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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won Kong Jan 01. 2023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생각보다 사람들은 지구의 멸망을 평화롭게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게임 회사를 다니고 있다. 게임 개발자는 아니고, 게임 운영을 위한 플랫폼 개발을 한다. 사실 게임 개발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기회가 생겨도 할 자신도 없긴 하다. 게임 회사에 다니지만 내가 하는 일은 다른 IT 기업의 플랫폼 개발자와 별반 다르지 않다.


게임 회사만의 특징이라면 자연스레 게임을 할 기회가 종종 생긴다는 것이다. 출시를 앞둔 게임들은 사내 테스트를 거치는데, 사내 테스트 기간엔 업무 시간에 게임을 해도 된다. 주변의 많은 개발자들이 지정된 테스트 시간 동안 열심히 게임을 한다. 물론 업무 시간에 포함된다.


게임사다 보니 자연스레 게임에 관련해 이것저것 주워 듣는 것도 많아진다. 소수의 과금하는 사용자가 매출 대부분을 책임진다거나, 사기꾼들의 사기치는 방법 등등.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안된 때였다. 우연히 게임 보안 관련된 외부 강의를 찾아서 들었다. 소위 ‘작업장’이라고 불리는 악성 사용자를 탐지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였다. 강의를 듣다가 교수님이 이렇게 얘기한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베타 테스트 종료는 아포칼립스를 닮았다는 것이다.


베타 테스트는 완성 직전의 게임을 정식 출시하기 전 사전에 신청한 유저들에게 일정 기간 가오픈하여 플레이하게 하는 테스트 방식이다. 일정 기간동안 선발된 사용자들은 게임을 마음껏 플레이하고, 버그나 불편함을 제보하면 약간의 리워드도 제공된다.


정식 출시가 안된 게임이기 때문에 공정성을 위해 베타 테스트 종료시 그 동안의 게임 기록은 모두 삭제된다. 베타 테스트 기간 동안 키운 캐릭터가 초기화되고 모든 기록은 없어지게 된다. 게임 속 캐릭터들에겐 종말과도 같다.


강의를 하던 교수님은 이런 질문을 했다. 베타 테스트 종료를 앞두고 있는 사용자들이 어떤 행동을 했을 것 같냐고 물었다. 어차피 테스트 기간이 종료되면 모든 데이터는 삭제된다. 폭력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욕설을 할 수도 있다. 평소에도 게임은 욕설과 사기로 빈번히 시끄럽기 때문에 얼핏 생각하면 베타 테스트 종료 직전은 상당히 혼란스러울 것도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유저가 폭력을 휘두르지도, 욕설을 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같이 게임을 플레이했던 다른 유저들과 삼삼오오 모여 추억을 나누며 종말을 맞았다고 한다. 모닥불이나 광장에 모여, “다음에 다시 만나”, “출시하면 만나자”와 같이 다시 볼 것을 약속하며 서버의 종료를 기다렸다고 한다.


영화 <돈 룩 업>은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해 지구가 멸망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사람들은 집단적 정신분열 상태가 되서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얘기는 거짓이라고 부정하는 사람들과 진실을 받아들이라는 사람들로 양분되어 마지막까지 서로를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 소행성의 충돌을 예견한 과학자들인데, 지구가 멸망하는 순간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여 마지막 말을 나누며 최후를 맞는다. 길거리에서는 약탈과 방화와 파괴 행위를 벌이는 사람들도 목격된다.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지구가 종말을 맞이할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폭력적으로 일탈하며 종말을 맞이할까? 아니면 섭종(서버 종료)을 기다리던 게이머들처럼 소중한 사람들과 모여 마지막을 함께할까?


종말이 자명한 사실처럼 다가오기 전까진, 아마 진실은 결코 알 수 없을 거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미쳐 날뛰며 종말을 맞이할 것 같지는 않다. 암이나 불치병에 걸려 남아있는 나날을 카운트다운 하는 사람들만 봐도 폭력적으로 삶의 마지막을 소비하진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지구 종말의 마지막 만큼은, 게임에서 베타 테스트가 종료되는 날처럼 평화롭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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