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보드가야에서 만난 어린 마윈에 대하여
직장 동료가 권해 준,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 마윈은 항저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직 완전히 개방되지 않은 중국에서 마윈은 바깥세상이 알고 싶었다. 영어를 공부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고 싶었다. 소년 마윈은 항저우에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 가이드를 자처했다. 무료로 안내를 해주는 대신, 영어 실력과 바깥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었다. 세월이 흘러, 그는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그리고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이드를 하며 바깥세상을 배웠던 것이 지금의 자신을 있게 했다고.
10년 전, 나는 인도를 여행했다. 거기서 한 소년을 만났다. 10년이란 세월 동안, 소년에 대한 나의 기억은 많이 흐릿해졌다. 그동안 잊고 살았다. 하지만, 마윈의 영상을 보며 잊었던 소년을 다시 떠올렸다.
인도 여행은 시작부터 지옥이었다. 콜카타에 도착해 공항 밖으로 나올 때 느꼈던 감정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상상할 수 없는 습도와, 찜통보다 더한 더위. 습도는 100%에 가까웠고 기온은 40도에 육박했다. 내가 흘린 땀은 증발하지 못한 채 아래로 아래로 흐르기만 했다. 이마에서 난 땀방울들은 목과 몸통을 지나 발까지 흘렀다. 땀방울이 다리를 지날 때쯤엔, 이미 땀방울이 아닌 강물이었다. 더위 외에도 온갖 악취가 고역이었다. 온 세상은 노상방뇨와 소똥 냄새로 요동쳤다. 자동차들이 즐비한 도로 사이로 소떼가 지나다녔다. 차들은 쉴 새 없이 빵빵거렸다. 사람들은 미친 듯이 우리를 속여 이익을 보려고 혈안이었다. 택시에서부터 우리는 사기를 당해 잘못된 거스름돈을 받았다. 가방을 메고, 여행자 거리에 들어서자 호객꾼들이 날파리처럼 달라붙었다. 20kg에 달하는 가방을 짊어지고 두어 시간을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나서야, 우린 숙소를 구하고 쉴 수 있었다. 혼란스럽고, 지치고, 피로했다. 그것이 콜카타의 첫인상, 그리고 인도의 첫인상이었다.
콜카타에서 내리 3일을 시달린 후, 우린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드가야로 향했다. 에어컨도 없이 달리는 기차를 16시간 넘게 타고서야, 비로소 보드가야에 도착했다. 힘든 기차 여정을 마치자, 또 다른 지옥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보드가야는 콜카타와 달리 건조했다. 대신 낮 기온이 47도까지 올라갔다. 숙소에 들어가니 밤이었다. 의자며, 침대며, 모든 것들이 뜨거웠다. 낮 동안 47도의 고열을 견딘 건물은, 내부와 침대, 심지어 매트리스까지 달궈놓고 만 것이었다. 샤워를 했다. 물을 가장 차갑게 틀어도, 달궈진 수도관은 뜨거운 물만을 뱉어냈다. 밤 10시가 넘어서도 온 건물은 달궈진 화덕처럼 후끈했다. 침대마저 여전히 뜨거워 우린 잠을 설쳤다. 그것이 보드가야에서의 첫날이었다.
소년을 만난 것은 그 이튿날이었다. 본격적으로 보드가야를 돌아보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한국인의 외모가 눈에 띄어서 였을까. 소년이 우리를 쫓아오며 말을 걸었다. '또 호객꾼이겠지.' 지친 우리는 무시했다. 소년은 굴하지 않고 우리를 쫓아왔다. 본인이 투어가이드를 해 주겠다고 짧은 영어로 얘기했다. 어차피 보드가야는 처음이라 생소한 우리였다. 한번 믿어보자고 생각했다. 소년이 우리를 이상한 식당으로 안내하거나, 물건을 강매하면 그때 바로 손절하자고 결심했다. 소년은 마하보디 사원이며 다른 유적들을 안내했다. 보통은 이쯤에서, 품에서 팔찌를 꺼내며 사 달라고 조르기 마련이다. 혹은, 자신이 아는 끝내주는 식당이 있다며 우리를 끌고 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소년은 달랐다. 지금까지의 인도와 달라서, 되려 우리는 혼란스러웠다.
소년은 질문이 많았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나라들을 여행했는지. 우리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날은 더웠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적대적이었던 우리는 짜증 섞인 어투로 대답을 이어갔다. 이쯤 되자, 차라리 물건을 강매하고 우릴 내버려 뒀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팔찌 정도라면 한두 개 사주고, 보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소년은 꿋꿋하게 우리를 안내할 뿐, 어느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마침내 인내심이 바닥난 우리가 먼저 물어봤다.
왜 우리를 안내해 주려고 하는 거니? 우리에게 대체 뭘 원하니?
소년은 얘기했다.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세상을 배우고 싶다고. 대답을 듣고,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부끄러웠다. 또 하나의 어린 호객꾼으로 치부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남들 따라 목적의식 없이 대학에 적을 두고, 배움보다는 유흥을 즐기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좋은 나라, 잘 사는 부모 밑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돈으로 세상을 여행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보드가야에 3일을 머문 후, 우린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아그라로 갔다. 몸은 아그라에 있었지만, 여전히 머리로는 보드가야의 소년을 생각했다.
그 인도 여행으로부터 10년이 흘렀다. 10년의 세월 동안 나는 잊고 살았다. 기형도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내 마음속에 참 많은 공장을 세웠다. 공장들이 제각기 바쁘게 돌아가던 탓에, 그동안 나는 인도 여행을, 보드가야의 소년을 잊고 살았다. 내 나이가 차고 서른이 될 무렵, 마윈의 영상을 통해 소년을 다시 만났다. 47도의 무더위 속에서 우리를 안내하던 소년. 밝게 웃으며 서툰 영어로 이것저것 세상을 물어오던 소년. 우리가 호객꾼인 줄 착각했던 소년. 사실은 세상을 배우고 싶었던 소년... 10년이 흘렀으니 소년도 이제는 청년이 되었으리라. 소년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까? 세월이 흐르면 TV에서 소년의 인터뷰를 보게 될까.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소년의 꿈이 꺾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