

 이제 나는 한 가지를 대답을 더 준비해야 한다.

 “배 타면 멀미 안 해요?”

 “네, 저 멀미 좀 해요...”

 “항해사가 멀미하면 어떻게 해요?”

 “…"

 "버텨야죠..."



*본 글의 내용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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